성폭력이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생각은 자신과 주변에서 겪는 성폭력을 “에이 ~ 아니겠지” 라고 접어두게 하며, 성폭력을 가하는 사람도 “에이 ~ 난 아냐” 라고 드러나지 않게 만듭니다. 성폭력은 여성이나 약자에 대해 차별, 비하, 경시, 상품화하는 문화속에서 매우 일상적으로 가해지고 또 겪게 됩니다.
낯선 사람, 괴한, 밤길, 어두운 골목길의 위험을 강조하면서 여성들의 일상을 통제하지만 일찍 귀가하고 문단속을 잘 해야한다는 여성에 대한 메세지와 관계없이, 성폭력 가해의 74% 는 아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며, 13% 는 가족 내에서 발생합니다.
통계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가해자의 74% 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은 성폭력이 일상 문화속에 이미 자리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가해자의 정신이상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 이렇게 대부분의 성폭력이 일상에서 일상적인 사람으로부터 발생하는 현실을 감추게 됩니다. 성폭력 문제의 정확한 진단을 가로막고 있는 통념 중 하나 입니다.
여성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또한 여성들이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몸과 마음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성문화와 왜곡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내용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이고도 개인전반적인 교육과 연구, 시도가 필요합니다.
성폭력에서 이루어지는 가해행위는 여러 다른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합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심리적, 물리적, 상황적, 관계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끝까지 저항하면 성폭력이 불가능하다' 라고 단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또한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상관없이 피해자의 방어 의무만을 강조하는 것은 성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씌웁니다. 끝까지 저항하라는 표현은, 피해자의 목숨이나 안전보다 성폭력을 막는 일이 중요하다는 비난으로 작용하며 이는 정조의무를 여성에게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여성을 성적으로 약한 존재로 보기 때문에 시선만으로, 농담만으로, 시늉만으로, 예고만으로 여성이 위축감과 수치심을 자극하려는 개인적, 지속적, 집단적 행위가 많습니다. 이 같은 행위 역시 상대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박탈합니다.
내가 침묵하는 순간은 언제나 동의했던 순간이었는지 떠올려봅시다. 흔쾌히 “좋아 ! ” 하는 경우도 있고, 상황에 따라 침묵할 때도 있고, 상대의 위협 때문에 섣불리 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침묵했으니 사실상 동의라는 주장은 진실한 대답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변명인 경우가 많습니다.
밤늦게 술을 먹은 것이 여성이 성폭력을 원한 것이라면, 반대로 밤늦게 술을 먹는 남성들은 성폭력을 의도하고 있다는 뜻일까요? 자유롭고 다양하게 여가시간과 인간관계를 즐기는 것이 여성에게는 비난의 빌미가 되는 것은 부당한 성별차별의 현실과 이것이 성폭력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단 한 번 뿐이었다, 두 번 뿐이었다를 누가 판단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성폭력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이와 같은 변명은 ‘두 번 밖에 안했는데 문제없다' 라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한 번의 성폭력을 저지르게 된 사고방식과 과정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이 더욱 빠른 길입니다.
많은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의도적이지 않았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어떤 행위가 성폭력인지 판단할 때는 가해자의 의도가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즉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는지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봅니다. 가해자의 의도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피해자가 어떠했기 때문에 그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고 가해를 정당화합니다. 다른 범죄에는 이러한 통념이 없는 것에 비해, 성폭력적인 행동이 그동안 자연스러운 남성의 성적인 행동이라고 여겨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적 충동이 아무리 강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 사회는 남성의 공격적인 성적 행동을 남성다운 것이라고 조장하며, 남성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것이라느니, 참지 않아도 된다느니 하는 등의 잘못된 통념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많은 연구를 통해 가해자들이 자신의 억제된 분노 등을 자신보다 약자인 여성이나 어린이에게 표출하는 것임이 밝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