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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상담소 소모임 활동 후기

[후기] 회원소모임 내가 반한 언니 : 조가 결혼을 했다고? 도대체 왜? - 영화 <작은 아씨들> 후기

1월에 있었던 첫 모임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상담소에서 진행되는 행사들이 모두 연기되었습니다. 회원소모임 '내가 반한 언니'도 2월 모임을 연기하고, 3월 모임은 각자 <작은 아씨들>을 보고 소감을 나누는 것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이 글을 편집하고 있는 사무국 닻별 활동가는 '어린 시절 활자로 보며 상상만 했던 네 자매가 현실이 되어 튀어나온 것 같았다'는 한줄 평을 남겼습니다. 다른 회원은 어떤 후기를 남겼을지, 함께 보러 가실까요?

 

<작은 아씨들>은 네 자매의 이야기지만, 누가 봐도 주인공은 셋째인 조다. 처음 소설 <작은 아씨들>을 읽었을 때 나도 그렇게 느꼈고,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도 바로 이 점이었다.

 

그 시절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 것 같다. 당시에는 캔디형 여주조차 별로 없었다. 그 전까지 내가 접한 서사에서 여주는 메기처럼 외모가 아름다운 여자이거나 베스처럼 연약하고 착한 여자였다. 여주는 그 아름다움과 연약함으로 남주의 사랑을 얻었다. 여주의 라이벌은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여자였다. 딱 에이미가 그랬다.

 

남자처럼 성큼성큼 걸으면서 휘파람을 부는 조, 자꾸만 난롯불에 치마를 태워 먹는 조, 사과 하나를 물고 종일 책을 읽는 게 제일 행복한 조. 예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은데 매력적인 이 여자는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소녀들을 사로잡은 것 같다. 이미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이 올해의 <작은 아씨들>이다.

 

 

<작은 아씨들> 포스터. 출처: 익스트림 뮤비

 

시대의 한계 앞에 선 여성의 선택… 그러나 해피엔딩

 

<작은 아씨들>에서 가장 큰 반전은 여주인 조와 남주인 로리가 결국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독자들이 그랬듯이 조가 로리와 사랑에 빠지길 기대했고, 고모를 따라 유럽에 가길 바랬다. 그런데 이러한 성공은 다른 사람에게, 네 자매 중에서도 가장 얄미운 에이미에게 모두 돌아갔다. 요즘 같으면 국민청원에 ‘결말을 다시 쓰게 해주세요’라고 올릴 법한 충격이었다.

 

아마도 그레타 거윅 감독도 이 부분에서 나처럼 충격을 받고 이 부분에 대해서 깊게 고민했나 보다. 작가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조의 선택을 공들여 설명하면서 자신만의 해석을 보여준다.

 

소설 <작은아씨들>은 1부에서 네 자매의 10대 소녀 시절을 다루고 2부에서 20대의 성년 시절로 넘어간다.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진행이다. 상대적으로 1부가 더 유명해서 주인공들의 연애사가 본격화되는 2부의 내용은 모르는 사람도 은근히 많다.

 

반면 영화는 2부의 내용을 현재 시점으로 잡고 1부의 내용을 과거로 넣어 교차적으로 상황을 보여준다. 조가 소설가로 데뷔하는 시기, 자매들이 각자 결혼을 하는 바로 그 시기가 현재의 이야기이다. 이를 통해서 감독은 여주인공 조와 작가 루이자 앨콧을 겹쳐 놓는다. 애초에 조가 감독의 자전적 캐릭터이긴 했지만, 영화에서는 아예 두 인물이 섞여 있는 느낌이다.

 

이 영화는 조가 처음으로 소설을 판매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결국 자신의 책 <작은아씨들>을 출판하는 것으로 끝난다. 특히 책이 나올 때에는 인쇄부터 제판까지의 과정은 무척 자세하게 묘사된다. 그냥 책을 한권 보여주고 “드디어 나왔다”라고 해도 될 텐데 굳이 각 단계를 일일이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조와 자매들의 사랑과 인생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조가 (혹은 루이자 앨콧이) 기어코 자신의 책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영화는 조가 “소설을 팔기 위해서는 여주인공이 결혼을 해야 한다”는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여주인공을 결혼시키는 것으로 묘사한다. 실제로도 바로 이런 이유로 루이자 앨콧이 조를 결혼시켰다고 한다. 원래는 작가 자신이 그랬듯 조도 비혼으로 설정했다가 결국 바꿨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놓고 생각하면 감독은 조의 결혼을 ‘시대적 한계 앞에서 선 여성 작가의 선택’으로 설명하는 셈이다.

 

이는 결국 현실의 제약을 넘지 못한 타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조는 “결혼은 소설 안에서나 밖에서나 경제적 교환”이라고 인정하고, 주체적으로 협상해서 꿈을 이룬다. 인세 비용은 협상을 할 지 언정 여주인공을 결혼까지 시켜가면서 만든 작품의 판권은 내주지 않는다. 그래서 타협마저 여성 작가의 주체적 선택처럼 느껴진다.

 

또 하나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자매가 모두 예술가로 묘사되며 각각의 비중도 꽤 크다는 것이다. 다소 허영이 있는 것처럼 보인 메그, 지나치게 청순가련하게 느껴졌던 베스는 물론 소설에서는 철없고 밉게 보였던 에이미가 영화에서는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최대한 열심히 행복을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조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영화는 저마다 다른 입장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여러 여성들을 모두 응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 가지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니 당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살아가도 된다고,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때로는 타협해도 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말고 나아가라고. 아마 그레타 거윅이 감독으로서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앞서 이야기했듯이 <작은 아씨들>은 이미 여러 차례 리메이크된 영화다. 지난번의 <작은 아씨들>은 1994년 작품인데 이 역시 페미니즘적인 텍스트이고, 지금 보아도 메시지가 크게 촌스럽지 않다. 넷플릭스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 두 <작은 아씨들>을 함께 보면서 비교 감상해보는 것도 꽤 괜찮을 듯하다.

 

 

<이 후기는 '내가 반한 언니' 회원 열쭝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