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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인터뷰

상담소 29주년 생일축하: 활동가 환갑맞이 질문 코너 1

지난 2월 25일, 한국성폭력상담소 SNS에 ↓이런 게시글이 올라왔었는데요. 혹시 기억하시나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환갑을 맞은 두 활동가에게 무엇이든지 물어보는 코너였습니다.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 등 다양한 채널에서 들어온 18개의 질문을 활동가가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9주년 생일을 맞아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질문의 대답이 업로드 될 예정이오니, 두 사람의 인터뷰가 궁금하신 분들은 매일 오후 6시를 기대해 주세요!

 

 

인터뷰이: 사자(), 지리산()

인터뷰어: 닻별()

 

 

Q1.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지  저는 여성학을 공부하고 여성학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여성학이 실천 학문이거든요. (*'이론과 실천이 함께 해야 한다'는 여성학의 중요한 지점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회에 성폭력 상담소가 한 군데도 없고. 성폭력상담소의 역할이 너무 필요한데. 서구에서는 이십 년 전부터 이런 상담소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 너무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겠다 싶어서 1990년 그 때, 뜨거운 여름 날 함께 모여서 상담소를 만들자!’라는 그런 시작을 했었는데 벌써 30년이 지났네요. 제가 이렇게 올해까지 있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제1기 성폭력상담원 수료식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지리산(왼, 사진 최상단) / 김**사건 구명대책위원회 활동 중인 지리산 (오, 중앙) (1991)

 

  지리산은 뜻이 있어서 일을 시작했는데 저는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전업주부로 있다가 내 인생에 성폭력이라는 문제가 뭐가 있나? 그런 생각 별로 안 해보고 살았는데. 글쎄요, 육십이 되어서 여기 있네? (웃음) 그런데 매번 할 때마다 의미는 찾아졌던 것 같아요. 이거 왜 하나,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고. 시작은 어찌어찌 하다가 왔는데 매번 , 이걸 나는 몰랐지만 되게 중요하고 해야 하는 일이구나.’ 알고 나서는 그만 두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런 지리산하고는 되게 큰 차이가 있죠.

 

지금의 사자를 있게 해 준 한국여성민우회 생협. (출처: 민우회 소식지 <함께가는여성> 29호. 1990.)

  큰 차이일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것 같아요. 여기 활동하면서 우리가 그 시간, 세월들을 어떻게 같이 해왔나 생각해보면... 그 의미, 그리고 이 일이 우리를 어쩌면 행복하게 하는 일 아니었어요?

  행복까지는 말 못하고. (웃음) 그런데 하여튼 어떤 뿌듯함이나 이런 것들은 찾아졌던 것 같아요. 그것도 행복이라고 정의하면 (행복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Q2.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에피소드가 있다면?

 (피해자) 지원 같은 것들은 일처럼 해서, 그런 것보다는 전에 춤춘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15주년 때*. 내가 진짜 몸치인데 그렇게 춤을 춰본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고 그 이후로도 없었어요. 빠져 보려고 했는데 상근활동가면 다 해야 된다고 해서 억지로 했었죠. 그게 기억에 계속 남아요.

 

* 2006년에 있었던 15주년 후원의 밤에서 활동가들이 스윙댄스 춘 때를 말합니다. 스윙댄스 추는 사진 중에 안 흔들린 사진이 없어 멋진 단체사진을 올려요!

 

15주년 기념 후원의 밤, 스윙댄스를 추기 전 단체사진을 찍는 활동가들. (가운데 사자, 지리산) (2006)

지  정작 사자는 하나도 안 틀리고 잘했고 틀린 사람 저였는데? (웃음)

 지리산 정말 열심히 했었는데.

지  틀렸어요.

 그랬었어요. 여러 사람 앞에서 춤을 춰본 적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어요.

닻  지리산은요?

  사실 어느 하나를 뽑기가 너무 힘든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 것 같아.

 저는 가슴 먹먹하고 답답했던, 사건이 잘 안 되거나 또 피해자 분께서 힘을 찾아가지 못하고 더 힘들어하시는 걸 보게될 때가 기억에 남는 것 같고요. 그 다음에 우리 거리에 되게 많이 있지 않았어요?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우리의 운동을, 운동의 의미나 우리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고. 그래도 뭔가 소통이 되고 있구나 라는 느낌? 그런 거. 그리고 어떤 사건이 승소해서 한국 반성폭력 운동사에서 새로운 획을 긋는. 성폭력 특별법 제정이라든지 안희정 사건이 유죄가 선고되는 그런 순간에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 미투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순간순간들이 다 머릿속에 떠오르네요.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위 중인 여성단체 활동가들. (1993, 왼) / 안희정 성폭력 사건 승리 기자회견 중인 활동가들. (2019, 오)

 


Q3. 본인의 활동이 인생에서 갖는 의미

: 후배 활동가들에게 활동가의 삶을 추천해 줄 만 한가요?

추천한다면 어떤 점을, 비추한다면 어떤 점을 추천하지 않는지?

사  활동하지 않았으면 세상 보는 눈도 딱 나와 내 가족 안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고, 되게 잘 사는 줄 알고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보는 시야나 어떤 사회적인 일에 대한 관심, 그것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는 사람들의,보통 일반 사람들은 잘 믿지 못하지만 그래도 시민단체에서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겠구나 읽혀지는 것. 이를테면 전체적으로 인생을 보는 시야같은 것들이 넓어졌다고 봐요. 그게 바로 저의 역량 강화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에요.

 제 삶에서 굉장히 큰 두 가지의 변곡점들면, 저는 여성학을 공부했던 것과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로 활동했던 것인 것 같아요. 제 삶이 그냥 상담소 활동이어서 그걸 떼어서 생각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고요. 그런데 제가 왜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나 좀 돌아보면 역시 이런 활동을 함으로써 뭔가 변화할 수 있구나 하는 것. 그런 걸 체감하면서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도전을 할 수 있던 힘이 되었고, 그건 또 지금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수요시위에서 발언 중인 사자(왼)와 지리산(오). (2007)

 활동을 하려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전 무조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하다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각자 이미 대단한 능력과 호기심을 다 가지고 있어서 저는 활동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고 아니면 더 깊이 들어갈 수도 있어서 그냥 망설이지 말고 했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기회가 안 되면 되려고 하면서.

 저는 어떻게 보면 NGO 활동가가 된다는 것은 소위 사회적인 잣대? 부나 명예나 성공이나 이런 부분과는 사실 좀 다른 잣대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른 잣대가 주는 엄청난 풍요로움이 있어요. 내적인 어떤 만족감도 크고요. 어떻게 보면 이 운동을 하면서 우리는 누구에게도, 되게 당당하잖아요.

사  꿀리지 않고 살죠.

 꿀리지 않고 살고 우리는 경제적으로 환산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만큼 되게 소중한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니 하십시오! (웃음) 어서 오세요, 함께 해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환갑을 맞은 두 활동가 인터뷰는 내일 저녁 6시에 계속됩니다. 내일 이 시간에 만나요!

 

기획/인터뷰/편집 : 닻별

녹취록 작성: 찔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