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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상담소 소모임 활동 후기

[후기] 내가반한언니 5월 모임 : 투지와 죄의식, '밀리언 달러 베이비'

* 회원소모임 <내가반한언니>*

<내가반한언니>는 상담소에서 운영하는 페미니즘 컨텐츠 비평 소모임입니다.

매월 셋째주 금요일 저녁에 진행하고 있으며, 페미니즘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컨텐츠를 함께 감상하고 이야기 나눕니다. 

소모임 활동을 함께 해보고 싶으신 분들은 상담소 이메일 ksvrc@sisters.or.kr 로 성함, 연락처, 가입 동기를 적어서 보내주세요~

5월에 함께 본 영화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입니다. 이 영화는 여자 복싱 선수 '매기'와 체육관을 운영하며 복싱 선수를 키우는 '프랭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소모임에 소개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프로그램 담당자인 제가 관련 ‘여성이 무술을 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며 강해지는 영화’를 찾다가 ‘30살 정도 된 한 여성이 복싱 선수가 되겠다고 찾아 오고 결국 시합도 나가게 된다는 간단한 이야기를 보고 ‘이거다!’ 하며 고른 영화였습니다. 물론 영화의 전개는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자기방어훈련 관련 영화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힐러리 스웽크 배우가 극중 '매기' 역에 잘 어울렸고 (정말 복싱 선수 같았어요) 복싱에 대한 재능이 훈련을 통해 빛을 발하며 점차 강해지는 과정을 보는 것은 신이 났습니다.

 

영화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매기와 프랭키는 선수와 매니저로서 좋은 케미를 보여주며 성공의 가도를 달리지만 각자의 삶은 외롭고 어딘가 슬픈 구석이 있습니다. 매기는 시골에서 올라와 식당 종업원 일을 하며 손님이 남긴 음식으로 끼니를 떼워가면서 돈을 모아 체육관을 등록하고 복싱 장비를 삽니다. 감옥에 있거나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가족들에 대해 부양의 책임도 느끼고 있지만 가족들은 그녀를 미워하는 것 같습니다.(나중에는 이용하려고 하고요) 이런 삶에서 매기가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것이 복싱이기 때문에, 프랭키가 돌아가라고 했을때 복싱을 그만두면 자신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허름한 체육관을 운영하는 프랭키는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도 없고 딸에게는 손절당합니다. 보내는 편지는 뜯어보지도 않은 채 몇십년째 반송됩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성당에 나가는데, 내반언 참가자들은 그의 주요 특징은 죄책감을 가진 인물이라고 이야기 나눴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오래전 자신이 지혈을 해주던 선수가 한쪽 눈을 실명해서 복싱을 그만두게 되는데 그를 체육관 관리자로 두어 '먹여살리는' 책임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친절하지는 않습니다). 프랭키가 '가장 중요한 원칙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하는 이유도 그 일 때문이겠죠. 체육관 관리자 '스크랩'은 영화의 나래이션을 맡았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에 있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행위하도록, 사건이 진행되도록 부추기거나 연결하거나 끌어가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매기는 프랭키의 코칭을 받으며 거의 모든 경기에서 이깁니다. 두 사람의 유대도 깊어갑니다. 가족이 없는 것과 같았던 두 사람이었던 만큼 끈끈한 신뢰와 애정의 관계가 됩니다. 프랭키도 변해갑니다. 자신의 선수를 절대 챔피언십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지만 매기는 내보내게 됩니다. 복싱과 싸움에 대한 매기의 의지를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겠죠.

 

그런데 갑자기 영화의 전개가 달라집니다. 매기가 챔피언십 경기에서 상대의 반칙으로 인해 큰 부상을 입고 목 아래가 모두 마비된 것입니다. 프랭키는 헌신적으로 매기를 돌봅니다. 그녀에게 좋은 휠체어를 사서 대학에 다녀보겠냐고 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기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싸우면서 태어났고 싸우면서 떠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매기의 가족들이 찾아와 그녀의 재산을 다 넘길 것을 요구하고, 한쪽 다리의 상처에 감염이 생겨 절단을 하기도 하는 등 상황은 더욱 안좋아집니다. 그러자 프랭키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이야기 합니다. 고민 끝에 프랭키는 매기의 부탁을 들어준 후, 어두운 병실 복도를 지나 빛이 들어 오는 병원 문쪽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습니다 마치 그도 함께 죽는 것 같았아요.

두 인물의 비극적인 결말에 내반언 회원들은 벙찌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점점 강해지는 여성의 이야기'를 현실로 가져오려는 시도도 깨졌지요. 스크랩(모건 프리먼 역)의 나래이션으로 이야기가 열리고 닫혀서, 마치 옛날 옛날 어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처럼 비현실적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함께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존엄, 죽음, 돌봄,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존엄하게 죽는 것, 누군가와(들과) 돌봄의 관계를 맺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내반언 회원들은 만약 현실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돕는 일은 할 수 없겠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프랭키의 선택이 매기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말이 비극이다 보니, 등장하는 인물의 인생 전체에 대해 어떻게든 평가하는(의미화 하려는) 작업이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매기가 가진 생에 대한 '투지'와 프랭키가 가진 핵심적인 감정인 '죄책감' '죄의식'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의도한 메시지를 읽을 수 없고 심적으로 무거움이 남는 영화였지만, 두 캐릭터가 잊혀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 글은 성문화운동팀 '신아'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