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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

안녕하세요, 상담소 회원 김지은입니다

 

[2020년, 한해를 보내며 연말 편지]

안녕하세요, 상담소 회원 김지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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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상담소 회원 김지은입니다.
힘겨웠던 지난 시간 동안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신 동료 회원분들께 작은 인사를 올리고 싶어 편지를 드립니다.

거친 폭풍우에 맞서 아무것도 없이 서 있던 제게 깊은 연대와 굳건한 지지로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3년 동안 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여러 회원분들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정성스럽게 써주신 편지와 포스트잇에 담긴 응원 메시지, 직접 기르신 건강한 먹거리와 손수 만들어주신 생활용품까지 제게는 너무나 큰 선물들을 받으며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횡행하는 거짓과 욕설, 그리고 비난들로 인해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내려놓고 싶던 절박한 순간순간들마다 여러분께서 내밀어주신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남은 삶을 이어가게 해주신 여러분들께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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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것이 파괴된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직접 느끼며 살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암담함을 마주했을 때 어려움을 함께 나눠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신뢰를 보여주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바로 상담소의 활동가 선생님들이셨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검찰 조사와 고통스러운 법정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로 제 손을 잡아 주셨고, 제 바로 옆 자리에 앉아 계셔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순간마다 저를 대신해 싸워주셨습니다. 처음 미투를 한 후 “잘하셨어요” 라는 말씀을 건네주신 이미경 소장님, 방송 이후 되돌아 갈 곳이 없었던 제게 늦은 밤 선뜻 집을 내어 주신 김혜정 부소장님, 쉼터에 지낼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살펴주시는 정정희 원장님을 비롯한 여러 활동가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상담소의 활동가 선생님들은 따뜻한 동네 언니였고, 지치지 않는 투사였습니다. 선생님들이 그렇게 당당하게 제 곁에 서 계셔 주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상담소의 회원 여러분들이 함께 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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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원에 다니며 기술을 배우고 있고, 작은 잡무를 돕는 연구보조 일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일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경력을 살려 일하고 있지 못하지만, 지금 제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조금씩 나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꼭 다시 일상을 되찾아 여러분께 받은 도움을 저보다 더 힘든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분들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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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이후 곳곳에서 성폭력에 의해 고통받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의 작은 말하기로 인해 큰 힘을 얻으셨다는 분들의 편지도 받았습니다. 여전히 세상으로부터 거짓과 험한 말들로 고통받고 있지만, 언젠가 곳곳에 계신 분들과의 연대를 통해 이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해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연대만이 안은영의 광선검보다 더 큰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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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 회원 여러분께서 주신 도움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받은 도움들을 여러분들처럼 나누며 살아가겠습니다.

꼭 건강히 살아내겠습니다. 회원 여러분도 건강하세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사함을 잉크 뒤에 꾹꾹 담아 전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김지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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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1/ 많은 분들이 후기를 남겨주셨던 - "호떡을 사먹어도 될까요?" <김지은입니다>, 240쪽 (출처_pixbay)

2/ 2018년 3월부터 많은 분들이 전해주고 보내주시는 손글씨, 편지들. 

3/ 끝없이 외모 품평을 받던 환경에서 운동화를 신어도 되는 곳으로, <김지은입니다>, 122쪽

4/ 삶의 구체성과 일상을 이야기하는 첵 <김지은입니다> (반성폭력이슈리포트 14호 서평)

5/ 언니네트워크 책방 꼴에서 제작하신 포스터, 마치 광선검 같아요.

6/ 조혜민 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활동가, 故 로이 전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가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모습

 

 

글_ 김지은 (<김지은입니다> 저자)

사진 배치, 편집_ 김혜정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