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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인터뷰

12월 활동가 인터뷰: 셀프 인터뷰 3

두달만에 돌아온 활동가 인터뷰, 대망의 마지막입니다. 12월 활동가 인터뷰!
이번에는 특별히 인터뷰를 기획한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활동가 인터뷰를 기획했는지 궁금한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12월 인터뷰의 마지막,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인터뷰어/인터뷰이: 닻별(), 세린(세), 승은(승)

 

05. 최근에 새로 열린 생각의 채널이 있다면?

: 최근이라는 기간을 좀 더 넓게 잡으면, 19년도 8월부터 비건지향 생활을 시작했어요. 우연하게도 여러 가지 통로에서 비슷한 얘기들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때가 가끔 있잖아요, 저는 그때가 그런 시기였어요. 이를테면 저희 과 원생 분들이 기고하는 웹진을 읽었는데 어떤 글의 필자가 방글라데시의 의류 공장 사고를 통해 3세계 여성들이 옷을 만들면서 어떤 착취를 경험하는지 얘기하고 그래서 자기도 비거니즘을 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물론 그 ‘그래서’ 이전에는 더 많은 연결고리에 대한 상상이 놓여있겠죠. 이런 얘기들이 잔잔하게 들이치면서 기존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폭력을 알게 되고, 더 찾아보고. 물론 사람마다 그 민감도나 반응의 속도는 다르겠지만 저는 어쩌면 좀 간명하게 이 실천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필요한 몇 가지 질문들, ‘이게 옳다고 생각하는가?’, ‘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를 꼽아보고 답을 내서 비건지향 생활을 시작했어요.

 

요즘은 엄청 개인적이고 관성적인 실천들밖에 안 해요. 동물에 대한 폭력을 없앤다는 게 너무 많은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잖아요.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서 출발하는 보다 철학적인 논의에 대한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실제 벌어지는 폭력의 현장을 고발하는 활동가도 있어야 하고, 법을 만드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비건을 자꾸 보여주는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도 필요하고.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는 건 엄청 다양한 측면과 스케일의 노력이 필요한 건데.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는 것 같아요. 그 지점에 대한 회의가 있고. 그럼에도 비거니즘이라는 채널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 육식 소비 증가와 같은 코로나19의 사회생태적 원인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게 되고 옷 하나를 사더라도 더 많은 걸 상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저는 자연대생인데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이공계 주류 감성에 약간 거리감을 느껴요.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는 인식이 당연시되는 사회지만 저는 ‘진짜 그런가?’라는 걸 상당히 많이 생각하거든요. 최근에 제가 참여하는 책 모임에서 이공계 페미니스트들과 ‘이루다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저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돼서 좋았어요. 또 안티 페미니스트가 일 냈군, 이러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에게 꼭 인격이나 젠더를 부여해야 하는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 보는 거죠.

 

AI 이루다 이미지샷. 현재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더 나아가서 과학기술은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어떻게 개발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자본의 논리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과학기술이 되게 중립적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 안전성에 대한 연구를 할 때도 그 연구를 의뢰하는 사람이 누구냐, 자본을 투자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연구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 더 토론하고 싶습니다.

 

: 저의 경우엔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서로 절대 겹치지 않는, 다른 레이어에 분리된 사람들’이 최근에 새로 열린 채널이에요. 당연히 계급이나 계층, 정체성의 차이가 크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고요. 현 거주지로 이사오면서 발견하게 된 건데, 이 동네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섞여있는 뉴타운이예요. 그런데 여기서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 같은 1인가구 청년들의 존재는 4인가구의 일원인 것처럼 취급되거나 없는 셈 쳐져요. 총 11단지 중 3단지가 저 같은 청년 1인가구 입주자니까 분명 그 수가 적지 않은데도 존재감이 없어요. 행정적인 문제에서도 ‘이 사람들은 청년세대니까 계속 머무를 사람이 아니라 곧 떠날 사람들이다’라고 판단해서 단기적 정책만 내는 게 보이거든요. 그래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접점이 전혀 없는, ‘레이어’ 개념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포토샵 레이어 같아요. 레이어를 끄면 어떤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요. 너무 이상하다. 무슨 감각이지? 이 동네에만 있는 감각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까 도시빈곤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연쇄작용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닻별이 인상깊게 읽었던 시사인 르포 기사 <우리가 몰랐던 세계>. 같은 '서울'에 살고 있지만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는 동네, 대림동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누르면 해당 기사 링크로 바로 연결됩니다.)

06. 상담소 활동을 하며 느낀 것?

: 작년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오신 분들과 달리 두 분이 코로나19라는 상황으로 인해 너무 다른 경험을 할 수밖에 없어서 내내 마음에 걸렸어요. 작년에는 시위나 집회가 엄청 많았고, 상담소에서 인턴십을 한다고 했을 때 기대하는 바와 딱 부합하는 것들을 많이 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그런 것들을 많이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 아까 지원 동기 얘기할 때 말했듯 활동가를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가장 컸기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 뭘 못했다 싶은 것까지는 아니에요. 제가 지원서에 써놓은 걸 읽어보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답을 얻는 시간(...)’ 이렇게 거창하게, 이거 읽은 사람은 참 부담스러웠겠다는 생각이 들게 써놨더라고요. 근데 답을 얻은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아, 정상성을 벗어난 공간이 사회에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런 공간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힘이 돼서 좋았던 것 같아요.

 

세린, 승은 님의 자원활동 발표회 ppt 이미지 중 주요 업무 파트. 상담소에 소중한 제언도 해 주셨다.

: 지난번에 활동가 인터뷰(* 10월 활동가 인터뷰) 했을 때 백목련이 “사람들이 후원하는 걸 마치 동정하듯이, ‘너 좋은 일하고 힘든 일 하니까 도와줄게’ 이렇게 생각한다, 근데 자기가 사람들한테 후원하라고 얘기하는 건 어떤 식으로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에 동참하자는 의미이다.” 라고 말을 했잖아요. 그게 너무 기억에 남는 거예요. 제가 후원이라는 걸 가벼운 의미로 생각했던 것도 있고,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느슨하든 가깝든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활동이 끝날 때가 되니 시민단체가 되게 가깝게 여겨져요. 물론 상담소에 있는 활동가들의 개별적인 목소리나 얼굴을 알기 때문에 더 그렇기도 하겠지만, 기사나 SNS를 통해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후원을 할 때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 큰 의미의 지평을 공유하는 사람들, 페미니즘이라든지 운동을 하고 있다든지,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는데 탕비실에 와글와글 모여서 빵 나눠먹는 거 보면 별 거 없는 것 같다가, 또 막상 이야기를 나누거나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일을 하면서 저런 고민을 멈추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소중하다’ 싶기도 했어요. 아, 그리고 포토샵 진짜 배우고 싶어요. 내가 앞으로 프리랜서를 할 거면 자기PR의 수단으로 포토샵은 필수다!

 

: 저도 상담소에 들어오기 전까지 포토샵을 만진 적이 없어요. 완전 야매로 배웠죠. 그러니까 누구나 하실 수 있습니다.

: 학생회 되게 오래하셨는데 만질 기회가 없으셨어요?

: 하기 싫어서 필사적으로 도망다녔어요. (웃음)

: 승은 님이 말씀하셨던 것 중에 진짜 공감되는 게 사람들이 시민단체를 가깝게 느끼면 많은 게 달라질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주변 사람들에게 자원활동 같이 하자고 영업해 주세요! (자원활동 신청 및 안내는 이 링크에서!)

 

07. 2021년 목표와 연말 계획

: 현재를 살자! 코로나19가 오니까 미래를 계획하는 게 어렵잖아요. 하루하루 충실히 살자.

: 제가 얼마 전에 타로를 보러 갔거든요. 이것도 저번에 오매와 인터뷰할 때(* 8월 활동가 인터뷰)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각종 점을 보는 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고 해서 나도 한번 봐볼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는데. 상담해주시는 분이 2021년에 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직업적인 선택지들 중에서 뭔가가 분명해진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그럴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목표라기 보다는 일종의 희망사항으로, 좀 더 확신을 갖게 되면 좋겠어요. 

 

: 여성주의와 타로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죠. 여성주의 타로 리딩 같은 것들이 많이 있잖아요. 작년 이맘때쯤에 타로 리딩을 할 줄 아는 활동가가 2020년 운세를 봐주기도 했어요. 예전에도 마음이 지쳐서 민간 신앙과 점성술의 계시가 필요할 때 친구에게 여성주의 타로를 보곤 했고요. 일반 카드를 사용해서 여성주의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아예 여신으로만 구성된 타로 카드들도 있어요. 여성주의 타로를 배울 수 있는 과정도 찾으면 있을 거예요. 

: 사실 타로를 혼자 배워보겠다고 책을 사놓고 안 읽은 지 좀 됐습니다. 저걸 사면 타로를 보러 가는 비용을 아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사놓고 안 봤어요, 그냥 책값 날린 거죠. (웃음)

 

: 제 2021년의 목표는, 아주 가볍지만 어려운 것으로 하겠습니다. 주말에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집밖에 나가기.

: 집이 더 좋은 건가요?

: 가족이랑 같이 살 때는 집에 ‘내’ 공간이 되게 적잖아요. 근데 독립해서 혼자 사니까 이 집의 모든 공간이 내 공간인 거예요. 내 취향대로 꾸며져 있고 이 공간의 모든 사소한 것들이 다 나한테 맞춰져있으니까 굳이 떠날 이유가 없는 거예요. 침대는 너무 푹신하고, 내가 자주 손을 뻗는 자리에 휴대폰 충전기와 거치대가 있고, 몇 발자국만 가면 당장 게임을 할 수 있는 좋은 성능의 데스크탑이 있고. 나갈 이유가 없죠.

: 집순이들 백퍼 공감.

: 원래 집순이가 아니었는데 혼자 살면서 집순이가 됐어요. 

: 저는 어제 밤에 장바구니에 술 담았어요. 

: 주종이 뭐예요?

: 저 술 잘 못 마셔서 보통 맥주 마셔요. 변화를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조금씩 새로운 걸 도전하는 건 좋아해서 이번에는 마셔보지 않은 막걸리를 골랐습니다.

: 연말에는 한 해를 정리하는 일기를 꼭 써야해요. 저는 크리스마스에는 별 감흥이 없는데 30, 31일 쯤 되면 마음이 이상해지는 게 있어요. 2020년을 보내주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념으로 친구들과 덕담을 주고받고, 집에서 요리해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 저는 계획이 뚜렷하게는 없는데요, 뭐라도 하자고 친구들을 꼬시고 있습니다. 이대로 흘려보내기 너무 아까운데, 코로나19나 각자의 사정으로 만나기 정말 어려웠단 말이에요. 저번에 세린 님이 온라인으로 친구들 만나서 파티했다는 이야기 듣고 이번주 토요일에 중학교 친구들이랑 구글밋으로 송년회 하기로 했어요. 

: 그거 랜선 건배하고 사진 찍으셔야 해요. 친구들하고 만나서 전체 화면 말고 갤러리 보기로 해서 하트 만들고. (웃음) 팁을 드리자면, 사람마다 화면이 나오는 순서가 달라서 화면을 캡쳐할 사람이 지시를 잘 해야 해요. "너는 이렇게 돌려라", "너는 여기, 아니 그쪽말고 반대."

: 오글거리는 걸 싫어하는 친구들이라서 격하게 반대할 것 같은데 한 번 제안해볼게요. 별 모양으로. (웃음) 이번주 토요일 약속말고 계획된 게 하나도 없어요. 별일이 없다면 연말에 출근을 안 하니까 이틀에서 삼일 정도는 하루종일 게임만 할 것 같고요. 심심하니까 친구들한테 영상통화를 걸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2020 활동가 인터뷰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에 또 재미있는 기획으로 찾아올게요.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인터뷰를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기획자이자 편집자인 세 사람의 인터뷰 후기를 마지막으로 마치겠습니다.

모두들 성평등한 2021년 되세요~!!

인터뷰 후기

스탭으로 참여한 집회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은 세린, 승은님. (2020)

 

: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편해서 좋았어요. 사실 줌으로 말을 잘 못하는데 오늘 너무 즐거웠습니다!

: 보통 연말쯤 하게 되는 큰 질문들을 오늘 이 자리에서 하게 되어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됐던 것 같고, ‘이 얘기를 재밌어할까..?’ 하는 의구심도 아직 조금 남네요. 말미에 꼭 자원활동 많이 하시라고 적고 싶어요. 

: 다른 사람들이 어떤 궤적을 거쳐왔는지를 듣는 게 재밌었고, 특히 이번 인터뷰는 저랑 비슷한 시대를 비슷한 생애주기에 겪은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공감대를 느낄 수 있어서 더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