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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

인턴, 수요시위 참가하다!

 

안녕하세요! 저는 2009년 12월 28일부터 경희-시티 NGO Internship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인턴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보미라고 합니다.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스스로 프로젝트를 세워서 행동해 보라는 담당활동가님의 무시무시한 특명에 보고한 프로젝트는 바로 ‘수요시위’ 참가하고 블로깅하기! 

고등학교 때 수요시위의 존재를 처음 알고, 참석해 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기를 어언 n년 째..

이번에야 말로 한 번 참여해 보고자, 드디어 2010년 1월 27일!!! 제 902회 수요시위 참가 신청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홈페이지(http://www.womenandwar.net)에서 하고 수요일만을 두근두근 기다리고 있었죠. 

 수요시위 장소인 일본대사관으로 가기 위해 도착한 광화문역

 알고 봤더니 작년에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도 수요시위 주관을 했고, 올해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괜히 간다고 했나, 너무 빨리 가는건 아닐까, 일본대사관이 어디 있지? 등등 혼자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별 별 생각을 다 했었지만, 막상 찾아간 일본대사관 앞에는 이미 도착해 계신 길원옥 할머니를 비롯한 봉사자분들, 시위에 참가하러 온 분들을 포함해서 제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계셔서 길치인 저도 찾기 쉬웠습니다. 

 수요시위 중인 길원옥 할머니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이번 수요시위를 주관한 양서고등학교 동아리 ‘햇담’ 학생들과 안산 동산고등학교 ‘반크’ 학생들, 그리고 “두 할머니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고 수요시위에 참가하고 싶어서 아버지와 함께 왔다는 한 어린 여자아이였습니다.

특히 햇담의 경우에는 제 700회 수요시위 때 양서고등학교 근현대사 선생님께서 수요시위와 위안부 관련 특별수업을 통해 만들어진 동아리로, ‘나눔의 집’ 봉사와 수요시위 참가를 한다고 합니다.

그 학생들을 보면서 똑같이 근현대사 시간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분개했지만,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바로 잊어버린 저에 대해 반성하게 됐습니다. 이번에 한국성폭력상담소 인턴 직원으로 일하면서 ‘행동’과 ‘참여’의 중요성, 그리고 그것의 부재에 대한 자기반성이 저에게 큰 밑거름이 되는 것 같아요.

학생들의 노랫소리와 일본대사관을 지키는 의경들, 그리고 꽉 닫긴 창문의 일본대사관의 모습이 불협화음을 만들어 낸다.

2010년 국치 100주년, 광복 65주년, 게다가 수요시위 900회를 지나 902회, 그 긴 기다림의 세월 동안 87분밖에 남지 않은 할머니들…….

정확히 12시에 시작한 수요시위를 ‘바위처럼’으로 열고 경과보고를 하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분께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 모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사실 900회를 넘은 것은 기념할 일이 아니라 슬픈 일이죠.

그 말씀을 하시는 등 뒤로 답답하게 작은 창문이 꼭 닫겨 있는 일본대사관은 두 귀를 꽉 틀어막고 있는 일본과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뒷짐만 지고 있는 한국 정부를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올바른 역사를 역설하시는 길원옥 할머니

하지만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일꾼이 되어 주길 바란다는 길원옥 할머니와 할머니가 춥지 않도록 그 뒤를 든든하게 바람을 막아준 (저 포함^^) 많은 젊은 혹은 어린 학생들, 그리고 햇담의 다소 어설프지만 즐거웠던 문화 공연(거위의 꿈, 아름다운 세상) 덕분에 무거운 분위기보다는 밝게 할 말은 하는(!) “야 너네(일본) 잠이 오냐! 내가 밤마다 괴롭힐거야!” 자기 주장하는 그 모습이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마음만은 따뜻해지게, 아니 뜨거워지게 만들었습니다.

 50만명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서명운동과 수요시위 동안 내가 들고 있던 피켓

전쟁 없는 세상을 바란다며 진정한 사과를 기다리신다는 길원옥 할머니.

특히 인상 깊었던 말씀은 “지금 다들 건강이 안 좋아서 (수요시위에) 못 나오고 있는데, 안에 있으면서 저 건너편 집(일본 대사관)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의 좋은 소식이란, 일본의 사과와 피해 보상, 그리고 올바른 역사 교육 뿐이었죠.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이고 일의 귀결인 것 같지만 수요시위가 902회가 올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슬프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학생들이 건낸 응원 메세지에 환하게 웃으시는 길원옥 할머니

900회 시위 때 나왔던 말처럼 1000회 시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할머니들과 몇몇 사람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노력과 호소가 필요하다는 생각 역시 들었지요. 

제 인생 첫 시위였던 수요시위 902회가 있었던 2010년 1월 27일,

할머니들의 역사를 통해서 제대로 된 역사에 대한 고민과 실천하는 지성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좋은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