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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

[후기] 2022 상반기 회원놀이터 <말하는상영회: 애프터미투 GV>

happly ever after. 의 After 

사람의 삶도 동화처럼 다사다난한 고비 몇 개만 넘기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며 끝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수많은 사건을 넘겨도 삶은 단순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미투운동은 모든 언론과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사회를 변신 시킬 듯 했지만 ‘사이다 결말’은 현실에선 이뤄지지 않고 가장 지지부진한 싸움의 시작일 뿐이었다.

<애프터 미투>는 그 시끄럽고 떠들썩했던 미투운동이 다소 조용해진 지금을 담아냈다.

조용해지면 모든 것이 끝난 줄 알고 해결 된 줄 아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Happly Ever Afer의 After인 것이다.

 

 

GV는 처음이었는데 보통 영화를 보고난 감상을 같이 본 일행이나 인터넷에서만 풀곤 했었는데 한 시에 함께 본 사람들과 감상을 나누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듣고 제작자의 대답까지 듣는 시간이 매우 신기했다. 영화 전후로 내심 거리감을 두며 심경의 변화가 있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소극장에 오면서 했었는데 GV 대담 시간이 그런 안일한 마음을 완전히 바꿔주었다. 끝내 마이크까지 잡고 발언할 정도로. 종종 이 말은 꼭 해야지 직성이 풀리겠다는 기분이 들때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날이었고 시간과 조급함에 쫒겨 달달떨며 압축하고 압축한 횡설수설이었던 발언은 조금 민망했지만 마이크를 잡겠다 들었던 손은 후회하지 않는다. 

스스로 항상 세 발짝 쯤 떨어져있다고 생각하며 이런 관련 사건들에 거리감을 두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운이 좋아 겪지 않아서, 내 가족에겐 벌어지지 않아서, 내 친구들이 당했다는 이야기들 듣지 못해서. 당장 나의 일이 되지 않기에 잠깐 멀어져도 괜찮을 거라며 위안하고 그만큼의 거리감으로 사건들을 대했었다. 그래서 처음 제목을 듣고 참석하기로 결정할 때까지 스스로의 자격을 따져보다 그래도 한번쯤은 가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참석을 결정했다.

 

 

4개의 에피소드 상영이 끝난 후 영화는 시계의 숫자판을 들어내 시계 안쪽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시계가 정교한 기어들과 부품들로 돌아가는 건 알고 있지만 의식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들여다보면 그 속이 매우 정교하고 서로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부속품이 없다는 걸 알 게 된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 내고 움직이고 모든 움직임이 옆 사람에도 영향을 주고 결국에는 서로 관련이 없다고 여겨지는 분야까지 변화를 주고받고 있었으며 심지어 누구도 멈추지 않고 있었다는 걸 직접적으로 본 순간이었다.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영화는 스쿨미투, 예술계 미투, 성폭행 트라우마, 성적 자기결정권을 다룬 4개의 단편영화로 구성되어있는데 운동 이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영상은 몇 겹의 전시장 유리 너머로 바라보던 사람을 바로 눈 앞으로 데려와 면담을 시켜주는 듯 했다. 에피소드들을 보는 내내 나였다면? 그런 상황 한가운데 놓여있었다면 나는 저 물결에 기꺼이 동참을 했을까? 한 발짝 물러나 일어나는 친구들을 이방인 마냥 지켜보고 있었을까? 나는 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당연히 했을 것이다. 라는 확답이 나오지 않는 자문에 존경심과 자괴감이 답했다. 자괴감은 앞이 아득해지는 막막함까지 데려왔다. 영화 바깥의 영화 같았던 <이후의 시간>에서 ‘내가 작가인지 활동가인지 모르겠다’ 는 회의감과 ‘이 모든 문제들을 여성단체들이 해결해 줘야하나?’ 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막막함에 무게를 더해주었다. 이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누군가가 나선다고 아주 조금이라도 풀리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끝나지 않는 질문이 불러오는 아득함은 기분을 착잡하게 만들었었고 불편한 마음을 보따리에 싸매놓고 밀어뒀는데 자괴감과 무력함과 막막함이 냄새처럼 새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불이 켜지고 감독님들과 이산배우님의 제작할당시의 선정이유와 다른 관객 분들의 감상을 차근차근 듣고 있다보니 이 막막함이 조금 해소가 되었다. 모두 비슷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고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었던 시계판을 다시 닫고 숫자판을 보니 그만큼 시곗바늘도 움직였고 절대적인 시간도 지났던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더라도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는 없고 그만큼 세상은 내 의식 밖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으며 우리 스스로 또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을 알게 되었다.

막막함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지만 당시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튼튼한 끈으로 엮어서 서로를 의지할 수 있게 된다는 큰 의미를 가진 시간이었다.

 

(이 후기는 회원놀이터 참여자 지유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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