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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

오랜 역사의 한 장면

 

지지난주에는 대청소를 했습니다. 상담소 2층 사무실과 지하 창고 깊숙이 있던 모든 자료를 꺼내고 먼지를 털고, 보관할 자료와 파쇄할 것들을 나눴습니다. 이 많은 파일들을 정리하고 있는 자원활동가님.  

대청소의 묘미는 어느 순간 나타난 사진 한장, 옛날 자료 속에 있겠죠. 앨범에 먼지를 닦는데 툭 떨어진 사진 속에서 당신의 선배 활동가가 마이클잭슨 파마머리에 주먹만한 나비안경을 쓰고 있다면! 유후~ 그녀를 삼개월 쯤은 놀려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배가 두둑해지겠지요. 

2000년데 초반에는 대학을 중심으로 여성 및 소수자들이 '공적인 공간' 이 편치 않다는 경험을 드러내며 독립공간을 공적으로 요구하는 운동이 활발했습니다. 2001년에 있었던 '여학생 휴게실 기능전환을 위한 공모작 전시회' 팜플렛 입니다.

지금은 법률지원을 자문연계변호사 사무실과의 다이렉트 연결을 통해 하고 있습니다만, 몇 년 전까지는 상담소에서 주1회 법률상담 시간이 따로 있었습니다.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기 이전에는 '토요법률상담' 이었지요. 정오의 따뜻한 햇살을 쬐며 법률상담시간이 끝나고 자문변호사님과 활동가들이 소회와 토론을 나누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요런 쪽 장은 참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자문위원 위촉장 서식을 업그레이드 하려고 하던 시절의 교정지. 이런 것은 사료일까요 아닐까요? 지금 자문위원 위촉장은 매우 심플하고 영문 표기도 없답니다.  

상담소는 91년 개소한 이래로 몇 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의 합정동 집에 자리잡았습니다. 강남구 도곡동 가람빌딩 5층에 세들어 있던 시절의 봉투. 요금별납은 양재우체국으로 되어 있군요. 지금도 가끔 걸려오는 전화에서 "양재동에 있지요?" 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메일 계정은 두루넷(thrunet.com)이네요. 그러나 웹사이트 주소 sisters.or.kr는 지금도 인기리에 건재!  

이것도 역시 사료인지 아닌지 순간 신중해지는 한장의 쪽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엠블럼은 '삼발이'라고 불리는 저 문양입니다. female을 나타내는 기호에 발이 두개가 더 달려, 여성들간의 연대와 지지, 우애를 나타낸 것이에요. 금박이라는 메모는 어디에 쓰려고 해두신 것인지 짐작은 잘 안되지만, 저 삼발이는 목걸이로 만들어져 장기근속하는 활동가, 장기활동하는 회원들에게 수여되고 있습니다.

기업이사를 전문으로 하는 곳에서 파쇄용역차 나오셨습니다. 꽤 값이 나갑니다.

파쇄기는 엄청 RPM을 소비하기 때문에 소음이 크다고 해요. 상담소는 주택 골목 안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었고, 가까운 강변북로 한 쪽 구석에서 파쇄가 시작되었습니다. 거센 바람, 파쇄기의 굉음 배경 저편으로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있었어요. 상담소의 기록물은 사무실 서고에서 보관되고, 파쇄된 자료는 역사속에 누군가의 기억속에 잘 자리잡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