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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민주노총 성폭력에 대한 입장과 제언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2009. 2. 27. 18:03


 

민주노총, 성평등한 조직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성폭력 예방도 없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간부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여성운동 단체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매우 충격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놀라울 것 없는 일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그간 많은 여성들이 우리 사회 성폭력과 남성중심적 조직문화에 대해 지난하게 문제제기하고 싸워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가 여전히 강고한 가부장적 조직문화를 갖고 있으며 이는 사회운동단체들도 예외는 아닌 듯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민주노총을 비롯한 많은 진보운동단체가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내부 규약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태도와 감수성은 여전히 매우 일천한 수준임이 드러났지요.


여성운동단체들은 이번 사건이 민주노총 지도부 총사퇴로 종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이것이 민주노총 내부의 권력싸움으로 변질되는 것도 경계합니다. 지금 민주노총은 이 사건을 성폭력 사건이자 여성인권문제 그 자체로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계기로 ‘여성인권이 존중되는 성평등하고 민주적인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뼈를 깎는 자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이번 성폭력 사건에 대응해온 민주노총의 활동에 대한 입장과, 이후 민주노총의 변화를 모색하는 방식에 대해서 몇 가지 의견을 전하고자 합니다.


2차 가해는 몇 사람만의 문제?
2월 9일 발표된 민주노총 기자회견문에서는 문제의 핵심이 되고 있는 2차 가해자를 찾아내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2차 가해는 정말 몇 사람만의 일탈적인 행동 때문에 빚어진 문제일까요? 2차 가해의 문제는 특정 몇 명에게 있는지요?
엄혹한 시기를 내세워 사건의 공개를 주저하고 피해자 측에 내부적 사건 처리를 약속하면서도, 정작 언론에 사건을 유출한 것은 민주노총 간부들이었습니다. 안팎에서 이 사건의 진행과정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민주노총 간부들이 술자리에서 이 사건을 여과없이 얘기하고 기자들에게 발언하는 등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감수성 자체가 없음을 느꼈고, 더 나아가 여성인권에 대한 감수성과 총체적 인권의식이 부재함을 느꼈습니다. 피해자의 인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말입니다.

비뚤어진 ‘조직보위론’
민주노총은 엄혹한 시기에 정부에 맞서 투쟁해야 하는 민주노총 역할론과 조직보위론을 내세워 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유보하고 피해자를 압박했습니다. 남성중심적 조직 안에서 여성인권은 부수적 문제이고, 사건 처리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과 목소리는 조직의 대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것인지 묻게 됩니다. 피해자에게 피해사실에 대해 침묵하기를 강조하거나, 주변인들이 나서서 공론화하지 않기를 요청하는 것이 사회운동조직인 민주노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요? 민주노총이 진정 지켜야 할 조직은 ‘조직보위’라는 이름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압박할 수 있는 공간을 주는 조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권침해도 생기지 않게 고심하는 조직, 사회변화를 요구하는 그 이상으로 조직원들에게 성찰과 변화를 요구하는 조직,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깨끗하게 해결하는 조직이 아닌지요. 비뚤어진 조직 중심주의, 조직보위론으로 더 이상 개인의 인권을 억압하고 가해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성폭력 발생의 근본 원인은 남성중심적 조직문화
많은 여성들의 반성폭력 운동에 불구하고 성폭력이 아직까지 발생하는 데에는 여성들을 주변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성폭력을 피해자의 탓으로, 개인이 조용히 해결하고 넘어갈 문제로 여기는 남성중심적 조직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위원장까지 구속되는 가장 엄혹한 시기에 최측근 간부가 조직을 도왔던 여성에 대해 성폭력을 자행했다는 사실은, 여성들은 조직 내에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동료로 인정받기 보다는 성적 대상으로 취급된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 같아 더욱 분노가 치밉니다.
조직 내 반성폭력 규약이 생겨난 지 거의 10년이 되어 가지만, 그 실상은 어떠합니까. 성폭력 사건들은 더 많이 드러나고 해결되었는지요? 성평등한 문화와 인식이 일상 속에 자리 잡았을까요?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와 분리되어 있고, 개개인의 목소리보다 조직의 보위가 우선한다는 권위적 판단이 통용되는 조직문화 속에서는, ‘간부’나 ‘지도부’의 성폭력적 행동이 조직 내 권력적 위치를 이용해 정당화하고 무마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성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문화는, 성폭력 뿐 아니라 일상적인 차별, 배제, 소외, 성별 분업에도 허용적이기 쉽습니다. 또한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조직은, 성별 차이뿐 아니라 나이, 학력, 고용형태 등의 차이도 차별이 되는 문화가 배어 있기 쉽고요. 성폭력의 발생은 그 전과 후의 무수한 일상의 차별과 억압을 드러내는 지표가 됩니다. 이러한 문화가 송두리째 바뀌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있지 않고서는, 안타깝지만, 그 누구도 향후 성폭력 사건의 예방을 약속할 수 없습니다. 근본적인 변화없는 총사퇴는 도리어 잠재적 피해자들에 대한 거대한 입막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간부대상 성교육이 '대안'일 수 있을까
민주노총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직 내 성인지적 감수성 교육과, 간부들에 대한 기본 교육프로그램, 핵심 간부 대상 교육, 가맹산하조직 간부 교육, 신규 채용자 교육을 시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성폭력 사건 발생에 대한 처리 매뉴얼을 가맹 산하조직에 배포하며 성폭력, 폭언, 폭력 금지 처벌 규정의 미비점을 보완하겠다고 밝혔구요. 그러나 이 대책으로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이후 또다른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도부가 총사퇴한 현 상황에서 제시한 대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대책일 뿐이지 않을까요. 민주노총 <성폭력·폭언·폭행금지 및 처벌 규정>에는 이미 성폭력 예방 교육이 의무화되어 있고, 이 규정에는 피해자 보호 및 비밀유지 조항, 엄격한 2차 가해의 방지, 가해자 처벌 조항 등이 이미 다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신뢰할만한 진정성있는 대책은 없는 것일까요.




 

민주노총의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한 제언


10년을 되돌아 보고, 10년을 계획하는 ‘성찰과 미래 보고서’가 필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민주노총 내부에는 이미 성폭력 예방 교육이 의무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이미 존재하는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데, 교육을 조금 더 강화하고 매뉴얼을 배포하면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우선 제도의 보완과 함께 이미 진행되어왔던 교육에 대한 면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성폭력을 예방하고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전담기구를 두고 이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합니다. 또한 규약 제정 이후 지난 10여년간 총연맹과 산하 조직 내의 성폭력 사건 처리 및 예방 교육 실태를 양적․질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평가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규정상의 교육과 내용들이 내실 있게 작용하지 못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성찰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현실에 근거할 때만이 실효성있는 미래계획이 세워질 수 있고, 설득력도 얻을 수 있습니다.

반성폭력 활동이 비대위의 가장 중요한 과제
<성폭력 폭언 폭행 금지 및 처벌 규정>에 따르면 민주노총 내 성폭력 예방 교육의 내용과 실행은 여성위원회가 담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향후 계획에서 중요하게 제안된 내부 교육 역시 여성위원회가 담당하는 것으로 발표되었구요. 그러나 여성위원회가 민주노총 내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으며 어느 정도의 역량이 결집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여성 사안이나 여성의 시각은 노동운동 조직문화 내에서 부차화되었던 문화 속에서, 여성위원회는 민주노총 운동의 '변방'에 자리잡아 여성과 관련된 사안을 분업하여 처리하는 기구가 되어 있지는 않았는지요. 물론 민주노총 내 남성중심적인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싸웠던 많은 여성들의 노고가 여성위원회에 녹아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위원회, 혹은 성폭력 예방을 위한 노력이 조직 내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비중, 다른 의미로 자리잡지 못한다면 이번 대책 역시 지난 과정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솔직한 판단입니다.

일상적인 체질 개선이 중요
상명하달식 전달이 의사소통의 주된 방식이 되고 있는 조직에서는, 조직의 상층이 권력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조직의 위계적 체계가 바뀌지 않으면 사람이 바뀐다 한들 구조 자체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조직 내 성차별, 성폭력 문화의 문제는 핵심 간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조합원이 경험을 나누며 감수성을 함양하고, 일상 속의 대책을 함께 논의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핵심 간부들의 변화가 전 조직적 변화의 기본이고 출발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래로부터의’ 다양한 열린 토론과 경험 나눔이 없다면 이 역시 일방적인 결의와 하달이 될 수 있고, 이것은 일상의 감수성이 변화해야 하는 문제에서는 무기력한 방식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민주노총은 각종 모임과 온오프라인 소통 창구를 통해 그동안 조직 내에서 평가하고 새롭게 구성하고자 하는 문화가 많은 조합원의 집단적인 토론과 노력, 합의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계획하고 실행할 것을 제언합니다.


‘성폭력’을 말이 필요없는 천인공노할 비도덕적 일이라 간주하고 가해자만 격리하는 방식은 차라리 간편하지만, 그 속에 자리 잡은 일상의 문화를 면면히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일은 지난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폭력은 이 과정을 통해서만 줄어들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주노총의 향후 문제해결 활동이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민주노총이 이번 기회에 보다 민주적이고 성평등한 조직으로 거듭나길, 다시 한번 고대합니다.
 

2009년 2월 10일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의 내용입니다. (원문은 첨부파일을 참조!) 

민주노총-논평.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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