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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

실적경쟁 시키는 인센티브 예산, 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으로!

수은주가 영하 13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83개나 되는 단체가 모여서 여성가족부 앞 청계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많은 단체가 모였냐구요? 바로 인센티브 제도에 반대하는 우리의 입장을 알리기 위해서 <여성폭력근절을 위한 올바른 피해자 지원 정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게 된 것입니다.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관련 단체들은 여성폭력피해자를 지원하고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여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관련법들이 정비되면서 각 시설들은 정부에 공식적으로 신고하게 되어있고, 정부는 시설을 관리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매 3년마다 실시되는 평가가 2010년도에 실시되었고, 정부는 이 평가결과 상위권 점수를 받은 단체들에 인센티브를 지급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인센티브.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제도입니다. 잘 한 사람에게 포상하여 사기를 진작시키는 제도이겠지요. 인센티브 제도에 대한 생각은 서로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성폭력피해자 지원을 놓고 실적경쟁을 시키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따져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상담소나 쉼터의 운영현황은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부는 1년에 5,900여만원을 지원하면서 이것으로 3인의 상담원 인건비와 운영비로 사용하라고 합니다(2010년도 기준). 계산을 해볼까요? 4대보험과 퇴직금을 모두 포함한 인건비는 120만원 남짓, 100여만원되는 운영비로 관리비와 전화비를 내고나면 정작 피해자 지원을 위해서 더 쓸 수 있는 돈은 없습니다. 3명보다 더 인원이 많은 활동가의 임금은 다 알아서 충당합니다. 바로 후원회비로. 이 때문에 피해자 지원을 위해서 상담소는 후원회원을 조직하고 후원금을 모으죠. 우리 상담소가 해마다 일일호프며 바자회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올 해 우리 상담소는 깨진 창문, 빗물이 새는 상담실, 곰팡이가 잔뜩 핀 지하 면접실을 보수하기 위해서 열심히 모금을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후원금을 열심히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정부는 면접실의 규모가 적정한지, 방음장치가 되어있는지, 방염시설이 되어있는지 나와서 점검만 할 뿐, 이렇게 낙후한 시설을 보수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열림터(쉼터)의 사정은 어떨까요? 정부에서 지급하는 피복비는 1달에 1만원 정도입니다. 1만원으로는 속옷이나 양말, 스타킹 정도를 구입하는 것도 빠듯합니다. 겨울에는 매해 난방비를 걱정해야 하고, 청소녀들의 교복비, 학용품 마련비 등도 모두 후원회원들의 몫입니다. 24시간 근무해야 하는 쉼터의 운영사정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운영비 현실화는 제대로 된 피해자 지원, 평화와 평등이 자리잡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 조건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늘 예산이 부족하다며 어렵다고 호소합니다. 전자정부 시책에 따라 쉼터 입소자 정보를 무조건 전산 프로그램에 입력하라는 정부에게, 여성폭력피해자의 개인정보 유출 염려가 있으니 사회복지시설과는 별도의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냐고 반문하면(관련 포스팅 보기) 정부는 예산이 부족해서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인센티브 예산을 도대체 무슨 돈으로 책정하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기자회견을 통해서 정부에 물었습니다. 여성폭력피해자 지원정책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왜 올바른 예산정책에 대한 고민은 없으면서 인센티브는 대뜸 지급하겠다는 것인지, 도대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이 더 좋은 폭력피해자 지원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인지? 정부가 원하는 것이 단체들 간에 불필요한 실적경쟁 시켜, 돈으로 단체들을 쥐락펴락 하면서 관리하고 규제하는 것일 거라고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부의 피해자 지원정책에 대한 입장이 그렇게 몰지각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활동한 단체에 인센티브 탈락이라는 박탈감만 안겨준 인센티브 제도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아무리 인센티브가 대세라고 하여도, 폭력피해자를 지원하고, 폭력없는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에게 실적경쟁을 시키는 것은 정말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아니냐고 말입니다.
이 열악한 재정구조부터 먼저 살피는 정책이 필요하지 않냐고 말입니다.
폭력피해자 지원을 위한 실질적인 예산을 배정하는 것보다 더 급선무인 것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여성폭력근절을 위한 올바른 피해자 지원정책과 예산 배정보다 인센티브가 먼저일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기자회견문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