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를 말하다

우리와 같은 활동, 같은 고민의 호주 캔버라 강간위기센터


 

  호주에서 유학 중이신 이미경 이사님께서 호주의 캔버라 강간위기센터(Canbaerra Rape Crisis Centre)를 방문하신 후기를 나누어주셨습니다.  
  우리 한국성폭력상담소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곳, 캔버라 강간위기센터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와 같은 활동, 같은 고민의
호주 캔버라 강간위기센터
(Canberra Rape Crisis Centre)

 

  호주의 원주민인 애버리진(Aborigine)의 언어로 '만남의 장소'라는 뜻을 지닌 호주의 수도 캔버라(Canberra). 이곳 캔버라에 1976년 문을 연 강간위기센터를 지난 5월 29일에 다녀왔어요. 대부분 90년대 이후에 생긴 우리나라 성폭력상담소들보다 20여년 먼저 활동을 시작한 곳이라 여러모로 그 활동이 궁금하고 또 기대되는 점이 많았어요. 특히 1979년에 이곳의 상담원이 법원에서 요구하는 상담일지를 내담자의 프라이버시권 보장을 위해 줄 수 없다고 거부하여 문제가 되었다는 자료를 읽으면서 그들의 철학과 강단에 깊이 감동되었거든요.

   보름 전에 미리 방문약속을 하고 받은 주소를 들고서 일본인 친구와 함께 찾아갔지요. 캔버라강간위기센터는 도심에서 도보로 20분정도 떨어진 한적한 곳에 가정집을 개조해 사용하고 있었어요.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어서오세요”라며 힘찬 포옹으로 우리를 반기는 베로니카 소장. 처음 만났지만, 우리네 여느 활동가와 다름 없는 모습이어서 정말 친근감이 느껴지더라구요. 입구에 들어서자 벽에 붙어있는 각종 포스터들, 그리고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상담소 브로셔와 소책자들이 눈에 띄었어요.

 

 ▲ 센터 현관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브로셔와 각종 안내물들

    베로니카는 우리에게 맛있는 홍차를 타주고면서 사무실 여기저기를 돌며 자세히 소개해주었어요. 상담실은 사무실이 있는 본채와 연결된 별채 1,2층에 아주 아늑한 공간으로 마련되어있드라구요. 특히 어린이성폭력피해생존자를 위한 각종 인형과 동화책이 놓여있는 방은 정말 포근한 느낌이 들어 아이들이 집처럼 편안한 느낌으로 상담 받을 수 있겠다싶었어요. 저희가 갔을 때 두 방에서 상담이 진행 중이었고, 또 2명은 면접상담 대기 중이었어요. 더구나 집 뒤뜰은 어린이 놀이터도 있더라구요. 이 센터는 집 두 채를 사용하고 있어 비교적 넓은 공간인데도 상담과 교육 등 여러 활동들을 하기에 너무 좁아서 곧 길 건너 있는 폐교를 개조해 이사를 간다고 하네요.  

 


▲ 어린이 친화적인 상담실 전경

  이어서 베로니카의 방에 가서 면담을 시작했지요. 방 가득히 포스터와 사진들, 그리고 쌓인 자료들. 너무나 익숙한 풍경에 마치 우리 상담소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였어요.   


▲ 베로니카 소장과 사무실 정경

  1976년 반성폭력 운동의 필요성을 느낀 페미니스트들이 만든 이곳 캔버라 강간위기센터. 우리랑 거의 비슷하게 상담과 각종 성문화를 바꿔가는 활동들을 하고 있었어요. 24시간 상담도 하는데, 5시 이후에는 담당자의 핸드폰에 착신해서 전화를 받는다고 하네요. 또 경찰 수사단계부터 동석하는 활동, 그리고 밤길되찾기행사, 각종 캠페인, 성폭력예방교육, 또 주요 사건이 있을 때마다 지원과 함께 언론에 상담소의 입장을 밝히는 활동, 정부위원회의 참여…….

   무엇보다 1983년부터 정부지원을 받으면서 제도화로 인해 우리나라 반성폭력운동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와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어 거기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많다고 합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호주 강간위기센터의 재정은 90%이상이 정부지원이기 때문에 우리보다 더한 고민이 있겠지요. 그런데 정부 재정이 전체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는 비정부기구인 여성단체로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기능을 하며, 무엇보다 생존자를 지원하면서 절대 정부에 고개 숙일 필요가 없다”는 강력한 태도가 어떻게 가능한지 매우 궁금했어요. 베로니카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생존자를 지원하는 일은 당연히 정부가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현 정부가 개혁적이고 친(親)NGO적이라서 지금은 별 갈등 없이 지내고 있다고 답하였어요.

   일반인들의 후원금은 아주 적지만,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엊그제 어떤 젊은 여성이 자신이 받은 유산의 일부인 1,000만원을 흔쾌히 상담소에 기탁해주어 너무나 감동해 울었다는 베로니카 소장의 설명을 들으며, 무엇보다 NGO로서 상담소들의 활동에 가장 큰 힘은 대중의 참여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어요.

   그리고 경찰에서도 캔버라강간위기센터 활동가가 동행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더욱 세심하게 다룬다고 합니다. 상담원이 경찰수사과정부터 동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담원의 자격기준 등이 논란이 되어서 이 상담소 활동가들은 이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겪고 있는 상담원을 비롯한 활동가들의 ‘전문성’ 문제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대학원 진학하여 학위를 따는 것이 그 해결책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우리 활동가들이 각자 현장활동에서 쌓은 전문성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 캔버라 성폭력위기센터의 포스터 

  또한 ‘캔버라 강간위기센터’라는 명칭이 갖는 한계 때문에 현재 상담소 이름을 바꿀 것인가 그냥 그대로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 중에 있다고 하네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1990년 말 이후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였어요. 즉, 강간(rape)라는 단어가 주는 특정이미지의 문제와, 상담소가 위기상담만이 아니라,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성문화운동 등 상담 이외의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 현재의 명칭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인 거지요. 그러나 베로니카는 그동안 수없이 이름을 바꿨을 때의 장·단점을 헤아려보았지만, 30년이 넘는 역사와 이미지 등을 고려하면 상담소 명칭을 바꾼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며, 본인은 현재의 이름을 존속하자는 의견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이 센터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베로니카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우리는 처음부터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성폭력 문제는 페미니스트적 접근이 아니면 해결하기 어렵다. 우리의 철학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조직운영에 대해서는 조직구성원 모두가 평등하며 민주적 절차를 거친 의사결정과정 등의 기본철학이 있지만, 2002년부터는 소장(manager) 역할에 좀 더 강력한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하네요. 이 점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소장이 아닌 활동가들의 입장은 어떤지도 궁금했지만, 거기까지는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구요. 앞으로 여성운동 조직이 갖는 기본철학, 민주성과 효율성 사이의 혼란과 갈등, 방향성 등을 함께 논의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원래 예정한 면담시간을 훨씬 초과해 2시간이 넘게 이야기 꽃을 피웠답니다. 그리고 베로니카는 밤길되찾기 행사 때 만들 T셔츠와 여러 행사 포스터를 포함한 각종 홍보물, 센타 20년사, 30년사 등 발간자료 등을 꼼꼼하게 챙겨주고 우리를 시내까지 차로 데려다 주는 따뜻한 우정을 나눠주었어요. 돌아오는 길에 새삼 성폭력은 세계 어디나 있는 문제들이고, 이에 대항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의지는 세계적으로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지구 반대편의 한 지역에서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동료를 만난 기쁨, 앞으로 함께 나눌 연대 등에 대한 기대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작성 :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