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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피고인이 되다니.. 국방부 앞 퍼포먼스 풍경


오늘 아침 9시 30분,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광우병 시국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오늘이 너무나 중요한 날이기에 열린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오늘은 국방부에 있는 고등군사법원에서 한 여군 대위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는 날입니다. 

상관에게 6개월이 넘게 스토킹 피해를 입었지만 정작 가해자인 상관은 가벼운 경고만을 받고, 도리어 상관이 거짓 고발한 죄목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여군 대위에 대한 항소심 재판입니다. 재판이 열리기 전 이른 아침, 군인이라는 신분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 스토킹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피해자를 생각하면서 준비한 퍼포먼스가 국방부 앞에서 열렸습니다.

 

 

 

6개월이 넘게 피해자를 스토킹했던 가해자는 피해자가 자신의 말을 좀처럼 듣지 않자, 수십가지의 자잘한 항목들로 피해자를 고발합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헌병대 조사에 당황한 피해자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합니다. '왜 나한테 도와달라고 안 하냐?' ,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없던 일로 해줄 수 있다.', '오늘 진술서를 쓰기로 했는데 너한테 유리하게 써줄까?' 결국 헌병대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피해자를 고발했다는 것이 드러나고 피해자가 자신의 스토킹 행위를 밝히자, 그는 다시 항명으로 피해자를 추가 고발했습니다.  

 

군 재판부는 피고인이 된 피해자 측의 말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고발자인 상관 쪽 증인의 진술이 앞뒤가 안 맞아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1심에서는 무려 12시간 동안 재판이 열렸습니다. 피해자는 대답하고 또 대답하고, 증인을 모아 결국 2건의 항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죄를 입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2건의 항명에 대한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싸움을 시작합니다.  

 

 

 

인권보다 명령이, 삶의 가치보다 지휘권이 중요한 군대 안에서 피해자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헌병대 조사 과정에서 참다 못해 자신이 겪은 스토킹 피해를 밝혔지만, 사단 안의 그 누구도 이 여군 대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가해자는 소속 사단에서 무려 9년 동안 근무해왔고, 앞으로 군생활을 계속 하려는 군인이라면 이 사람의 편을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굳이 이 사람의 편을 들지 않더라도, 피해자의 편에서 용기있게 증언하기란 너무나 어려울 것입니다. 피해자 역시 그런 마음으로 스토킹에 대해 쉽게 말하지 못했으니까요. 군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들 눈에 띄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되는데, 인권침해를 밝히는 것은 당장 군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국방부는 이러한 상황을 계속 묵인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피해자 혼자 외롭게 싸워야 한다면, 가해자가 피해자를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고발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군은 그야말로 '조용히' 이런 사건들을 덮어둘 수 있을테니까요. 이것이 군이 말하는 '선진병영문화'인가봅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 문화말입니다. 

 

 

 시민단체에서 아무리 군 안의 인권 문제를 이야기해도, 군은 듣지 않습니다.

'그게 뭔데?', '난 몰라!' 아무것도 모른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군 안에서의 인권침해를 용기있게 고발한 많은 피해자들 앞에서, 국방부는 이런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 보호에 대한 감수성도, 성차별에 대한 경각심도, 인권에 대한 고려도 '모른다'는 딱지를 붙인 채 내팽개친 국방부. 우리는 앞으로 어떤 목소리를 내야할까요? <군내 스토킹피해자 지원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앞으로 이 사건에 끝까지 함께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