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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3월 월례포럼 이야기 : 사람이 보이세요?



  KSVRC 3월 월례포럼이 지난 3월 30일(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합정동 까페 여름36.5C에서 있었습니다. 강의를 나눠주신 분은 조용히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책 "닥쳐라, 세계화"(당대) 의 저자, 엄기호님. "포르노, All boys Do it"의 저자로 잘 알려져있던 분이기도 한데, 지금은 인권연구소 창의 책임연구원으로 있다고 소개하셨습니다. 문화학을 공부하던 사람이 어떻게,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친구들을 만나고 세계의 저항행동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이토록 생생한 책을 쓰게 된 걸까요? 너무 흥미로웠던 월례포럼의 몇 가지 주요 이야기를옮겨보겠습니다.  


이 분이 엄기호님. 첫 인상은 몹시 과묵 & 까칠.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예외화'

  전 세계는 빈틈없이 이어진 국경을 통해 국가로 나눠져있었습니다. 그 국경을 넘게 되는 공항 출입구를 보면 알 수 있죠. 국민, 외국인(비국민), 그리고 관료(관료는 국가의 업무를 위임받은 사람들=국가). 국가 안에서 법과 정책으로 통치가 이루어집니다. 이 나라에서는 무엇을 금하고 무엇은 처벌하며, 무슨 법칙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국민보다는 '예외'를 더 좋아합니다. 단돈 9천구백구십만원(정확한 액수는 검색plz)에 공항 출입국 통과대를 무상패스하게 해드리는 타이엘리트카드. 2MB도 공약에서 100명의 경제인을 VIP 대우하겠다고 했었죠. '국민'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건 차별에 해당하지만, 이런 '예외'가 규범이 되는 것이 세계화.  

  돈이 있다면 비국민일지라도 국민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법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물론 WTO, FTA 등 약속을 하지만 국내법들과 충돌하죠) 송도에 짓겠다는 송도국제자유도시에서도 법은 정지됩니다. 노동3권이나 성매매특별법도 정지되거나 제한적용. '예외'는 너무 많아지면 그 자체가 규범이 되겠지요.


국경없이 논스톱, 뭘 하려고?

  콘스탄트 가드너라는 영화는 초국적 기업이 제국과 결탁하여 3세계에서 어떤 일을 벌이는 지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실제로 캄보디아에는 인체실험에 대한 윤리적 금지조항이 법적으로 정비되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제약회사는 에이즈 치료제에 대한 생체실험을 캄보디아의 HIV 감염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안전장치없이, 콘돔은 착용하지 않게 한 채 실험중인 피임약을 성매매 여성들에게 복용시켰구요. 그 약은 약효가 없는 것으로 판명났습니다.

  한국에서 성매매특별법으로 성매매를 금지시키자, 한국의 중산층들은 3세계로 성매매관광을 떠납니다. 팟타이에는 성매매되고 있는 여자 어린이들이 거리에 차 있습니다. 사람도 자본도 국경없이 세계를 넘나들 수 있게 되면서, 가장 취약한 곳, 법적으로 인권 생명의 문제 전쟁 보호조치가 가장 취약한 곳으로 모든 것이 몰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주변부가 가장 세계화된다 

  가장 세계화된 동네는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미국이나 빠리? 그런데 아프리카 쓰넘이 가장 세계화된 곳입니다. 벡텔이라는 미국의 초국적 물회사가 있는데요, 이 물이 한국에 들어오려면 투자협정, 세금, 법 등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벡텔에게 떼돈을 벌어준 곳은 다름 아닌 이라크. 이라크가 물전쟁이었다는 말도 있죠? 폭격 이후 발생한 모든 물에 관련된 권리는 벡텔에게 넘어갔습니다. 이라크는 폭격을 맞고 폐허가 된 곳, 세계화의 첨단과는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지만, 가장 세계화된 권력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국민의 난민화, 존재하지 않는 자들
 

  예외의 위계 속에서 가장 밑바닥에는 ‘존재하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쓰나미 피해가 세번째로 컸던 태국의 푸켓. 해안가에 즐비했던 성매매업소. 쓰나미 피해에 대한 전세계 성금은 인류역사상 최고액이었지만, 보상받은 것은 업소주인, 포주들 뿐이었습니다. 성매매여성들은 보상받을 근거가 없는 '존재하지 않는 자'였던 것입니다.

  홍콩도 이주가사도우미는 홍콩에서 100년을 살아도 영주권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홍콩은 법이 잘 되어 있어서, 일정기간 이상 노동하면 시민권에 준하는 영주권이 나오는데, '이주가사도우미'만은 예외입니다. 두바이에서는 모든 이주노동자에게 영주권이 금지되어 있으며, 싱가폴은 이주노동자가 일하든 말든 그것은 국가가 관여할 일이 아니고 집주인과의 개인계약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홍콩이나 두바이, 싱가폴에 쓰나미가 닥쳤다면 그 중 '존재하지 않는 자'들은 죽어서도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자국 내 국민들은 다를까요? 지난 용산 철거민투쟁에서 희생당한 이들은 '도심테러리스트'라고 명명되었습니다. 경찰력이 보호해야 할 '국민'이 아닌 존재. 이것은 대통령이 독재자라서라기보다,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국민을 포기하는지, 국민이 난민화되는지, 국가는 할 일을 포기하는지, 신자유주의의 방해물을 치워주는 '군사'적인 역할을 강화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날 찍는 당신은 누구냐고 되묻는다. 해석자와 증언자의 위치에 대해 질문하는 사진. 


당신이 경험한 것을 스스로 말하라 

  아이러니하게도,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이에 맞서는 저항행동 역시 세계화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연대한다는 것이 예전에는 매우 어렵고, 거대한 국제 NGO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죠. 그러고보니 국제연대를 하는 기구들과 사람들은 매우 위계적이고 관료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3세계, 취약국의 빈민들에 대해서도 이들은 '해석자'로 위치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증언'으로 위치짓습니다. 증거물인 그들은, 컨퍼런스니 포럼이니 하는 거대한 행사, 국제연대의 주요 '행사'에도 참여할 수 없었지요.

  그런데 이제 정보의 직접교류, 직접소통이 가능한 기반이 역설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몇 년전 아프리카 나이로비에서 열렸던 세계사회포럼에서, 빈민을 주제로 포럼 사업을 한 주최측을 최초로 점거하여, 그들이 물값 숙박료 입장료의 값을 내리도록 했습니다. 길고 난해한 언어로 토론하는 행사장의 옆 마당에서는 노래와 춤으로, 5분 발언으로, 간명한 구호가 적힌 티셔츠로 신나게 한판 벌이는 장이 펼쳐졌고요.

이 운동단체의 이름은 Stop Think! 라고 합니다. 멋지죠?


  신자유주의는 사실 우리 안에서 매우 익숙한 삶의 양식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권리'를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갈 연대의식, 연대할 권리로 보기보다 나 하나 누구에게 간섭받지 않을 권리로 이해하죠. 자기 한 몸에 대한 철저한 소유권, 재산권으로 말입니다. 돈을 중심으로 다른 대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점점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요. 

  강사님은, 급진적으로 사고하고 전략적으로 행동하라, 는 말을 남기고 강의를 마쳤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현재 어떤 '상태'인가보다, 어떤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나를 폭넓게, 치밀하게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 가장 현명하고 전략적인 행동을 찾아낼 수 있고요. 세상은 어떤 '경향'으로 움직이고 있나요? 우리는 어떤 '경향'으로 살고 있는지요?


  3월 월례포럼 후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5월 월례포럼에서 더 많은 얼굴들 뵙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