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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

한국성폭력상담소 제1065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여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1065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여하다.

드디어 3월 13일 아침이다. 이렇게 중대한 일을 인턴에게 맡기다니 콩알만한 심장이 더욱 작아진 것 같다.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실망하며 만들어 놓은 예쁜 나비들이 젖고 찢어져 날개짓을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고, 노래가 너무 어려워서 음을 다 올라가지 못하는 것 등등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을 설쳤다. 11시 반을 좀 넘어서 도착했을 때는 모인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날씨가 춥고 어두워서 많은 사람들이 오기는 어려운가 보다 생각했다. 시위를 준비하며 시간을 보내고 시작을 했을 때 앞을 돌아보니 꽤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오늘 수요일에도 ‘평화로’에는 어김없이 제 1065차 수요시위가 열렸다.



오늘 수요시위의 사회자는 열림터 활동가 ‘공명’이 맡아주었다. 수요시위를 기획하면서 사회자는 밝고 유쾌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현실은 어두웠지만 언젠가 이뤄낼 것이라는 긍정적이고 건강함이 느껴지는 수요시위를 진행해줄 적임자가 공명이라고 여겼고 나의 예상이 적중했다. 공명의 크고 밝은 목소리와 여유롭고 안정적인 진행으로 수요시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렀다.




- 신나게 여는 무대

수요시위는 항상 ‘바위처럼’으로 시작을 한다. 오늘은 란, 두나, 토리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율동을 해주었다. 너무 너무 귀여운 율동이었다. 조금씩 틀리기도 하고, 부끄러운 듯한 그녀들의 큰 미소와 움직임들이 보는 우리들도 함께 따라 미소짓게 했다.





- 상록수처럼..

노래? 연극?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그 안에 무엇이 담기면 좋을지 우선 정하기로 했다.

‘나는 수요시위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그래, 21년간 수요시위를 지탱하게 한 힘이 무엇일지 말해야겠다.’

나는 작년 광복절 수요시위를 처음 참여했을 때의 감동을 담아내기로 결정했다. 그날 비바람 속에서도 꿈쩍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는 왜 그 궂은 날씨에도, 사회자의 말이 들리지 않는데도 그 자리를 지켰을까. 그것은 잠시나마 그 자리에 서있는 것으로 수요시위를 지지하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상록수처럼... 나는 그 경험을 통해 수요시위의 힘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와 정대협의 열정 그리고 참여자들의 연대라고 생각했다.

매주 수요일이 따뜻하고 맑은 날씨이면 참 좋겠지만 봄이 있으면 겨울이 있듯, 날씨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수요시위는 항상 그 자리에서 열렸다. ‘상록수’를 부르기로 결정한 것은 할머니들에게, 21년간 수요시위를 주최한 정대협 진행자들과 참여자들을 위로하고 언젠가는 우리가 꼭 이기리라는 믿음을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래는 의미가 있는데 문제는 노래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다. 양희은씨의 동영상을 열 번도 넘게 보면서 너무 편안하게 부르는 모습에 어려운지 몰랐는데 따라 불러보니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활동가들과 모여 노래 연습을 하면서도 같은 문제에 부딪혔다. 그럼 김민기씨꺼로 시도해 보았지만 느리고 저음이라 너무 처지는 것 같았다. 배경음악을 아예 없애고 우리끼리 불러보았다. 우리가 제대로 불렀는지 의심스럽지만, 나름 우리만의 편곡으로 ‘상록수’가 불려졌다. 사실, 뻥 뚫린 공간에서 배경음악도 없이 노래를 부르려니 너무 걱정이 되었다. 혹시나 싶어서 배경음악으로 깔고 노래 연습을 해보았지만 배경음악 없이 가자는 의견이 많아서 그러기로 했다. 정말 괜찮을까 싶었지만 우리의 목소리만으로 상록수가 불려지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용기를 가지고, 배에 힘을 주고 연습때보다 더 열심히 불렀다. 부르는 쪽에서는 어떻게 들리는지 들을 수가 없어서 잘 불렀는지 모르겠다. 배경음악이 없어서 걱정했지만 이 노래를 아시는 참여자들이 함께 따라 부르는 것이 들렸다. 평화로의 참여자들이 하나가 된 느낌이 들었다.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평화로에 울리는 ‘상록수’였다. 상담소의 다른 활동가들은 좋았다고 평해주었는대, 자화자찬은 아닌지. 직접 듣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배경음악없이 우리의 목소리만으로 울린 상록수가 나는 좋았다.



- 과거 수요시위로 부터 온 편지

내가 읽은 편지는 2012년 8월 15일 수요시위 첫 참가 후 썼던 글을 수정한 것이다. 내가 느꼈던 감동만큼 참여자들에게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8월의 더위를 험한 날씨로 덜덜 떨게 만들었는데도 우리를 서있게 했던 것은 동지애라고 생각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인 서로 모르는 익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열망과 지지를 위해서. 21년간 과거의 수요시위들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빠른 시간내에 수요시위가 필요없어진다면 좋겠지만, 오늘의 수요시위는 과거가 되어 앞으로의 수요시위로도 이어질 것이다. 과거가 단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를 만들고 미래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과거에 감춰둘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수요시위로부터 온 편지가 오늘의 수요시위를 있게하고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였기를 바란다.


- 화끈하게 부셔버리겠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격파를 진행하기로 했다. 정적인 공연위주보다는 활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활달한 수요시위를 만들고 싶었다. 어떤 문구를 적을까 고민하다가 요구사항을 적기로 했다. 하루 빨리 이 요구사항들을 외치지 않는 날이 오기 바라며.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상으로 적은 인원이 참석할 것을 고려해 3명의 지원자를 상담소 내부에서 정해두었는데 예상외로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8개의 격파장이 부족하여 못하신 분들께 죄송하였다. 좀 더 넉넉하게 준비할 걸 그랬다. 어린이부터 20-40대 남녀, 위안부 피해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외침과 격파가 이루어졌다. 요구사항이 적힌 판이 부셔질때마다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았다.


- 연대의 끈

오늘 연대 발언은 여성주의 상담팀의 유영과 열림터의 여름이 해주었고, 연극단의 대표님과 캐나다에서 오신 목사님?께서 해주셨다. 여름이 울먹거려서 발언을 시작하기도 전에 내 눈이 뜨거워졌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지 느껴져서였을까. 수많은 말보다 때론 침묵이 우리에게 전하는 감동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다. 많은 이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다시금 알게 된다.


- 우리는 요구한다

수요시위의 마지막 순서로 백미순소장님이 성명서를 낭독하셨다. 상록수 노래로 서로를 위로하고 과거의 수요시위도 만나고 신나게 격파를 했지만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아직 어둡다는 것을, 아직 우리가 가야할 길이 멀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을 상기해야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고 우리는 요구했다. 그리고 요구 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 사항이 이뤄지는 날까지 우리는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길테니까...”


- 끝내며

이렇게 큰 무대를 인턴에게 기획할 기회를 주시다니 큰 부담감과 함께 감사하였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이 수요시위에서 잘 표현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수요시위라는 역사적 운동의 한 회차를 맡아 기획해보았다는 것이 가슴 벅찬 사건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참 좋은 하루였다. 오랜만에 엄청 긴장해보기도 하고, 진심을 담아 노래와 낭독도 해보았다. 우리의 이런 발자취가 한 발, 한 발 모이면 조금 더 빨리 평화로에서 수요시위가 아닌 평화와 화해에 대한 기쁨을 노래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더 많은 할머니들께서 그 기쁨을 함께 하실 수 있게 조금만 더 빨리 그 날이 오면 좋겠다. 


- 인턴 서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