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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감수성과 성교육/다시 하는 성교육

[다시 하는 성교육 ④] 갑작스런 임신... 어떡하죠? : 임신·출산이 부담스러운 한국사회

 

 

 

 

갑작스런 임신... 어떡하죠?
[다시 하는 성교육 ④] 임신·출산이 부담스러운 한국사회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性)에 대한 나와 우리사회의 인식과 행동을 점검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기 위해 총 5회에 걸쳐 '다시 하는 성교육' 을 연재합니다. '생물학적 성'에 대한 정보 제공 중심의 성교육을 넘어, '삶으로서의 성'을 생각해 보는 기회를 나누고 싶습니다.  본 기사는 '갑작스런 임신... 이젠 어떡하죠? 임신·출산이 부담스러운 한국사회' 라는 제목으로  2013년 7월 1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며칠 전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안 A씨. 임신 소식이 반갑거나 기쁘지 않고 난감하기만 하다. 일단, 최근 이직해 직장 생활에 여유가 없다. 대출금 이자, 부모님 생활비 보조 등으로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다. 결혼을 하기에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남자 친구도 A씨의 임신 소식을 선뜻 반기지 못한다. 그도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임신, 기뻐할 수만은 없는 사회적 조건들

임신과 출산은 성교육의 오랜 주제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된 후, 9개월간 임신 기간을 거쳐 출산한다는 임신 과정 이야기는 성교육 시간마다 중요하게 다뤄진다. 임신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은 이런 성교육 등을 통해 그나마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임신과 출산이 여성과 주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는 적다. 사회 경제적 자원이 얼만큼 필요한지, 어느 정도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지 등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다. 임신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정보도 찾기 어렵다.

상황이 이러니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 임신이 아니면, A씨처럼 임신한 뒤에야 출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 결국 임신 소식에 기뻐하기보단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이 앞서게 된다.

임신은 한국에서는 특히 부담스런 일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필요한 사회적 조건들, 예를 들어 보육과 의료제도,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든 원하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분위기 등이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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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월(IF THESE WALLS COULD TALK) 의 한장면 많은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을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 살고 있다.
ⓒ H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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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원해도 출산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경제적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한국 사회에서 자녀 한 명을 낳아 대학 졸업 때까지 키우는 데 평균 3억890만 원이 든다고 한다(보건복지부, 2013). 충분하지 않은 보육지원제도, 높은 사교육비와 등록금 등은 현실적으로 출산을 선뜻 결정하기 어렵게 한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물론 기혼 여성도 마찬가지다.

많은 여성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투자해야 하는 엄청난 시간과 자원 부족 등을 이유로 출산을 포기한다. 이는 여성들의 엄살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현실이다. 기혼 여성이 비혼 여성보다 낙태를 더 많이 한다. 1회를 초과해 반복적으로 낙태하는 비율도 기혼 여성이 더 많다. 이 사회에서 아이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뿐 아니다. 한국 사회는 결혼제도 안에서의 임신과 출산만을 바람직하게 본다. 한부모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많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비혼 여성이 출산을 결심해도 사회적 비난과 편견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또 아이가 겪어야 할 어려움과 혼자 아이를 기르는데 필요한 경제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심지어 가족과의 관계 단절도 각오해야 한다.

만약 학생이라면 출산과 양육을 위해 학업을 중단할 가능성도 높다. 학업 중단은 취업 등 진로와 밀접히 연결돼 있기에 출산 여부는 삶을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다.

출산을 원치 않아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 인공유산은 건강상의 이유나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 등 몇몇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 불법이다. 물론 형법상 낙태죄는 고발 건수가 거의 없고 처벌도 크지 않아 '사문화된 법'으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엄연히 형법상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로 규정되어 있으니, 출산을 원치 않아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고자 하는 여성은 범죄자가 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에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제대로 해주는 병원도 찾기 쉽지 않다. 현금 거래를 요구하거나 비현실적으로 높은 수술비용 등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관련 시술중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적극적으로 문제제기 하기도 쉽지 않다. 임신한 여성 혼자 여러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양한 선택을 위한 환경 마련돼야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조건이 이러니 출산을 희망하든 안 하든, 여성의 선택과 결정은 쉽지 않다. 언제 누구와 아이를 몇이나 출산할지 말지를 자율적으로 통제하고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아이를 낳아 유기했다는 여성 사례가 종종 뉴스에 나온다. 이런 문제 역시 아이를 낳을 수도, 낳지 않을 수도 없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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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신과 출산의 권리는 여성의 몸과 삶에 대한 권리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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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출산과 관련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무엇보다 당사자인 여성이 자신의 건강상태와 사회경제적 조건을 충분히 숙고해 출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돼야 한다. 

우선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싶어도 경제 상황이나 결혼제도 밖 출산 등의 이유로 출산을 포기하지 않도록 충분한 보육시설과 육아비용 등 현실적 보육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회와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양육 부담을 나눠야 한다. 더불어 다양한 가족 구성에 대한 인식을 넓혀 미혼모, 한부모 가족에 대한 편견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출산 여부에 따라 여성이 자신의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충분한 의학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임신과 출산 관련 의료 비용이 지원되고,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주변 사람들은 여성이 임신과 출산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 해당 여성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게 중요하다.

주변 사람과 사회는 무리하게 출산을 강요하거나, 인공유산한 여성을 범죄자로 만들지 말고, 여성이 자기 몸과 삶의 주체로서 건강히 살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야 한다.

[체크리스트] 출산, 할까 말까 고민된다면

임신, 출산 관련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심사숙고해야 할 게 많습니다. 만약 내가 임신을 한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요? 출산 여부는 내 몸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최선의 결정은 무엇이고 그 결정은 누가 내려야 할까요? 내가 결정하는 몸,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생각하며 다음 체크리스트를 검토해 보세요!

YES! 출산을 하고 싶다면

☑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신체적, 심리적 변화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나요?
☑  임신과 출산 과정에 필요한 의료서비스 정보를 충분히 알고 있나요? 
☑  출산과 양육에 필요한 자원(돈, 집, 시간 등)은 충분한가요?
☑  양육을 함께 할 파트너(애인, 남편, 친구, 부모님 등)가 있나요?
☑  주변 사람들(가족, 친구, 파트너 등)이 나의 선택을 지지하나요?
☑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 단절도 감수할 수 있나요?
☑  만약 그렇지 않다면 출산하겠다는 나의 결정을 지속할 수 있는 의지가 있나요?
☑  (비혼의 경우) 비혼모와 한부모 가족 아이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감수할 수 있나요?
☑  학교에 보육시설이 있나요?
☑  임신, 출산, 양육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나요?
☑  원하는 직업을 구하는데 출산과 양육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  혹시 나의 결정이 '모성을 가진 여성이 임신을 원하지 않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거나, '낙태는 범죄'라고 말하는 사회규범 때문은 아닌가요?
☑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성장을 돕는 책임과 의무를 갖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충분한가요?
☑ 출산을 결정하더라도 양육이 어렵다고 판단한다면 입양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입양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알고 있나요?
☑ 출산을 하겠다는 나의 결정이 나의 삶 전반에 미치는 모든 영향에 대해 충분히 고려했나요?

No! 출산을 하고 싶지 않다면

☑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낙태는 아래 모자보건법 14조에서 허용하고 있는 사유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불법입니다. 나의 경우는 어떤가요? 

※모자보건법 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한계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수술가 아닐 경우,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을 수 있나요?
☑ 인공임신중절수술이 나에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알고 있나요?
☑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나요?
☑ 주변 사람들(가족, 친구, 파트너 등)이 나의 결정을 지지 하나요 ?
☑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출산하지 않겠다는 나의 결정을 지속할 수 있는 의지가 있나요?
☑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 단절도 감수할 수 있나요?
☑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나의 결정이 나의 삶에 미치는 모든 영향에 대해 충분히 고려했나요?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김두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입니다.

출처: [다시 하는 성교육 ④] '갑작스런 임신... 이젠 어떡하죠?' 임신·출산이 부담스러운 한국사회 (오마이뉴스, 2013. 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