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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몰카' 전문 소라넷, 10년간 성역 될 수 있었던 이유

본 기사는 11월 20일, 오마이뉴스에 같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몰카' 전문 소라넷, 10년간 성역 될 수 있었던 이유

[주장] 공론화되고 있는 몰카범죄, 소라넷이 있는 한 근절 불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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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래카메라가 진화하면서 관련 범죄도 나날이 증가 중이다. 타인의 신체를 몰래 촬영 행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에 14조에 따라 처벌된다.
ⓒ pixabay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설치된 카메라가 나를 몰래 찍고, 그 촬영물이 100만 명이 이용하는 사이트에 올라간다면? 섬뜩하고 몸서리쳐지는 일이다. 몰카범죄의 실상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대다수 여성들이 공동샤워시설을, 공중화장실을, 어쩌면 내 집, 내 방조차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없는 현실에 충격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몰카범죄는 실제 드러나는 것이 극히 일부인 범죄다. '몰카'라는 이름 그대로 피해자가 자신이 촬영되는 것을 알기 어려워 몰카범죄를 즉각적으로 중단시키기 어렵고, 자신을 찍은 촬영물이 온라인으로 유포된다는 사실 자체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갑자기 급증한 범죄는 아니다. 위장카메라, 위장촬영어플이 늘어나고 접근하기 쉽기 때문에 몰카범죄가 늘어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위장카메라나 위장촬영어플이 있기 전에도 상대의 동의 없이 신체를 촬영하고 그 촬영물을 유포하는 범죄는 일정량 발생해왔다. 오히려 해묵은 몰카범죄가 드디어 조금은 양지로 끌려 나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몰카범죄에 대한 불분명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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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은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간판과 홍보물을 통해 신체의 일부를 몰래 찍는 '몰카'(몰래카메라) 범죄에 대한 처벌을 알리고 있다.
ⓒ 정민규



몰카범죄는 제대로 처벌되는 경우가 적다. 몰카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지만, 알더라도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법적 한계 또는 미비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0월 언론 보도된 몰카범죄 중 고시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 가해자는 피해자들의 방에 몰래 침입해 속옷 사진을 찍고 피해자의 전신사진을 수백여 장 찍다가 붙잡혔지만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죄가 아닌 주거침입죄만 적용되었다. 속옷은 신체가 아니며, 특정 부위가 아닌 전신(일상적인 모습)을 찍은 사진은 성폭력범죄로 처벌할 수위가 아니라는 이유다. 

성폭력처벌법은 몰카범죄에 대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경우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의견이 나뉜다. 대법원이 신체가 드러난 정도뿐만 아니라 '촬영자의 의도와 경위, 촬영 장소·각도, 특정 신체 부위의 부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한 바 있지만 몰카범죄 판결을 보면 그렇지 않다. 

예컨대 계단에서 연속적으로 뒷모습을 촬영한 경우 다리가 부각된 사진은 성폭력범죄로 인정하나 전신사진에 가까운 사진은 성폭력범죄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가능하다. 스마트폰으로 전신을 찍은 것과 그 사진에서 일부를 클로즈업해서 편집했을 때 후자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되는 식의 법 적용은 이해하기 어렵다.

고시원에서 일어난 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행위를 종합적으로 그리고 맥락적으로 본다면 성폭력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신체 일부와 전신 혹은 얼굴 사진을 함께 찍는 것은 몰카범죄의 한 양상인데, 특정 여성의 속옷과 전신사진을 함께 찍은 것은 다른 몰카범죄와 유사성이 있고 의도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신체'를 특정 부위로만 한정해서 특정 부위이냐 아니냐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와 같은 상당수의 몰카범죄는 처벌망을 빠져나가게 된다. 옷 안을 촬영하거나 나체를 촬영하는 형태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고 있는 몰카범죄의 현실을 반영한, 적극적인 법 해석을 통해 몰카범죄에 접근해야 한다. 

소라넷이 있는 한 몰카 근절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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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라넷
ⓒ 인터넷 갈무리



몰카범죄는 그 촬영물을 인터넷 사이트로 유포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 인터넷에 유포되면 불특정다수가 몰카 촬영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몰카범죄의 특성이다. 심지어 가장 많이 이용되는 음란물공유사이트의 하나인 소라넷은 회원 수가 100만 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촬영도 문제지만, 그 촬영물을 모아서 볼 수 있는 소라넷 같은 사이트야말로 몰카 피해를 더욱 확산하고 범죄를 조장하는, 몰카범죄의 배후이자 몸통이다.

위법성과 폐해가 심각한데도 소라넷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성폭력처벌법상 동의받지 않은 신체의 촬영이나 촬영물의 유포를 처벌할 수 있지만, 해외에 서버를 둔 소라넷은 국내 법률 망을 피해가며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한 사이트가 거의 어떠한 제재도 없이 10년 가량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목에서 수사기관조차 몰카범죄가 심각하게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라는 인식이 희박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이 의구심을 종식시키는 것이 수사기관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소라넷에 대한 실효성 있는 조치 없이 몰카 근절은 없다. 소라넷은 실명인증이나 성인인증이 없이 회원가입을 할 수 있고 자료등록·공유가 가능해 사실상 아무 필터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쉽게 나체 사진, 성행위 동영상 등 몰카촬영물을 보고 유포할 수 있어서 몰카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흐린다. 몰카범죄는 소라넷에 대한 법적 제재 없이 몰카촬영물의 최초 유포자만을 추적하고 처벌하는 것으로는 결코 근절할 수 없다. 

소라넷으로 인한 몰카촬영물 유포 피해자를 찾습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소라넷으로 인한 몰카촬영물 유포 피해 사례를 찾고 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소라넷에 대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몰카범에 대한 처벌, 몰카 피해자의 인권회복이 몰카 촬영물 유포 사이트에 대한 적극적인 법적 대응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집단소송은 소라넷으로 인한 몰카촬영물 유포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몰카촬영물이 소라넷으로 유포되는 피해를 입은 적이 있는 분, 그리고 그 피해자를 알고 있는 분이라면 누구든 연락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기한: 11월 27일
이메일: ksvrc@sisters.or.kr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몰카 피해자들과 함께 몰카근절을 위한 활동을 펼쳐가겠다. 더는 몰카범죄를 현실적 한계 앞에서 놓아주지 말자. 몰카 단속의 '현실적 한계'가 아니라 몰카범죄의 '현실', 즉 몰카범죄가 불특정다수의 여성, 그리고 남성들의 편안한 일상생활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현실을 더 크게 이야기할 때다. 우리는 소라넷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며, 진정으로 몰카범죄와 싸우고자 한다면 국제 공조수사를 통해서라도 소라넷과 같은 몰카촬영물 유포 사이트를 빈틈없이 처벌해야 한다. 우리는 '현실적 한계'를 넘어, 몰카근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어서 마주하고 싶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방이슬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