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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 후기 (2) 주류판매업소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 후기 (2) 주류판매업소




1월 9일. 홍대 인근에서 두번째 캠페인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정확히는 거리가 아니라, 거리에서 주류를 판매하는 가게가 보일 때마다 안으로 들어가서 캠페인을 진행했지요. 우리의 캠페인 취지를 설명하고, 가게 안에서 성폭력적 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는지, 성폭력을 목적으로 술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묻고,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을 방지하고자 캠페인 기획단이 만든 스티커 등을 이 가게에 부착해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이날의 경험을 가온 님이 전합니다.



 


스티커 문구: 

저희 업소에서는 

판매하는 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강한 도수의 술 판매시 위험을 고지합니다.


 처음 이 캠페인의 계기가 되었던 사건은 트위터에서 있었던 작은 소동이었다. 대형 바에서 알바를 했던 한 사람이 데이트 상대의 의식을 잃게 만들기 위한 강한 도수의 칵테일 주문이 너무나 흔하다는 사실과, 그 칵테일의 별명, 그리고 그러한 술을 팁 3만원에 만들어주기 때문에 바텐더의 주요 부수입원이라는 이야기를 폭로함으로써 엄청난 반향과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현직 바텐더가 유사 체인 바들은 그럴지 몰라도, 우리 정통 바들은 자부심을 갖고 운영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다는 트윗을 했고 나중에는 감정 싸움으로 번져서 폭로자와 바텐더 모두 강간 방조자나 여성혐오자로 몰리며 여럿에게 생채기를 입혔다.

 

 이것은 성폭력이 사람들을 무력하게 느끼도록 만듦으로써 약자들을 분열하게 만드는 한 예시가 되는 사건으로 느껴졌다. 남성이 데이트 상대를 강간하기를 원하는 것, 술을 마신 여성이 강간당하는 것, 다른 남성이 이에 협조하는 것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너도 저쪽 편인 것 아니냐, 뭐가 다르냐는 말로 서로를 상처입히는 것은 결국 무력함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했고, 주류 판매자도 여기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사업장에 붙일 수 있는 성폭력 반대 스티커를 인쇄해 거리로 나갔다. 사실 그렇게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주류 판매업 자체가 성폭력과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비관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실제로 부딪쳐 본다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캠페인이 끝나고,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그날 우리가 방문한 10여개의 업소 중 대형 바 두 군데에서 흔쾌히 캠페인 스티커를 붙여주셨다는 것이었다. 성폭력을 위한 주문을 한다면 소형 바보다는 체인점 등 규모가 크고 종업원을 고용한 대형 바이기 쉽다고 생각하고, 특히 어둡고 지하에 있고 음악이 시끄러운 곳에는 일단 불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바 두 군데에서 스티커를 붙여주는 것을 보며 술과 성폭력이 이어지는 것을 정상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결정권자가 없다는 이유로 스티커를 붙여주지 않은 다른 대부분의 업소 종업원들 역시 예상보다 캠페인에 협조적이어서, 어쩌면 판매업자들 중 상당수도 술과 성폭력을 연결 짓는 통념으로 인한 피해를 공유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다만 그러한 주문을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모두가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했다.

 

 또 하나 예상치 못한 것은 캠페인에 가장 저항감을 보였던 곳이 부킹술집이나 룸 술집 등이 아니라 바텐더 혼자 운영하는 소규모 바였다는 사실이었다. 확률적으로 그러한 곳에서 성폭력을 위한 주문이 적을 것이라는 것에는 동감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별 부담 없이 동참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본인의 업소에서 그런 성폭력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그들의 직업적 자부심을 자극한다는 것은 종업원들이 누구도 성폭력을 위한 주문을 들어본 적 없다고 하는 것과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캠페인을 마치며 성폭력 반대는 마치 절대적인 선처럼 여겨지는 반면 실제 성폭력은 여전히 너무나 공적이지 않고, 논의하고 싶지 않은 주제이며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불명예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의 캠페인이 혹시 성폭력을 일상에 침투될 수 없는 절대악으로 여기는 시선에 공모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떻게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을 면대면으로 만나 경험과 생각을 묻고, 직접 동참을 요구하는 일이 무척 새롭고, 문제의식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하는 일이라고 느꼈고, 이것이 탈정치화된 성폭력 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떤 단초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겼다.

 

 이 캠페인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되며, 참여자에게도, 또 우리가 마주하는 주류 판매자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주류 판매업 이외에도 사람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어떤 실천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는 자리 역시 마련되었으면 한다.


_가온(기획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