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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

[인턴활동후기] 척의 ‘꼬리잡기’ 인턴 이야기

척의 꼬리잡기인턴 이야기


 

 

척 (청년젠더인턴십, 인턴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2016년의 뜨거운 여름을 상담소에서 보내고, 선선한 가을에 상담소를 떠났던 척이라고 합니다. 여러분께 소곤소곤 상담소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다시 왔습니다. 엘사가 벌써 내한한 것 같으니, 얼어붙기 전에 모두모두 저와 함께 따뜻한뜨거운 여름날로 돌아가볼까요? 저는 사진이 없으니, 특별히 여러분을 저의 기억 속으로 초대합니다. 모두 여기로 오세요!


 


1. 두리번두리번


저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하 여가재단)에서 운영하는 <청년젠더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여러분께만 드리는 말씀이지만, 상담소에 오기까지 좀 험난했답니다. 여덟 번의 강의와 조별발표에 최종면접까지어휴, 좋은 기회는 어렵게 찾아오나 봅니다.


그렇지만, 저의 시작은 꽤 불순한의도에서 출발합니다. 저는 가난한 대학생이었고 꿀알바를 찾아 헤매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작년 젠더인턴으로 활동했던 친구에게 이건 무려 생활임금을 준다는 말에 이끌리듯 젠더인턴 신청서를 냈답니다. 어차피 최저임금 받고 일할 바엔, 생활임금 받자였죠. 이런 시작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역시 문제는 있더군요. 활동단체를 정하는 면접이 가까워 오면서 자기소개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도대체 내가 활동하고 싶은 단체가 어디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이 단체, 저 단체, 그 단체전부 소개를 들었지만, 딱히 내가 가진 문제의식과 가까워 보이는 단체가 없었어요. 여성단체들이 주로 성폭력을 다루는 반면, 그때 저의 고민들은 성소수자 이슈에 몰입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제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인턴으로 배정되다니, 실은 난감했어요. 집에서도 가깝고 생활임금 받는 알바를 구해서 너무 기뻤지만, 상담소에서 대체 뭘 할 수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어요. 그만큼 성폭력은 저의 일상에서 동떨어진 문제의식이었습니다.


 

2. 소곤소곤 수군수군


 

이런저런 혼란 속에서도 첫 출근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711, 저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아침에 상담소로 향했습니다. 상담소의 첫인상이요? ‘, 돈이 엄청 많은가보다.’였어요. 하하. 왜냐면, 우리 상담소 건물은 아주 때깔이 곱거든요. 합정동에 멋진 건물들이 많지만, 우리 상담소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정도랍니다. 아무튼, 저는 멋진 상담소와는 어울리지 않게 쭈뼛거리며 들어갔습니다. 사실 첫날의 기억은 별로 없어요. 상담소를 두리번거리다 하루가 지나갔거든요. 제가 기억하는 건 아침 나눔시간! 우리 상담소는 아침마다 간단하게 한 사람씩 돌아가며 전날과 당일의 업무에 대해 공유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답니다. 가끔 운이 좋은 날엔 먹을 것도 있어요!(우걱우걱) 이런, 이야기가 샛길로 새버렸네요. 이때 처음으로 상담소 식구들 얼굴을 봤습니다. 솔직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어렴풋이 느꼈던 건 , 여기 좀 평등한가?’였어요. 우리 소장님 별칭은 지리산인데, 저는 새삼 인턴답게지리산이 회의실에 들어오시자,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런데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더라고요. 하하, 그게 당황스러우면서도 너무 좋았어요. 그게 상담소가 저에게 준 첫인상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두 계절을 지나오면서 뭘 했냐구요? 아이고, 많은 걸 했죠. 왜 안 했겠습니까. 근데 저는 사실 그런 것들을 들려드리려고 온 건 아니에요. 여러분에게 제가 했었던 의미 있어 보이는 활동들을 보여드릴 수도 있지만, 그건 상담소 홈페이지나 블로그 어디에서나 확인하실 수 있답니다. 피켓을 엄청 많이 만들고 땡볕에 네 번의 기자회견을 가졌고, 정부의 위안부졸속 합의를 규탄하는 수요집회에 갔었고, 개소 25주년 후원의 밤에 함께 했었던 것들 말이에요.


그런 것들은 제가 상담소에서 보낸 시간들 중 일부일 뿐이에요. 제가 들려드리고 싶은 것들은 상담소 홈페이지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인턴의 소소한 일상이에요. 저는 때로는 함께 인턴활동을 하는 영지님과 하루 종일 회의실에서 책을 읽기도 했고, 점심을 먹고 너무 졸렸던 날엔 두 시간 동안 낮잠을 자기도 했고, 상담소에서 수강신청을 하기도 했고, 저의 인턴동기의 마지막 출근 날엔 둘이 몰래 나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어요. 수요일 상근자회의가 있는 날엔 다 같이 맛있는 걸 먹어서 좋았고, 기자회견이 있던 날 먹었던 갈비 맛이 아직도 감동적이고, 지리산 이후 최초의 상담소 샤워부스 사용자라는 타이틀이 마음에 남아요.


하루는 그런 일이 있었어요. 퇴근시간이 다 되었는데, 두 인턴은 연구소에서 설문지 코딩을 마무리하고 있었답니다. 여섯 시 땡 하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사무실에서 연구소에 저희를 어서 퇴근시키라는 협박전화가 오는 게 아니겠어요? 하하, 정말 칼 같은 자비로움(?)이에요. 그렇지만, 정작 상근활동가들은 대부분 정시퇴근을 못하시더라고요. 아이고, 이게 무슨 모순입니까. , 그것도 기억에 남네요. 제가 인턴활동을 하던 시기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우리가 성폭력에 대해 알아야 할 8가지>에 대해 기획연재를 하고 있었어요. 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기사를 한 편씩 기고하셨던 것 같은데, 자기 차례가 돌아왔을 때 세상 불행을 가득 떠안은 얼굴로 야근을 하시던 모습들이 납니다. 기말고사 레포트 마감을 앞둔 저의 모습과 어찌나 겹치던지,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답니다. 흑흑. 그렇게 고민하며 써내려간 만큼 아주 좋은 글들이 실려 있으니, 여러분들도 어서 확인해보세요! , 링크 갑니다! 100% http://m.huffpost.com/kr/author/ksvrc 성폭력당 첨


 

3. 상담소 꼬리잡기


 

, 잠깐만요! 제 이야기가 끝나면 가셔야죠. 실은 저는 107일에 공식적으로 인턴활동을 종료했답니다. 그리고 지금은 1030일의 새벽이네요. 인턴후기를 보통 일주일 이내에 상담소에 보내는데, 정말 지각도 이런 지각이 없네요. 그러니 늦은 값을 해야겠죠? 인턴활동 종료 이후의 저의 일상을 보여드릴게요!


저는 휴학을 마치고 복학했습니다. 엊그제(?) 새내기였던 것 같은데 복학생이라니, 감회가 새롭네요. 겨우 한 학기 휴학한 건데도 과제도 깜빡하고, 강의시간도 착각하고 좌충우돌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중간고사를 봤답니다. 저는 작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매학기 여성학 수업을 들어왔어요. 들을 여성학 수업이 더 이상 없었거든요. 그래서 갈수록 페미력이 떨어지던 참이었는데, 마침 학교에 새로운 페미니즘 수업이 열린 것이 아니겠어요?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냉큼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첫 시간에 들어갔더니, 발표주제를 정하더라고요. 저는 지금까지는 주로 성소수자를 발표주제로 선택했어요. 그게 제 일상을 관통하는 이슈였으니까요. 이번에는 달랐어요. 퀴어문제는 여전히 제 삶의 중요한 이슈지만, 퀴어 만큼, 저에게는 더 알아보고 싶은 문제가 생겼답니다. 맞아요, 여러분이 모두 예상하시는 것처럼 성폭력을 발표주제로 선택했어요. 꿀알바로 시작했던 인턴활동은 저에게 진지한 문제의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인턴활동을 하면서 저는 상담소의 20년간의 반성폭력 운동의 회고와 전망을 담은 <성폭력 뒤집기>를 읽었고, 서평엔 성폭력 의제는 나의 의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썼어요. 그리고 반성폭력 운동을 담은 이 책이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고 쓰기도 했죠. 이렇게 저는 불순한 의도로 시작해서 더 불순한 인턴이 되어가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상담소의 설득은 정말 멋졌어요. 상근활동가 중 누구도 성폭력 문제를 너의 의제로 삼으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반성폭력 운동에 얼마나 열정적으로 매진하고 있는지를 통해서, 혹은 무엇이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이 운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했는지에 대해 들려주었답니다. 그건 정말 최고였어요. 우리가 각자의 경계를 지켜나가면서 서로에게 스며들었던 것 말이에요!


이런 순간들을 간직하기 위해 저는 상담소 꼬리잡기를 하고 있는데, 저는 이번에 학교 워크샵 기간에 성폭력에 대해 학우들과 고민하는 자리를 열었습니다. 지난 학기, 학교에서 꽤 많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발이 있었거든요. 저는 지지자의 언어로서 객관성을 어떻게 전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봤어요. 제목의 멋짐(?)에 비해 막상 글은 굉장히 거칠지만, 저의 최초의 꼬리잡기였답니다. 여기에 기록해두면 오래 기억되겠죠? 하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여러분과도 함께 고민해보고 싶네요! 반성폭력 운동에 꾸준히 열정과 노력을 기울여 온 분들이 계셔서 제가 뒤따라 꼬리잡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연대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지속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하는데요, 척의 꼬리잡기 인턴활동기가 읽을 만하셨나요? 사진이 없어서 지루하셨다고요? 그러시다면 직접 상담소 활동에 참여하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겠습니까? 하하. 긴 글을 읽어주셔서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럼 모두모두 안녕히!

상담소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