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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

5/15(월) '2차 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토론회 후기



공동체 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토론회 


2017년 5월 15일(월) 오후 1시 ~ 6시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주최




성폭력 사건/사연들이 한국사회에 드러나기 시작한 이후, 많은 여성단체, 페미니스트들은 국가사법체계에서 성폭력을 처벌하고, 전에 없이 피해자를 국가적으로 지원하게 하는 제도를 도입하도록 운동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성폭력이 일상이 된 공간과 문화에 주목하여, 이를 뒤집기 위한 운동이 펼쳐졌습니다. 자치적인 문화에 대해 다시보기가 필요했던 공간은 대학이나 진보적인 운동사회 - 단체, 노동조합, 정당 등이었고,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뜨거운 활동이 펼쳐지고, 그에 따른 논쟁도 활발해졌습니다.  

   





2000년대 초반, 성폭력적인 문화가 만연한 자치공동체에 그것을 줄일 수 있는 '자치규약'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이는 노동조합이나 정당처럼 규모가 있는 단체에서 당헌당규, 상벌위원회, 성폭력 관련 규정 등이 되었지요. 그 보다 규모가 작은 각종 공동체에서도 성폭력적 사건이 드러나면 공동체 내에서 사건을 이야기하고, 나름의 절차를 만들어가면서 공동체의 성격에 부합하는 조치를 해보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공동체 내 해결'이라는, 문화바꾸기 운동으로 시작되었는데 개별 성폭력사건에 대한 처리과정이 되기도 한 이 영역에서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가치 또는 판단기준으로 적용되어 온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을 돌아보고 내다봐야 한다는 논의가 2000년대 말 정도부터 피해자지원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전에도 이 개념의 중요성과 동시에 실제적인 난점이 논의되기도 했었지요.  



2017년이 된 지금에는, 온라인 공간이라는 공동체인듯 공동체같은 공동체 아닌 환경에서 성폭력에 대한 고발, 처리진행, 결정, 적용 등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도 새로운 지점으로 등장했습니다. 또한 성폭력에 대한 법제화 또는 자치규약화 되어 온 지 시간이 꽤 흘러, 높아진 기대와 인식과 실제 처리나 판단력 사이에서의 격차도 생겨나게 되었고요. 실제로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해석체계가 과용되고, 2차 가해 지목이 남용되는 문제가 생겨나면서, 이 운동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논의가 다시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들과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준비한 "공동체 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토론회가 2017년 5월 15일, 3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열렸습니다. 





토론회는 발제 4. 토론 4의 규모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2박 3일이 걸리는 토론회의 규모라는 이야기가 있었지요. 

정말 자료집을 한줄 한줄 꼼꼼히 읽는 편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평평하게, 또는 퉁쳐서 인식하거나 사용하던 개념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제기하는 토론회였으니까요. 

그래도 후기에 빠질 수 없는 간단한 중심내용을 기록해봅니다. 



발제1. '공동체 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 공생의 조건'을 고민하기까지 (이소희_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2009년 민주노총 김OO사건 진상조사위에 참여하면서 두 개념이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으며, 

그것이 낳는 우려되는 상황이 있었음을 정리하였어요. (피해자화, 침묵하는 공동체 등). 

공격의 언어가 아니라 설명과 소통의 언어가 필요하고, 개념의 절대화보다는 

피해자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성평등한 공동체가 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찾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안이었습니다.



발제2. '100인위'가 한 것과 하지 않은 것 (전희경_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운동사회성폭력뿌리뽑기 100인위원회가 등장할 당시의 진보진영 운동사회의 

뿌리깊은 가부장성, 그것에 대한 '공론화'라는 방식의 전략이 필요했던 상황을 면밀히 짚어보았습니다.

 당시 공격받은 가해자측이 반박할 때도, 진보진영의 가부장성을 멈추기위한 선택임을 밝혔지요.

그런데 현재 운동은 '절차'로 이동하고 측면이 있습니다. 피해자의 위치와 힘도 많이 달라졌구요. 

따라서 개별 사건의 공식적 해결과 '공론화'는 다른 측면이 조금 더 명확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으로 '성폭력'이라고 규정해야만 공감받을 수 있다는 좁은 해석의 장을 

벗어나는 지경에 대한 싸움, 페미니즘의 총량을 키우는 것이 결국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발제3.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개념에 대해 (권김현영_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우선 이 토론은 윤리적 기대와 성원들의 공동체의식이 높은 시민사회, 페미니스트 그룹 

내부를 상정하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건의 해결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집중하는 것, 

모두의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것,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

2차 피해에 주목했던 것인데 특정 2차 가해자, 를 지목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1차 본사건 처리가 어려워지고, 토론이 원천봉쇄되는 상황이 펼쳐지므로 이것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본 사건 처리를 어렵게 하고, 토론 불능상태에 빠지게 하는 경향이 되고 있습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가해자 중심사회라는 것을 인식하자는 전제였으나, 판단기준 그자체가 되는 것은

피해자 지위에 대한 역공격 따라서 피해자화를 강화하는 오류를 낳고 있어, 

재판과정에서 진술신빙성에 성편향적 시선을 배제하기 위해 성별적 보편성을 도입한 '피해자 관점' 등으로

제한적, 명료하게 사용할 것을 제안합니다.



발제4. 문화예술계 성폭력의 특수성과 '2차 가해' 담론 - 웹툰 <미지의세계>를 중심으로 (오혜진_문화연구자)


<미지의 세계>남성은 헬조선 흙수저이고, 그들에게 여성은 된장녀라는 남성주의 인식론 속에서

성적대상화 조차 어떻게 되고 말고 하는지의 현실을 미러링 한 적나라한 여성 주인공의 작품으로

'여성적 미러링'에 20-30대 페미들이 열광했고, 문예지는 열심히 실었지요. 그런데 그 작가가 

실제 성폭력 가해와 유관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환불, 폐기, 반납, 삭제 처리가 이뤄졌습니다. 

'작품을 소비하는 것' 도 2차 가해라고 개념의 확장판. 성별화된 문화의 폭력성 앞에 (성폭력의 주변적 상황) 

2차 가해 외엔 의미화하는 단어가 없는 현실 때문일 수도 있지만 (엄혜진 글 인용)

성찰적 해석, 책임에 대한 사유의 여지를 없애고 도덕적 알리바이, 면죄부만 거래된 폐허는 아니었는지

페미니스트 비평가의 위치에서 아쉬워하며 이런 현상의 경향, 징후는 무엇인지 되묻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도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처리 지원자로 역할하기도 했고, 

운동사회 내,  진보진영 공동체 내 사건에 대한 토론회에서 의견을 내오기도 했습니다. 

 

상담소에서는 상근활동가들이 사전에 다양한 자료를 읽고

함께 사전 토론하는 시간도 가졌었는데요, 그 내용을 정리한 토론문이었습니다. 



'공유된 책임'으로서 '공동체 내' 성폭력 2차 가해의 해결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 2차 가해 지목이 범람하고, 피해자 중심주의가 때때로 절대화된 사건들.

그 결과 비밀주의, 피해자의 고통강조, 기계적으로 처리되는 사건 관행들

행간의 논쟁과 소통, 정치적 의미가 사라지고 피해자의 '불편함'이 남는 자리들이 생기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는 여전히 피해자에게는 해소되지 않은 분노들이 남아있는 현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공동체는 바뀌지 않고, 지나치게 개인화되거나 공론화되거나, 대책없는 궁금증과 조언은 많고, 

1차 가해자는 공동체를 떠나버리고, 그리고 끝없는 무력을 불러오는 무능력들.



# 상담소가 그동안 8만여건의 지원을 하면서, 2004년 성폭력 지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깊은 고민들을 꺼내놓고 담은 '나침반을 찾아라'를 발간하면서, 나눔터 65호에서

운동사회 성폭력에 대한 고민을 내놓으면서, 많은 공동체 내 사건처리를 도우면서, 현재 하고픈 제안들은



# 피해자가 최초의 상황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스스로 풍부하게 문제를 품고, 해석하거나, 

자신의 요구/욕구를 써내는 환경을 만드는 '피해자를 위한 나침반'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피해자화가 아닌 피해자 역량강화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고, 

전제는 피해자 스스로의 노력 이전에, 신뢰하고 안전할 수 있는 공간과 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고통/트라우마만 강조된다면 피해자의 고통은 측정되거나 관리되어야 할 우선과제가 되고

병리화, 지원내용의 의료화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완전히 옳고, 완전히 정확한' 사건처리는

애초에 있을 수 없고, 이것은 성폭력 싸움은 기억과 의미투쟁의 장에 여전히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사건 마다 매번 그 공간과 조건에 따른 새로운 지도를 그려가며 정치화하고 운동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새로운 의미와 언어 대신에 자리하는 '매뉴얼'은

반성폭력운동의 개념과 정의, 운동을 소실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피해자화를 지양하고, 피해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고양하는 것이 필요하며, 

관습적인 대리인제도는 재고될 필요도 있겠습니다.



### 공동체는 평소 '갈등' 발생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훈련이 되어 이어야 합니다. 내규와 매뉴얼은 거칠어도 촘촘해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거칠면 담당자의 전문성이 요구되고, 촘촘하면 법률만능주의가 우려됩니다. 또한 피해자와의 의사소통 뿐 아니라 가해자의 성찰, 재발방지의 소통능력이 담당자의 자질과 역량으로 필요합니다



### 2차 가해로 손쉽게 지목하기 보다 해당하는 잘못에 대한 구체적 서술로 놓아두는 것도 방법이며, 피해자나 사건마무리나 중간에 처리과정에서의 문제를 평가로 정리하고, 해당 조직에 대한 권고, 를 작성하게 보장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건 해결 과정 자체에 대한 충분한 안내와 오리엔테이션, 사건 사후 교육의 실질화에도 중요한 집중이 배정되어야 합니다. 



반성폭력은 여전히 의미화와 해석, 적극적 기억과 언어화의 투쟁에 장에 있는 운동이라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운동성'이 이룬 성취이지만, '운동성'에 저항으로 작용하는 것들이 있지요. 

체계화, 매뉴얼, 규칙, 원칙, 일관성, 결정, 판단, 판결. 


사건 하나하나를 통해서 운동을 만들어 가고자 했던 '사소한 것의 정치학', 반성폭력 운동. 

사건 하나하나의 존재론적인 위치는, 여전한 불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는 하나의 운동체라는 점에 대해서

힘들지만, 참 힘들지만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말끔하게, 깔끔하게, 정확하게 처리되었으면 하는 욕구가 있지만 - 그것이 피해자가 무익에 가깝게 무력하고 소진되는 논란과 좌절되고 후퇴시키는 백래쉬와 인식의 진전 속에서 더욱 고립되는 피해자화 속에 놓이는 뫼비우스의 띠를 만드는게 아닐까, 하는 질문을 남겼습니다.   



글쓴이 : 오매 (사무국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