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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기 성폭력전문상담원 기본교육 두 번째 후기

성폭력전문상담원 기본교육 이수

 

 

 

1. 교육 신청, 첫 날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활동하는 지인 활동가의 안내로 성폭력상담원 기본교육과정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마음에 들어 고민 없이 지원했고, 724일부터 교육을 받게 되었다. 교육 내용을 보건대 남성이 거의 없을 것 같아 평소보다 긴장한 상태로 현장을 찾았는데 역시 그랬다. 35명의 교육생 중 남성은 필자를 포함해 겨우 세 명이었기 때문에 주목을 받을만한 소지가 다분하여 긴장감은 더 커졌다. 필자는 이곳에서 별칭으로 블로그 이름인 '한오잡'을 썼고,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진 후 강의를 시작했다.

 

 

☞ 네 번째 강의, '젠더감수성과 나'

 

 

 

2. 초반 교육 과정-페미니즘에 대한 이해, 젠더 감수성 및 인권 감수성 함양

 

교육 초반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님의 반성폭력운동에 관한 강의를 시작으로 성폭력에 관련된 상담을 하자면 반드시 갖춰야 할 필요가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 젠더 감수성, 인권 감수성 등 소양을 쌓을 수 있는 내용이 중점적이었다. 초반 교육을 받으면서는 새로이 알게 된 사실들에 대해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필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젠더 감수성과 인권 감수성을 점검하기도 했다. 내용이 너무 많아서 그 중 한 가지만 적어보자면 2강에서 젠더 큐레이터를 자처한 변혜정 강사님이 '남녀의 권리가 동등하게 보장되지 않는 시점에서 차이에 대해 인정하는 것은 곧 차별에 대한 인정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한 부분은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저 문장을 가지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이외 과정들도 전부 유익한 시간이었다.

 

 

☞ 열여덞 번째 강의,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이해와 지원'

 

 

3. 중반 교육과정-성폭력 생존자(피해자)에 대한 이해 및 각종 지원체계, 법적 절차

 

교육 중반에는 성폭력 관련 법적 절차부터 생존자(피해자)에 대한 이해 및 지원체계에 대해 배웠다. 필자는 한국의 법적 체계나 제도 및 공공기관들이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는 점 때문에 이에 대해 부정하거나 관심도 갖고 있지 않았으나 생각보다 많은 비영리 여성단체 및 공공기관에서 성폭력 생존자(피해자)를 여러 방면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지원 단체 및 공공기관들 역시 서울 및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고, 그마저도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의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한편 이런 단체 차원에서의 지원뿐만 아니라 개인 내지 봉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성폭력 생존자(피해자)에 대해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식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87일에 진행했던 성폭력 생존자의 산부인과 차원에서의 지원과 및 다양한 피임방법 및 이 장단점에 대해 상세히 다뤘던 강의였다. 안타까운 것은 주요 피임법 중 남성이 할 수 있는 피임이라곤 콘돔과 정관수술 밖에 없다는 것. 남성 피임약부터 여러 가지 개발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어서 나왔으면 싶었다.

 

 

☞ 고된 여정을 든든하게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간식덕분...!  

 

 

4. 후반 교육과정-여성주의에 기반한 상담 및 성폭력 상담 실습, 그 외 기타

 

교육 후반의 핵심은 성폭력 상담 실습과 법원 방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필자가 법원이라는 곳에 직접 들어가 심지어 재판까지 참관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성과 관련된 문제에서 아청법 위반으로 기소 중인 재판이 있어 참관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기사로만 보던 청소년 성폭력 및 성매매를 현장에서 맞닥뜨릴 때 치가 떨리는 한 편, 만일 가해자 내지 피해자를 지원해야 하는 입장에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 후에는 강의 막바지에 성폭력 상담 실습을 진행했는데 여기서 필자는 큰 아쉬움을 느꼈다. 일단 상담 기법이나 요령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고, 다루는 내용(성폭력)의 문제 등 여러 이유로 실제 피해자들과 실습을 해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필자에게는 크게 와닿는 지점이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상담 실습을 할 때 조별로 상담사와 내담자(생존자)를 나누고 상담을 진행하는데 상대방이 상담사를 원해 내담자를 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남성 성폭력 피해 사례로 해보자.’고 제안했었다. 그렇게 진행하면서 '남성 성폭력 생존자(피해자)의 사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필자는 내담자가 되었을 때 일부러 사회에서 말하는 남성성에 기반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피하는 모습을 하고 피해 사실에 대해 은폐, 축소하거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대화법을 구사했었다. 일부러 그렇게 했음에도 필자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실제로 필자가 피해를 당했을 때 다를 것인가, 혹은 남성 생존자(피해자)가 상담을 요청해왔을 때 어떻게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 수료식에서 수강생들과 '앞으로 반성폭력운동에서 하고 싶은 것, 동료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나누었다.

 

 

5. 전반적인 소감

 

성폭력상담원 교육을 듣지 않았다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새롭게 알 수 있는 것도 많고 기존에 정리된 생각도 새로이 고민해볼 지점이 생겨 성폭력 상담 관련된 업무에 종사할 사람이 아니더라도 들으면 젠더 및 인권 감수성 측면에서 유익하고 좋은 교육과정이라 생각한다. 전반적인 강의 구성도 마음에 들고 강사들도 하나같이 의욕적이었고 적극적이었으며, 교육생들도 대체로 생각이 비슷하고 뜻이 맞았던지라 좋은 의견 및 질문들이 많이 나왔다. 토론을 하거나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접점이 많아 좋았다. 100시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쉬울 정도. 한 달, 두 달이라도 듣고 싶은 강의였다.

필자가 우려했던 '주목'에 관한 부분도 실제로 남성이라는 이유로 어떤 식으로든 주목 받았던 적은 있지만 부담스런 정도는 아니었다. 그 주목이 공격적이라고 느껴지는 지점은 없었으며, 오히려 필자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지나치게 고평가된 것 같아 송구스러울 정도의 반응들이 많았기에 그랬던 것 같다. 가령 모 교육생이 '강의 듣는데 힘들지는 않냐'라고 할 때 다른 교육생이 '이 강의에 참가한 남자들은 달라서 괜찮을 것이다.'라고 말해주기도 했고, '한국에 이런 남자들도 있구나.'와 같은 반응도 있었으며 수강생 중 한오잡씨를 비롯한 남성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한국 남성에 대한 불신이 조금은 사라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와 같은 반응도 있었다. 필자는 이 때 평소보다 더더욱 '페미니즘마저도 남성에게 유리한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고 필자가 올해 초에 ‘School of Movement’에서 경험해본 자기방어훈련과 비슷한 훈련이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한국성폭의 자기방어 훈련에서는 여성의 '체화된 공포'에 대해 교육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게 되어 좋은 경험이 되었고, Dance/Movement Therapy라는 필자가 가진 언어로는 서술할 수 없는 묘한 경험도 이색적이었다. 그 외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의 배려로 간식거리, 특히 음료를 부족함 없이 마실 수 있었다는 것도 좋게 기억하는 부분이다.

한편 이 100시간 과정을 수료하기는 했지만 필자가 성폭력 상담을 하기 위한 역량을 쌓기엔 다소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는 강의 구성의 문제는 아니고 시간의 문제였다. 많은 강사들이 자기 파트에서 '세 시간에 이 내용을 다루기엔 너무 부족하다.'라고 말하며 쉬는 시간도 줄이고 강의 시간을 초과해서 강의하는 것도 거리끼지 않았을 정도였는데 실제로 그렇다. 한 파트당 3시간, 100시간 교육과정만으로 성폭력 상담을 시작하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고, 혼자서 공부를 하면서, 실제 현장에서 봉사 등 여러 방법으로 감수성 및 실무 능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 관심있는 독자들을 위해 필자가 알고있는대로 소개해보는 교육 과정

 

교육은 하루 6시간, 100시간 교육으로 이루어져 있고, 교육 과정이나 교육 담당 강사는 기수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교육 내용은 성폭력에 관한 법이나 상담에 관한 실무 교육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는 않다. 이것만큼이나 중요하면서 먼저 갖춰져야 할 소양이 상담자의 '젠더 감수성''인권 감수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미니즘과 젠더 감수성, 섹슈얼리티, 남성성, 인권 등에 대한 교육이 선행된다.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한국성폭 29기 교육과정에 대해 첨부한다.

 

 

 


< 이 글은 29기 성폭력전문상담원 기본교육 수료생 한가람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