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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및 기자 회견 후기

9월 28일은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위한 국제행동의 날 Global Day of Action for Access to Safe and Legal Abortion>입니다. 올해에는 이 날 오전 11시 30분에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및 기자회견이 진행되었습니다.



형법 제269조 '낙태죄'는 여성의 임신중단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임신중단을 한 여성 뿐 아니라 당사자의 요청 또는 동의를 받아 임신중단을 하게 한 사람도 처벌하고, 의사 등 의료인이 임신중단을 하게 한 경우에는 가중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낙태죄'는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임신중단을 결정함에 있어 일방 또는 공동의 책임이 있는 상대 남성은 처벌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에 '낙태죄'는 남성이 임신한 여성을 통제하거나 임신중단 경험이 있는 여성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두어 예외적인 경우(대표적으로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등의 허용사유가 있습니다)에는 당사자와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알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낙태죄'의 예외적 허용사유 얼마나 자의적인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 보면, '낙태죄'가 왜 '여성의 임신출산을 국가가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평가받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낙태죄'의 적용을 두려워하는 병원들은 성폭력 피해로 인해 임신한 여성에게 먼저 성폭력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수술을 해주겠다며 즉각적인 조치를 거부하거나, 설령 모자보건법 상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사유에 해당하더라도 당사자인 여성이 임신중단을 원하더라도 보호자 또는 배우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수술을 해주지 않는 등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한 현실입니다. 낙태죄가 폐지되지 않는 한,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감내하거나 처벌의 위험성과 터무니 없는 비용 등을 감수하고 불법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게다가 모자보건법 제 14조는 임신한 여성을 배우자가 있는 여성으로 전제하고 있는 점, 본인이나 배우자가 장애인 또는 감염인인 경우에는 당사자가 원치 않는 임신중단을 강요하는 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는 점 등 그 자체로도 문제점이 많습니다




이번 퍼포먼스 및 기자회견을 주최/주관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2016년 10월 경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를 공동주최하였던 여성단체들을 재정비하여 올해 새롭게 발족한 연대 단위입니다. '낙태죄'는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가 인지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이며, 우리 사회의 적폐 청산과 성평등 추구 등 사회 정의를 이루기 위하여 낙태죄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님 제이의 사회로,


먼저 <10명의 발언자들, 여성들의 경험을 증언하다>라는 제목의 발언 퍼포먼스가 진행되었습니다.

임신중단을 경험한 10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발언하는 퍼포먼스였습니다.

발언문에는 당사자가 직접 작성한 내용과 주최 측에서 실제 사례를 각색하여 작성한 내용이 섞여 있었으며,

발언자 또한 실제 당사자와 대독자가 섞여 있었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기혼 여성이 두 번에 걸쳐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게 된 경험


1960~80년대 정부의 가족계획사업에 의하여 복강경 피임 시술을 받게 된 경험


10대 청소년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은 후 다니던 학교에서 자퇴를 강요당한 경험


임신중단이 불법인 현실 때문에 비위생적인 병원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고 합병증에 걸린 경험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강요당한 경험


성폭력으로 인해 임신한 피해자가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기 위해 성폭력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했던 경험


삽입 섹스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임신하여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게 된 경험


기혼 여성으로서 출산 시 제왕절개수술을 받고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경험


장애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을 것이 당연시되었으나 당사자의 판단에 따라 출산을 선택한 경험


장애 여성으로서 임신출산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당한 경험


발언자들은 모두 자신의 발언과 관련된 날짜가 적힌 하얀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퍼포먼스가 진행됨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임신출산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경험한 여성들이 서로 붉은 끈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발언 퍼포먼스가 끝나자 현장 자유발언이 이어졌습니다.


각자 다른 사정으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아야 했던 모녀의 경험


성구매자에 의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성판매 여성의 인공임신중절수술 경험


넌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의 인공임신중절수술 경험


각 발언이 끝날 때마다 공감과 지지의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을 대표해서 8명의 활동가가 각 한 문단씩 기자회견문을 낭독하였습니다. 

아래는 기자회견문 제목과 마지막 두 문단입니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연대와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국가의 인구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안에서 인공임신중절 사유를 허락받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머무르지 않겠다. 임신중단에 대한 합법화를 기초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감당해야 할 생명에 대한 책임을 떠넘긴 채, 우리 삶의 권리를 무시하고,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온 법과 정책을 거부한다. 우리는 더 이상 통제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처벌 대신 더 많은 자율성과 권한이 주어져야 하며, 국가와 사회는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은 전 세계에서 여성의 몸을 불법화하고 여성 건강을 위협하는 국가와 법, 제도에 맞서 저항하는 날이다. 여성의 몸을 불법화하는 낙태죄폐지하라. 장애와 질병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조항 전면 개정하라. 국가는 성평등 정책과 성교육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고, 모든 여성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피임기술과 의료시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 결혼유무,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장애와 질병, 경제적 차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모성을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라. 안전하고 건강하게 임신을 중단할 수 있도록 최선의 의료적 선택지를 제공하라. 진정 생명을 그토록 소중히 여긴다면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과 태어날 아이,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제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일에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재생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기자회견문 전문 보기


<이 글은 본 상담소 성문화운동팀 앎이 작성하였습니다.>


※ 각 현장 자유발언은 별도의 원고가 없어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기사 <여성들이 '임신 중단'을 선택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다(화보)>에서 보도한 발언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