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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아직도 내 귓가에 울리는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 <성차별·성폭력끝장집회> 후기

아직도 내 귓가에 울리는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

: <성차별·성폭력끝장집회> 후기


“(..) 무엇보다 중요한 관객 여러분께서 자발적으로 바로 이 자리에서 성폭력으로 만들어진 공연은 거부하겠다는, 그런 메시지로 궐기대회를 진행해 주셨습니다. 사회적 관심이 폭발하고, 서로 연대와 지지로서 미투 폭로가 이어진 데에는 이러한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문화가 연극계에 만연해 있음을 알리는 자기 반성, 그리고 이것이 우리 사회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처절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폭력은 대물림 되었고, 열악한 제작 환경 속에서 공동체의 가치는 왜곡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침묵했고, 이러한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 앞에 모두 묵인하고 수긍하며 지내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때로는 우리는 함께 연대하였고,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함께 눈물로 함께 행동으로 연대하고자 했습니다.”


4월 7일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 @ 경의선 숲길 (사진 제공: #미투시민행동)


4월 21일 혜화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미투 집회에 임인자 연극인께서 첫번째로 발언을 해주셨다. 

“처절한 깨달음.” 머릿속에 계속 울리는 말이었다. 맞다. 우리를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은 것은 연극인 임인자님의 말대로 한국 사회에 여성에 대한 만연한 폭력과 권위의 남용에 대해서 ‘이제는 바뀌어야한다’는 “처절한 깨달음”이었다. 성평등 사회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폭력적이고 위계적인 문화를 바꾸고, 법과 제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미투 집회에 모였다. 연극인 임인자님의 발언을 다시 인용하자면, 우리는 “처절한 깨달음”을 통해 우리 “공동체의 가치”가 너무 오랜 시간 왜곡되어 있었음을 통감하였고,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연대하기 위해 모두 이 자리에 모였던 것이다.   


4월 7일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 @ 경의선 숲길 (사진 제공: #미투시민행동)


3월 23일 종로에서 열린 첫번째 미투 집회에 이어 4월에는 7일 연남동 경의선숲길에서, 21일 혜화 마로니에공원 앞에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 하에 미투 집회들이 열렸다. 집회들 모두 사람들의 발언으로 시작했다. 3월에 열린 2018분 이어말하기 대회처럼 4월 집회에도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진솔하고 용기 있게 본인의 생각과 이야기를 참가자들과 공유하였다. 고등학생부터 중년의 발언자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산업, 그리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떨리는 마음으로, 분노의 마음으로, 그러나 한편으로는 ‘함께 하면 달라질 것이다’라는 벅찬 마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발언을 하는 도중 집회를 참여한 시민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호응으로 발언자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다. 4월 7일 홍대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아직 풀리지 않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METOO” “#WITHYOU” 라고 적혀 있는 검은색 팜플렛을 손에 쥐고 발언대 앞에 앉았다. 집회 진행을 돕는 스텝들,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많은 시민들로 넓지 않았던 발언대 앞 공간은 빠르게 채워져 나갔다. 21일 혜화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발언을 듣기 전 다양한 부스에서 미투 팔찌를 구매하거나, 1만인 선언에 참여하거나, 가정폭력 근절 등 성평등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서명들에 참여하고, 부스들을 다 돌아본 후 살짝 따뜻해진 날씨를 만끽하며 다들 발언을 듣기 위해 발언대 앞에 앉았다. 


4월 21일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 @혜화 대학로 <피켓만들기 부스> (사진 제공: #미투시민행동)


홍대에서 열린 미투 집회에서는 여성문화예술연합의 신희주님, 페미당당의 우지안님, 민주노총전국기간제교사노동조합의 박혜성님, 안희정/이윤택 성폭력사건 대책위원회의 오매님,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학생회의 신혜슬님, 페미니스트 게이머 모임인 페이머즈의 가이드님 등께서 사회의 뿌리깊은 여성혐오적, 성차별적 부조리들을 증언하고 여성들의 투쟁과 노력에 대해 발언을 해주셨다. 혜화에서는 앞서 언급한 연극인 임인자님, 청원여고 학부모 부회장 윤완서님, 활동가 감이님이 대독한 김지은과 함께하는 사람들, 서울대 H교수 사건해결모임의 이예인님, 민주화를위한전국교협의회 사무차장 박정직님 등께서 발언해주셨다. 성평등 사회를 위해 마이크를 잡은,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퍼뜨리기 위해 모인 우리들 사이에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여러가지 논점들, 그리고 다채로운 이야기들과 감정들이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했다. 혜화에서 행진할 때는 중간에 성균관대역에 멈춰서 발언을 듣기도 했다. 우리는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서, 애인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학계, 연극계, 게임계 등의 직장에서 겪는 성폭력과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분노와 탄식을 공유했으며 그와 동시에 “연대하니 달라질 것이다”라는 희망 또한 공유했다.  


4월 7일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 발언들 @ 경의선 숲길 (사진 제공: #미투시민행동)


4월 21일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 발언들 @대학로 



발언이 끝난 뒤에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하였다. 사람들은 성평등이라는 대의를 위해 진지하게 임하면서도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과 웃으며 눈빛을 마주치며 교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확성기를 잡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과도 대화하며, 진지하지만 즐겁게 행진을 이어 나갔다. 이러한 현장에 있으면서 ‘치열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즐겁게 가야 오래 달릴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홍대에서는 행진하는 도중 지역 특성상 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사이에서 “#METOO” “#WITHYOU”라고 적혀있는 팜플렛을 들고 가는 일이란 위축되면서도 굉장히 짜릿한 경험이었다. 행진을 하며 다양한 눈빛들을 만났는데, 어떤 행진인지 열심히 알아보려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 지지한다는 눈빛, 놀란 듯한 멍한 눈빛, 별로 알고 싶지 않다는 무관심의 눈빛,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거부의 눈빛 등이 있었다. 그 중 같이 춤을 추며 호응해주는 분들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미투 행진자들의 팜플렛을 읽고 구호를 들었다. 직접적인 대화가 오고 가지는 않았지만, 행진자들의 진지함과 때로의 장난스러움은 행렬 밖의 구경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의 창이기도 했다. “이제는 좀 들어라!” 라고 외치는 행진자들의 구호에 맞춰 우리는 사람들이 잘 보라고 팜플렛을 위로 높이 열심히 들고 행진하였는데, 사람들의 답신의 눈빛을 자신 있게 해석할 순 없었지만, 어쨌든 행렬의 일부로서 우리의 진지함을 보여주고 전달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벅찼다. 혜화에서는 영세 상인들과 직장인들이 우리의 행진을 지켜봤다. 행진이 끝난 후 두 집회 때 모두 우리는 처음 발언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수고했다며 말을 건넸다. 같은 이유로 분노한 사람들과 한 곳에 모여 행진까지 함께 했다는 것부터 큰 위로였으나, 따듯함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행진이 끝난 후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집회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노래와 춤으로 자축하는 것으로 참가자들을 크게 안아주었다. 함께 바꿔 나갈 세상을 치열하지만 즐겁게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었다.

4월 7일, 21일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 행진 (사진 제공: #미투시민행동)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

아직도 내 귓가에 울리는 구호 함성이다.



 421일 집회의 마무리 발언을 들으며 소장님과 지민님이 함께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



<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가 지민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