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터 기자단 Meka 5기 사람들이 모여 만든 후속 소모임 <내가 반한 언니>의 첫 모임이 지난 8월 22일 상담소에서 있었습니다. 각자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컨텐츠에 등장하는 자기가 좋아하는 '언니'들을 소개하는 소모임인데요, 모임의 첫 이끎이는 상담소 활동가 닻별이 맡았습니다.

 

<미스 슬로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 주세요!

 


 

메릴린 엘리자베스 슬로운은 승률 100%를 자랑하는 로비스트다. 자기 신념과 어긋나는 법안의 로비는 절대 하지 않는 슬로운은 업계 최고의 회사를 나와 소규모 로비 회사에 들어가 총기 규제를 위해 로비를 시작한다. 슬로운의 반대편에 서게 된 전 직장 동료는 총기규제를 반대하기 위해 슬로운 개인을 공격하기에 이르는데......

 


 

개인적으로는 벌써 세 번째 보는 <미스 슬로운>입니다. 모임 일정을 정하고 첫 모임의 이끎이가 되었을 때, 제시카 차스테인이 연기한 이 캐릭터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슬로운은 선한 사람인가요, 악한 사람인가요? 단순히 선악구도만으로 그를 정의할 수 있을까요? 대체 슬로운은 왜 총기규제 찬성을 위해 범죄자가 되는 것도 불사했을까요?

 

계속해서 드는 의문을 차치하고서라도, 엘리자베스 슬로운은 멋진 여성캐릭터입니다. 업계 1위, 100%의 성공실적을 자랑하는 대단한 커리어우먼이죠. 신념 있고, 지적이고, 사교력도 뛰어나며, 두뇌회전이 빠르고, 연기도 곧잘 해냅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완벽하기만 한 캐릭터는 아닙니다. 일을 위해 억지로 잠을 자지 않고, 정말로 '수단'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불법적인 일도 서슴없이 저지릅니다.

 

영화가 끝나고 다같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은 "슬로운이 남성 캐릭터였다면 다른 등장인물들의 반응이 달랐을 것이다." 입니다. 생각해보면 현실에서든, 창작물에서든 자기 커리어를 위해, 욕망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남성 캐릭터는 수도 없이 나옵니다. 여성 캐릭터는 주로 남성 캐릭터에 의해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릅니다. 여성 캐릭터의 욕망이 여과없이 서술되고, 그들의 욕망은 지탄받지 않습니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요 등장인물은 대부분 여성이며, "총기규제" 라는 현실 문제를 통해 정치 영역에서 간과당하기 쉬운 존재들, 즉 여성의 힘까지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중간에 슬로운이 여성CEO, 페미니스트 클럽, 페미니스트 국회의원 등을 만나 표를 모으고 캠페인 후원금을 어마어마하게 모아오는 씬이 바로 그렇습니다.) 단순히 판을 읽는 것 뿐만 아니라, 아예 자신이 먼저,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판을 짜는 슬로운의 능력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미스 슬로운'의 영원한 명언. 출처는 미스 슬로운 스틸컷.

 

 

슬로운은 로비스트가 공략하는 대상의 속성도 잘 꿰고 있습니다. 국민의 이익보다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하는 국회의원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현실정치에서 이등시민인 여성 캐릭터가 정치계를 뒤집어버릴 판을 만든다는 점 역시 이 영화의 관전포인트이자 매력입니다.

 

출처: 미스 슬로운 스틸컷.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에는 슬로운의 감정선이나 동기를 읽어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불친절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세 번이나 보니까 조금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마지막 대사가 결정적이었는데요, “커리어에 압사당하기 직전이라는 표현이 슬로운의 본심에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슬로운의 선택은 완벽한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한 자신의 욕망으로 스스로를 죽이기 전에 가장 화려한 방식으로 은퇴하는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화는 슬로운과 함께 일할 수 있는가?” 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는 일할 수 없다고 대답했는데, “슬로운이 일하는 로비 회사에 이 일을 의뢰한 헤드로라면 함께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보고 정도만 받고, 불법적인 일을 한다는 사실은 아래에서 걸러져서 영영 모르는 상태라면 누구보다 든든할 것 같다.” 고 대답해 주신 참가자 분의 대답이 정말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저도 '그' 위치라면 함께 일할 수 있겠지만, 절대 동료로서 마냥 신뢰하기는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이 영화를 보았던 분들의 후기를 짤막하게 덧붙입니다.

신아: 주인공 행동이 공적 정치적 동기로만 설명 안되고 사적 욕망으로만도 설명 안 되는 점이 제일 재밌었다. 예를 들어 중대한 결단의 동기라고 밝히는 게 자신의 정신건강인 점.

열쭝: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여자, 자매애까지도 서슴지 않고 이용해 먹는 여자, 자신의 욕망에 대해 해명하지 않는 여자. 박수치기엔 너무 나쁘고 미워하기엔 너무 멋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윤정: '똑똑한' '능력이 출중한' '욕망 가득한' '승리에 도취된' 여성을 보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 돌진하는 모습을 보며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나도 주인공의 승리를 바랐다. 여기서 이렇게 지는 건가 싶어 실망하며, 또 뻔하게 여성이 파멸하고 좌절하는 결말은 싫었다. 무조건 이기길! 이기는 걸 보고 싶어!라고 속에서 외치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난 이후에는 다음에는 잘나지 않아도 덜 똑똑해도 '승리'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보고 싶었다.

 

회원소모임 <내가 반한 언니>에 함께 하고 싶은 분들은 신청 동기와 이름(별칭 가능), 연락처를 적어 상담소 이메일(ksvrc@sisters.or.kr)로 보내주세요. 담당 활동가 닻별과 신아가 확인 후 연락 드리겠습니다. 모임은 월 1회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Posted by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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