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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

[후기] 회원 모임 '내가 반한 언니' 세 번째 영화 <우리의 20세기>

내가반한언니는 페미니즘 콘텐츠 비평 소모임입니다. 매 달 모여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영상, 영화, 연극, 책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콘텐츠 선택과 비평의 주요 포인트는 내가 어떤 언니에게 반했는지!

10월의 내가반한언니(내반언)는 우리의 20세기(20th Century Women)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 산타바바라에서의 1979년이라는 한 지점을 살아가는 세 명의 여성에게 초점을 둔다. 아들 제이미를 혼자 키우면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도로시아, 도로시아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살고 있는 애비, 도로시아 아들인 10대인 제이미와 어린시절부터 친구인 줄리가 주요 인물이다. 도로시아는 늦둥이 아들을 좋은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에 한계를 느끼자 애비와 줄리에게 아들의 양육을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도로시아의 부탁으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마치 과거를 돌아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도로시아가 나레이션으로 자신이 1999년 폐암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영화를 시작하면서 말하고, 제이미도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회고하는 듯 말하고, 다른 인물들은 자신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나래이션 한다. 또한 지미 카터의 연설 장면이나 문화적 상황, 전쟁 상황 등 그 시대의 화면 자료들이 중간중간 삽입되어있다.  

 

도로시아는 1924년생이며 애비는 1955년생이며 줄리는 1962년생이다. 이렇게 태어난 년도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20세기의 한 시기, 특정한 공간 또는 관계망에서 살아가는 다른 세대의 세 여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는 서로 다른 캐틱터와 세대의 세 여성을 통해 1979년의 미국을, 20세기라는 시대를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먼저 도로시아는 파일럿을 꿈꾸며 공군학교에 진학했지만 전쟁이 끝나서 파일럿이 되지 못했고 전쟁 이후 회사에 최초의 여직원으로 일했다. 영화에서 사건을 전개하고 사람을 모으는 구심점의 역할을 하는데, 타인을 자신의 생활에 기꺼이 초대하고 타인의 삶에 쉽게 개입하고 이해되지 않는 주변 인물들을 이해하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한편 애비나 줄리에 비해 보수적이어서, 파티 자리에서 일부러 생리라는 단어를 입밖에 꺼내게 하는 애비나, 자신의 첫 성관계 경험을 이야기하는 줄리에 대해 기겁한다. 애비는 락과 펑크 음악을 즐기며 사진 예술가이다. 그녀는 페미니즘 운동가는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를 체현한 인물이며 그것을 자원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다. 제이미에게 자신이 가진 문화적 지적 자원을 전달하기도 한다. 줄리는 심리상담가인 엄마에 의해 억지로 자조모임에 나가는데 그래서 그런지 심리적으로 더 알 수 없는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그녀는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해,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행동한다. 더 정확하게는 주위 또래 남성들에게 성적인 존재인 자신을 잘 알고 있다. 일방적으로 상대가 피임을 하지 않아서 임신의 불안을 겪는 등 그것이 남성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취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그래서 친구인 제이미와는 절대 성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 똑똑하지만 불안하고 자기 파괴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오일쇼크의 영향 속에서 성장기를 보내는 제이미와 줄리는 IMF 시기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내가 반한 언니> 회원들은 세 여성에 대해, 재밌었던 장면에 대해, 한국을 배경으로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어떨지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모두들 도로시아라는 인물을 좋아했고 애비에게서는 삶에 대한 추진력을 느꼈으며 줄리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만약 한국의 호황기를 이끌어낸 산업화 세대, 기성세대와는 달랐던 X세대, 경제위기와 저성장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로 치환하여 20세기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엄마라는 캐릭터가 희생과 헌신과 불쌍함 없이 개인의 개성이 살아있는 채로 그려질 수 있을까? 의문도 생겼다. 아, 그런데 20세기라는 한 시대, 역동적이었던 한국 사회를 세 여성의 일상과 캐릭터와 관계를 통해 표현한다면 어떨가? 어떠한 역사적 사건이나 사건의 주역들이 아닌 평범한 세 인물, 그들의 평범한 일상의 장면들을 통해 말이다. 그 세 여성을 상상해보게 된다.

 

<이 글은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신아가 작성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