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연대] 함께 할 준비되셨나요?

 

▶ [보통의 연대]란?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 혹은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캠페인이에요. 모든 사람은 성폭력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터뷰하고자 해요. 성폭력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세요.

 

▶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없이 성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강간, 강제추행뿐 아니라 시각적·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피해자의 거부에 대한 불이익 조치, 불법 촬영, 비동의유포,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 등이 포함됩니다.

 

 

※ 성폭력 주변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윤문 및 편집 외에는 인터뷰 참여자의 말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논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인터뷰 취지에 맞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있을 경우 수정 또는 삭제 요청드리거나 관리자가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용기 있게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 참여자 분들께 비난과 질타보다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보통의연대] 014. “다른 생각 이야기하면 2차 가해로 낙인 찍을까 두려워” 티소의 인터뷰

 

저는 티소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고, 명상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Q.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나요?

 

주변인이라는 개념이 있는 건가요? ‘주변인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 때문에 그런지 뭔가 방관하는 사람의 느낌이 많이 들어서요. 그런 의미인지 다른 개념이 있는 건지 궁금해요.

 

성폭력을 경험하는 사람 옆에서 항상 그런 것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 개념일까요? 저는 성폭력 사건을 주변에서 겪은 경험은 거의 없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Q. 성폭력 주변인이라는 건 단순히 피해자나 가해자의 문제로 한정시키지 않고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을 만들어나가고자 만든 개념인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가깝게는 당사자의 가족이나 지인부터 멀게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성폭력 사건을 접했을 때 영향을 받고 살아가게 되는 사람들을 말해요. 이런 의미에서 스스로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머리로는 이해되네요. 주변인에 나도 끼는 건가요? 아직 확실히 내가 주변인이 됐다는 느낌은 없어요. 그냥 내가 이런 개념을 접했고. 아직 이것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없는 것 같아요.

 

Q. 내 삶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요?

 

나와 성폭력 사이의 거리……참 추상적이네요. 아주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고.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나도 성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특히 밤길을 집에 갈 때. 남자들이 따라오는 건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집에 가고 있겠지. 그런데 뒤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남자들의 발소리가 들리거나 한쪽 길을 걷고 있거나 할 때 느껴지는 두려움에 나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 마음이 있구나생각하게 돼요. 그럴 때는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성폭력의 위협은 여전히 많은 여성들을 위축시키며 여성이 밤길을 돌아다니기 어렵게 한다. 사진은 2004년 진행되었던 밤길되찾기 '달빛 시위'의 모습. 당시 여성들은 하얀 소복을 입고 귀신 분장을 한 채 밤길을 행진하며 '여성들에게는 밤길에 다닐 권리와 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외쳤다. 사진출처:오마이뉴스

 

Q. 성폭력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본 경험이 있나요?

 

언론 보도로 딱 생각나는 것은 안희정 성폭력 사건. 그땐 되게 충격이었고,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있었죠. 그런 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피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도 화가 났고요.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를) 전혀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 놀라웠어요.

 

그런데 점점 생각이 바뀐 것도 있었어요. 여러 가지 정황을 얘기하면서 그냥 불륜 관계였다이런 얘기도 나오니까. 여러 가지를 봤을 때 사실 확인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인지 아닌지 아직은 모른다. 피해자가 그 정도로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에 대해서 약간 의심이 들었죠. 사회적인 상황에서 오는 게 있으니까요. 그 시기에 뭔가를 덮기 위해 뉴스거리가 하나씩 터지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나온 거짓말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뭔가를 무마시키기 위해서.

 

그런데 여러 가지 감정적으로 섞여 있는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가해자가 그 위치에서 할 행동은 아니었다, 이런 행동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성폭력적인 행위가 있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해요. 불륜이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그냥 생각을 내려놓게 됐어요. 아주 많이 생각해본 건 아니어서 대락 그런 느낌.

 

성폭력에 대한 무분별한 언론보도는 2차 피해를 확산하며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미투 운동 이후 많은 언론에서 가해자의 주장을 비판 없이 받아쓰거나 피해자의 신상정보 및 사생활을 보도하는 등 2차 피해를 일으켰다. 사진출처 : 한국기자협회·여성가족부, [성폭력·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 주세요!] 가이드라인 보도자료

 

Q. 미투 운동에 관해 주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나요?

 

대화를 깊이 있게 나눈 건 아닌데, 그냥 가볍게 이야기하고 지나갔어요.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의 말이었죠. 그런 일들이 숱하게 많은데 이제야 수면 위로 드러나는구나. 이게 큰 계기가 되겠다.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숨기고 떳떳하게 표현하지 못하다가 이제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반가웠어요.

 

그러면서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혐오감이 들었어요. 가해자들이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잖아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너무나 떳떳하니까. 사회적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해서 배신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나쁜 놈이었네. 그런 걸 알게 돼서 충격이었어요.

 

미투운동을 통해 수많은 성폭력 가해자가 고발되었다. 그중에는 형사처벌이 확정된 가해자도 있지만, 처벌 없이 여전히 현직으로 활동중인 가해자도 많다. 사진은 2018년 2월 기준. 사진출처:한국일보

 

Q.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 경험도 있나요?

 

. 예전에 성폭력 아동 피해자를 원스톱으로 전담하는 센터에서 일했었어요. 처음에 사건이 접수돼서 법률지원이나 의료지원이나 사회적 지원, 심리적 지원까지 다 해결하는 센터였어요. 일 년 반 정도 심리지원을 맡았는데, 피해 아동의 부모들을 인터뷰하고, 그 사람들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 진단하고, 평가하고, 보고서를 쓰고, 심리치료랑 상담을 진행하는 일을 했었죠.

 

한번은 학생인 피해자를 지원한 일이 있었는데, 가해자가 선생님이었어요. 꽤 오랫동안 피해가 있었는데, 피해자의 엄마만 (피해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가해자에 대해 조처를 하려면 학교에 다 알려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건데, 피해자의 엄마는 문제가 드러나서 알려지고 2차 피해를 받는 게 싫으니까, 피해 사실은 계속 덮고 피해자를 전학시켰어요. 엄마가 반대하니까 가해자에 대한 조치를 할 수 없었어요. 그 가해자가 또 어떤 학생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지 모르죠. 그럴 때 좀 무력감도 느끼고, 분노도 느꼈던 것 같아요. 되게 다양한 사례들이 있었어요.

 

그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상담하는 일 자체에 대해서 고민이 됐던 것 같아요. 거기서 아이들한테 성교육을 하는데, 내 안의 체계로는 조금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가해자-피해자 프레임으로 갈라서 보면 그게 일반적인 관점일 수도 있지만, 가해자는 일단 나쁘고, 분노해야 하고……좀 정리가 안 되네요. 그렇게 나눠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가해자를 '괴물'로 만들고 성폭력을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만 여긴다면 과연 성폭력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에서 출간한 번역서 [괴물이 된 사람들 Not Monsters]는 아동 성범죄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담아 가해자는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불편한 사실을 드러낸다. 사진출처:이후

 

Q. 오늘 인터뷰에 참여한 소감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일단 편하게 이야기를 많이 못 한 것 같아요. 내 안에 주저하는 마음이 있네요. 내가 2차 가해가 될 만한 말을 했다고 낙인 찍히는 느낌이 들고 기분이 좋지는 않아요. 또 다른 생각을 이야기할 때 그것에 대해 라벨링을 하는 사회적 분위기, 한쪽 편에 분노가 쌓인 느낌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것을 죄악시하거나, 문제 삼거나, 해결해야 한다고 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강렬한 감정을 가지고 운동(movement)을 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죠. 같이 해야 할 것 같고, 안 하면 뭔가 묵인하고 있는 것 같고. 어떤 행동도 그것에 대한 각자의 생각으로 낙인을 찍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 인터뷰도 어쨌든 어떤 목적의식과 신념을 가지고 운동을 하는 거잖아요.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그런 것들을 주입하고, 전달하고, 이해시키고, 납득시키고, 그러는 과정인 건가 생각이 들어요. 그 자체가 우리는 이런 운동을 하고 있는데 너는 그런 생각을 안 갖고 있으니까 고쳐라이런 느낌으로 보이기도 해요. 목적의식을 갖고 하는 것에 대해서 이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해서 제가 거부적인 입장이 있어요.

 

여성인권 운동을 같이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꼴페미', '메갈'로 낙인 찍힐 것 같고, 여성인권 운동을 하지 않으면 성차별·성폭력을 묵인하고 있는 것 같고 '성차별주의자', '2차 가해자'로 낙인 찍힐 것 같고……. 어떻게 해도 나의 생각이 부정적으로 규정될 것 같은 현실에 불안과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사진출처:도서출판 동녘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가까운 사람 중에 피해자가 생기면 도와주는 것.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 사람이 느끼는 여러 가지 혼란과 마음들을 좀 이해해주는 것. 이해하고 이야기 들어주는 것.

 

(사진) 피해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보통의 연대] 릴레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이 인터뷰 진행자로 함께 하며,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2019 양성평등 및 여성사회참여확대 공모사업인 "성폭력,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 은희님이 진행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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