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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이윤택 성폭력사건 대응의 의의와 쟁점 토론회 <분노가 지나간 자리, 다시 무대에 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2019. 12. 4. 13:46

작년 초의 일입니다. 이 사회에 만연하던 성폭력을, “나도 말한다며 용기 낸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문화와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 온 폭력과 혐오, 그리고 부조리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그 누구도 묻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함께 싸운 이들도 있었습니다. 초겨울의 바람이 유난히도 시리던 1126, 혜화 예술가의 집에 이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문화예술계 내에서 연극 연출가 이윤택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추악함은 세간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더욱 가슴 저미게 한 것은, ‘오랜 관행속에서 성폭력을 성폭력이라 말하지 못했던 피해자들과 이윤택의 폭력을 묵인했던 우리 사회였습니다. 현재 수감 중인 이윤택의 손길이 닿은 작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리메이크 되고, 무대에 올라가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무대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었습니다. <분노가 지나간 자리, 다시 무대에 서다>라는 토론회의 제목이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사회: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

토론회는 발제, 그리고 지정토론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떡과 과일, 그리고 커피와 함께 인사를 나눈 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님의 첫 발제로 토론회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발제1: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이미경님께서는 생존자들이 이끌고 공대위가 밀고 나아간 활동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이윤택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의 지난 활동을 짚어주셨습니다. 한국 사회에 미투 운동이 있기까지에는 여성혐오와 폭력에 맞서는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서서 포스트잇을 눈물로 적시기도 하고,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라고 목 놓아 외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물결 속에서 미투 운동은 필연적으로 다가온 결과일 것입니다. 이윤택 성폭력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이후, 많은 이들이 연대했고 공동 변호인단과 공대위를 구성하여 피해자들과 함께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우리가 목격한 현실은 생각보다 더 추악했습니다. 피고인은 가림막 뒤에서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상기시켰고, 피고인 측 변호인단은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무례한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피해자들을 향한 2차 피해 역시 심각했습니다. 그러나 고소인단의 용기,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과 연극인들의 간절함이 모여 우리는 결국 이 사회의 오랜 관행성폭력으로 다시 쓸 수 있었습니다.

 

발제2: 서혜진 변호사 (공동변호인단)

다음으로는 피해자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주신 서혜진, 장경아 변호사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이윤택 사건 판결의 이해와 의미라는 제목으로 상세한 수사과정과 함께 본 사건에서 쟁점이 된 강제추행의 상습성관련 법리를 요목조목 짚어보는 시간이었는데요. 법원은 강제추행 범행을 반복하여 저지르는 습벽을 인정하고 이윤택의 핵심 주장을 모두 배척하였습니다. 그것은 적절한 연기지도도 아니었고, 사회통념상 분명한 강제추행이었으며, 충분한 고의를 지닌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을 인정받아 20197, 대법원은 피고인 이윤택 징역 7년을 확정하게 됩니다. 이윤택 사건은 피해자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쥔 가해자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폭력이라는 권력형 성폭력의 특징을 모두 보여준 사건임을 본 발제를 통해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발제는 피해자 변호인들의 의견서 중 일부로 끝을 맺었습니다. “예술은 창조활동으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결국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예술작품이 인간의 인권을 말살하고 범죄로 탄생한 것이라면 과연 이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지 피고인에게 묻고 싶습니다.”

 

발제3: 이명숙 변호사 (공동변호인단)

공동변호인단으로 함께 해 오신 이명숙 변호사님이 ‘2차 피해와의 전쟁, 피해자 권리와 일상찾기로 세 번째 발제를 이어나가셨습니다. 피해자들이 경험해야 했던 2차 피해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성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윤택 사건은 전 국민적인 공분과 지지속에서 ‘2차 피해에 대해 가장 적극적이고 많은 법정 대응을 취한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희단거리패 내에서의 외면과 경계, 연극계 내에서의 낙인찍기와 몰아내기, 임사라 변호사의 거짓 꽃뱀 논란, 언론과 수사과정에서의 비난과 몰이해 등 만연한 2차 피해는 아직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말하기에 대해 적절한 응답을 찾지 못했음을 알려줍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언어와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발제4: 이산 공대위 활동가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다음으로는 활동가의 삶과 연극인의 삶을 모두 살았던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이산님의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연극에 대해 가장 잘 알기에 침묵할 수 없었던 연극인들, 그들이 한자 한자 써내려간 탄원서를 읽은 경험을 공유해주시기도 하고, 연극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들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연극계라는 공간은 성과는 집단에게 돌아가고 책임은 개인이 지는’, ‘그 어떠한 고생이라도 이겨낼 각오로들어가야 하는 곳입니다. 관객을 만나기까지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노동으로 치환되며, 매뉴얼과 시스템 대신 연출가 1인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통해 개인들의 노동을 통제하기 마련입니다. 집단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실수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개인이 떠안는 일은 너무도 흔하고, 외부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이러한 내부의 위계는 견고해집니다. 이윤택 사건은 이 모든 위계와 위협이 여성혐오와 날카롭게 맞물려 피해자들을 향해 날아든, 우리 사회의 차가운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발제5: 김수희 연출가 (공동고소인단) / 발제6: 이재령 (공동고소인단)

마지막 발제는 공동고소인단의 김수희님, 그리고 이재령님이 순서대로 맡아주셨습니다. 두 분의 발제를 통해 형사재판은 끝났지만 미투 운동은 여전히 진행 중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피고인 이윤택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졌으나, 가해자 이윤택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사회가 가해자의 작품을 기념하고 의미를 부여할 때, 그들의 작품이 어떠한 논쟁거리도 되지 않고 무대에 오를 때 피해자들은 안팎으로 또 다른 기나긴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에 대한 제도적 심판에만 머무르면 안 됩니다. 지금껏 너무도 용감하게 살아남아주신 피해생존자들에 대한 보호, 그리고 그들의 일상 찾기가 마무리 되어야만 비로소 우리는 사건종결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수희님의 앞으로가 더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부디 듣는 일에 지치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도 말하는 일에 지치지 않겠노라 약속드리겠습니다는 마지막 발언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재령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정의를 꿈꾸는 이유는 나아가기 위함보다도 지켜내기 위함일 것입니다. 사회의 약자들을, 소중한 동료와 가족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기타소리와 노랫가락이 토론회장에 울려 펴진 순간 저는 그 날개 짓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피해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고, 예술인이라는 사실. 비록 잠시 흔들렸지만 잠시의 숨고르기 후 다시 비상할 것이라는 사실. 힘차게 날아오를 그 날개가 진심으로 눈이 부셨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기억할 것입니다.

 

발제 이후에는 생애문화연구소 김영옥 대표님과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님의 토론이 있었습니다. 김영옥 대표님께서는 한국사회 성문화와 문화예술 정체성의 착종을 예리한 언어로 포착해주셨는데요. 한국사회의 성문화가 지니는 복합적인 맥락이 문화예술을 매개로 어떻게 재생산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실천되는지를 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잘 가꿔진 정원의 반질반질한 돌 하나를 들췄더니 그 밑에서 온갖 구더기들이 들끓고 있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 돌 밑의 세계를 알거나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라는 김영옥님의 비유는 한국식 문화예술이 가부장제와 가족중심주의, 발전주의가 반성 없이 뒤엉켜온 결과라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이편에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말하는데, 저편에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간극을 두고 우리는 우선 이 간극을 용인하는 사회가 있다고 말해야 한다.”는 문장이 여전히 가슴 속에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림에 있어서 이제는 결과 만에 대한 평가가 아닌, 과정에의 반성과 윤리적 성찰이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토론1: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장다혜님께서는 권력형 성폭력의 관점에서 이윤택 사건을 조명해주셨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말씀은, 이전까지 권력형 성폭력의 전형이라 여겨졌던 종교지도자에 의한 성폭력의 경우 이미 피해자들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준강간, 준강제추행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자행하는 성폭력만큼이나 문화예술계 등의 폐쇄적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권력형 성폭력은 놀라울 만큼 닮아있었습니다.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장기간에 걸쳐 반복, 지속되는 피해 양상이 그 특성인데요. 장다혜님께서는 따라서 권력형 성폭력사건에 있어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유형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피해자의 저항 또는 거부의사 표시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가지고 있는 집단 내에서의 권위와 권력 등 영향력과 결정권한을 기초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또한 가해자의 영향력과 결정권한 등을 고려했을 때,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집단 내에서 피해를 호소하거나 가해자에게 적대감을 표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이해가 피해자다움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2차 가해를 일삼는 사회에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토론2: 장다혜 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본 토론회는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이윤택 성폭력 사건의 대응을 되돌아보고, 그 의의와 쟁점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승리를 축하하고 성과를 기억하며,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다고도 생각합니다. 토론회에 참여해주셨던 모든 분들의 보탬 덕에 오늘도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감사와 연대의 마음을 담아 후기를 마칩니다. :)

 

 

<이 후기는 본상담소 자원활동가인 김가림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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