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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

[후기] 자원활동가 민주의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 4개월

안녕하세요 저는 9월부터 12월까지 4달 동안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자원활동을 했던 민주입니다. 벌써 활동이 끝나고 이렇게 후기를 적을 시간이 되어서 신기할 따름인데요.

 

처음 자원활동 OT를 했던 날 왜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다 기억나진 않지만 가장 큰 이유로 꼽았던 건 학교가 답답해서, 그리고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서, 였던 것 같아요. 저는 오랫동안 대학 학생회를 하면서 생활을 해왔는데 어느 시점부터 그 활동들의 한계가 느껴지고 다른 방향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학생회를 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답답함은 저의 말이 항상 중간자의 입장에 있다는 것이었어요. 연대를 하더라도 같은 입장 같은 지위 같은 위치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연대가 아니라면 하다못해 도움이라도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전문성이 없고, 그렇다고 아주 활동적인 것도 아니고. 너무 지쳐버린 상태로 늘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인권을 이야기하고 삶들을 이야기한다는 건 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원활동을 할 때에도 정말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더 지쳐버리는 건 아닐지, 또 의미를 찾지 못하면 어떡할지. 사실 별 대단한 거 없는 활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지친 상태로 자원활동을 시작하려던 저에게는 정말 모든 것이 고민이고 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했던 건 자원활동 신청을 하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분명 회복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지쳐있다고 생각했던 저였는데, 처음 자원활동을 할 기관들을 찾다가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이곳에서 정말 자원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성주의적인 상담을 하고 그것을 다시금 활동으로 이끌어가는 공간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그것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지가 정말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활동지원서를 넣고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1지망으로 배치가 되었을 때, 정말 기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 자원활동을 하러 왔던 날 활동가분들이 많이 챙겨주시고 또 상담소 안의 공간 자체가 너무 평등하고 편안해서, 오랜만에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도 있습니다. 상담소에 오는 날만큼은 긴장을 내려놓았던 것 같아요.

 

제가 했던 활동들은 그렇게 큰 것들은 아니었는데요, 간단하게 포토샵을 다룰 줄 알아서 웹자보나 카드뉴스 등의 디자인을 하거나, ppt를 만들거나, 행사 기획을 하는 회의에 함께 참여하고 준비 과정을 함께 꾸려나가는 등의 일들을 하였습니다. 후원의 밤, 한 해 보내기를 같이 준비했었고 마지막 페미시국광장에서 간단한 스태프를 했었습니다. 행사 하나하나를 같이 만들고 나중에 그것이 실제로 열리고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본다는 게 굉장히 뿌듯하고 또 즐거웠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자원활동을 하며 가끔 어깨너머로 들려오는 각종 뉴스나 기사나 사건들을 들으며 마음이 아플 정도로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견고한 폭력과 차별과 불균형이 이 자리에 있음을, 비교적 안락한(?) 학교생활 속에서 항상 되새긴다는 것, 잊지 않고 매 순간 기억한다는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너무 중요했고 자원활동을 하면서 그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들이 모두 점차 다시 저를 회복시키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이 행사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여기 모이는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긴장 상태가 아닌 누구나 언제든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상담소에 오는 날 내가 누리는 이 편안함이 같은 시간 모든 여성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며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활동 발표를 하던 날, 발표가 끝나고 나서 처음 여기 왔을 때의 다짐들과 목표들이 있었는데 그걸 실현할 수 있게 해드린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 처음 왔을 때의 바람들보다도 많은 것들을 얻고 간다고 답해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상담소에 올 때 마음은 10걸음을 나아가야지가 아니라, 10걸음 물러나있는 상태에서 1걸음이라도 다시 떼고 싶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치지 않기, 지치지 않기, 강박적일 정도로 지치지 않고 싶어했던 마음들이 4달동안 점점 옅어지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어요. 10걸음 물러났던 저는 상담소 활동들을 하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것을 해야할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활동가분들을 보면서 또 같이 자원활동을 했던 다른 분들을 보면서 누구든 자신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아요. 이 다음부터는 이제 제 몫이겠지요? 다음엔 좀 더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활동가 분들을 다시 만나 뵙고 싶어요:) 다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했어요!

 

 

<이 글은 자원활동가 민주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