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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故장자연씨 사건 관련 대응활동

'장자연 정사 무삭제 홍보', 부끄럽지 않나?


 

  지난 주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장자연 무삭제'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놀란 마음에 검색해 보았다. 장자연 사건과 관련된 새로운 증거자료나 문서가 등장했나 하는 기대감에 클릭해보고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내용인즉슨 고(故) 장자연의 유작 <펜트하우스 코끼리>가 오는 11월 무삭제판으로 개봉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기사에서 고인의 정사장면과 자살장면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선정적으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홍보하는 기사인지 혹은 이런 영화사의 행태를 문제 삼는 기사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장자연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여성단체를 비롯한 사회 각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뜨거웠을 때는 개봉을 미루며 슬그머니 눈치를 보다가, 검찰 수사가 흐지부지 끝나자마자 대대적으로 영화홍보에 나서는 태도는 너무나 기민해서 오히려 '아하~'하고 장탄식이 나온다.

  검찰 수사 직후 인기검색어에 오른 '장자연 무삭제'

 

▲ KBS <뉴스 9>은 고 장자연씨 문건 파문과 관련해 <장씨 유족, 언론사 대표 등 4명 고발> 등 상세히 보도했다. ⓒ KBS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장자연

 지난 9월 19일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김형준)는 장자연씨 소속사 전 대표 김모씨를 고인에 대한 폭행 협박, 전 매니저 유모씨를 김씨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경찰이 강요죄 공범 혐의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드라마PD, 금융회사 간부, 전직 언론인 등 나머지 피의자 12명은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이는 사실상 이 사건의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전 대표 김모씨와 이 사건을 언론에 흘려서 시끄럽던 만든 전 매니저 유모씨만을 괘씸죄로 처벌했을 뿐, 성접대를 강요했을 것이라고 강하게 추측되는 대부분의 전직 언론인이나 드라마 PD 등 유력 인사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은 고인이 친필로 작성한 문건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을 마무리하였다. 다른 사건에서는 '무(無)'에서 '유(有)'도 창조해내는 그 대단한 검찰의 서슬퍼런 수사력도 이번 사건에서만은 녹슨 칼마냥 힘없이 스러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편안해졌다.

  '정사신 무삭제' 강조하면서 '영화는 영화로 봐달라'?

 

                                               ▲ <펜트하우스 코끼리> 포스터. ⓒ 펜트하우스코끼리 고 장자연

   변변한 수사결과 발표도 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정국에 맞춰서 검찰수사가 종결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제작사에서는 고인의 유작을 개봉한다며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제작사는 고인을 영화홍보에 이용할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고인의 '정사신 무삭제' 만을 강조하는 홍보전략은 과연 이 영화의 노림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하게 한다.

  '영화는 영화로 봐달라'라는 제작사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정치적인 현장의 한가운데에서 너무나 정치적으로 전개되는 행보를 언급하지 않고서, 어떻게 오롯이 '영화'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고인의 연기를 평가해달라는 제작사의 요구가 석연치 않은 것은, 과연 고인이 자신의 배역에 대해 연기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기획사의 집요한 성접대 강요에 시달리던 고인에게 과연 연기자로서 스스로 자기 역할을 선택할 만한 자유가 있었을까?

   신인여배우의 목숨을 건 아우성은 소리없이 지나가고, 이제 모두 극장에 편안히 앉아서, 자살로 끝을 맺은 그녀의 정사 장면을 관람하라고 한다. 이 사건에 붙어있는 껄끄럽던 가시들은 다 제거되었으니, 그녀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얼마나 관능적인지만을 논평하면서 고상하게 영화를 논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은 우리의 마음 한구석을 콕콕 찌르면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서글프다.

 

- 9. 29. 오마이뉴스 게재 /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보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