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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나영이가 준 두 가지 숙제

 

성폭력 경험을 말한다는 것은 자기를 이 사회에 내던지는 용기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법이 생기고 정책이 생긴 지 십년이 훌쩍 넘었지만 성폭력 피해자가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는 너무 어렵다. 가해자의 행동을 가능하게 한 이 사회의 폭력성, 피해자 보다는 가해자의 이야기에 더 익숙해있는 편견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그토록 어렵게 꺼낸 이야기. 듣는 이도 그에 상응하는 무게와 태도로 깊이 들어야 하는 이유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나아질까? 나영이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아주 작은 일상 속에서 그 변화 여부를 체감하게 될 것이다. 나영이가 준 숙제는 무엇일까? 이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그 숙제를 오랫동안 끈질기게 찬찬히 풀어가야 한다.  


▲ '나영이 사건'에 대한 네티즌들의 아고라 청원들 ⓒ 다음 아고라 캡쳐

 

재판부는 판단기준을 대답해야 

법은 이제까지 꾸준히 수위를 높여왔다. 21년전 자신을 강간한 이웃집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 십수년간 성폭력을 저질러 온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을 통해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었고, 혜진 예슬 사건까지 거쳐오면서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강간치상은 무기형까지 법정형을 높여왔다. 신상공개, 전자장치부착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법을 개정하고 정책을 ‘만드는’ 일은 꾸준히 있어왔다.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느냐다. 개개인 피해자들은 이 과정에서 편견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번 사건 역시 이미 법은 개정되어 법정형이 무기형이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한 최종 선고 12년형은 ‘술에 의한 심신미약’ 때문이었다. 피해자의 신체 상해 정도, 평생 안고 가야 할 장애를 단호히 언급한 부분에 비해 ‘심신미약’ 판단기준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재판부는 왜 이것을 당연하게 판단했나.  

술에 취해서 기억이 안나고, 우발적인 범행이었으며, 욕정이 일으켜져 그랬다는(제어할 수 없다) 말을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관용어구처럼 반복해왔다. 이 말은 성폭력에 대한 어이없는 사회적 통념을 만들어냈다. 가해자들은 이것에 의존하여 혼란스러움 없이 자신을 정당화하며,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자기를 방어한다. 통념을 수용한 재판부가 통념을 재생산해 온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네티즌들은 모으고 있다. 재판부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 드높다. 이 사건에 대한 판결번복이 가능한 일이냐 아니냐를 놓고 갸우뚱하기 이전에, 사법부는 판단기준을 먼저 밝혀야 한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있었는지 내놓고 평가되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기록, 판단과정을 해명 혹은 평가가 필요하다. 이제까지 성폭력 판결에 대한 판단기준이 무엇이었는지도 함께 분석할 것을 요청한다. 이 판단기준을 돌아보는 일에, 그리고 부당한 통념을 이제 거두는 일에 참여하고 싶은 것이다. 이 과정이 없다면 개별 사건의 피해자들은 이제까지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더불어 사법부의 최종 판결을 뛰어넘는 직접 행동, 법치주의에 대한 불신이 계속될 것이다. 

통념을 없애는 일은 모두의 몫 

사법부의 부당한 통념은 사회의 반영이기도 하다. 사회적인 통념이 없어지지 않으면서 사법부는 그 보다 앞서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법부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2차 가해 문제는 심각하다. 성폭력을 저지른 해당 범죄자가 가장 문제지만, 그 범죄를 용인해온 사회적인 환경과 인식을 우리 역시 암암리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피해를 겪은 이후에 주변에서 듣게 되는 말, 느끼게 되는 분위기는 가해자의 사고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때 피해자는 절망하게 되고, 긴 후유증을 앓게 된다. 가해자 자체보다 주변으로부터 느끼게 되는 말과 행동이 더 큰 고통을 만드는 것이다. 

네티즌들의 큰 관심과 분노를 모았던 밀양집단성폭력 사건. 그 이후 피해자의 삶은 어땠을까. 대중들의 분노가 곧 피해자 한사람이 건강히 살아갈 수 있는 치유의 힘으로 연결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 피해자는 삶으로 말하고 있다. 마을에서, 학교에서, 대중매체에서 여전히 성폭력에 대한 편견이 건재함을 느껴졌을 때 어떻게 자신의 피해경험을 건강히 안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 수 있을까.  

오늘 언론기사를 통해 나영이의 가족들이 ‘어떤 관심과 지원도 사양하겠다’ 는 의사를 표했다. 대중들이 사법부를 불신하고 분노한다면, 피해자의 가족들은 이 사회를 불신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모두는 그로부터 자유로운가.

잊고 살아야만, 아무일도 없었던 듯이 깨끗이 잊어야만, 자신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살아야만 살아지는 피해자의 삶. 그러나 이것은 임시적이고 반쪽짜리의 방편이다. 이해받고, 지지받고, 오해받고 부당하게 공격받을 두려움 없이 자기를 드러내고, 자연스럽게 자신과 하나 되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어야 인간다운 삶이다. 

언론과 대중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던 피해자가 이후의 삶을 살아갈 때, 일상이 힘겨울 때 , 몇 년 뒤 인터넷에서 정말 진지하게 공감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마음을 나누는 글 한편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그 삶은 훨씬 나아졌을 것 같다.  

나영이가 살아갈 5년뒤, 10년뒤, 20년 뒤를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당장의 성금과 지원이 사양되었는데, 이것은 더 크고 지난한 숙제를 우리에게 남긴 것이다. 나영이가 살아갈 일상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동네에서 지나가다 만난 시민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편견과 차별, 폭력을 느끼지 않도록 우리는 길게 미세하게 변화되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분노의 글을 올렸던 이가 다른 사람에 대한 일상의 폭력에 동참하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지 않도록. 그래서 수차례 다시 좌절하는 일은 없도록. 인터넷에서도 수년 후 나영이가 정말 살아가면서 힘들 때 깊이 힘이 될 수 있는 진지한 글들이 더 많이 남겨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