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씨티-경희대 NGO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해 상담소에서 6주간 인턴을 한 뿌리입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상담소에서의 마지막이 찾아오고 아직도 그 슬픔과 아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끝이 아닌 또 다른 출발이라고 생각하며 그간 상담소에서 맡은 업무, 소감 등을 작성하고자 합니다.
인턴십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페미니즘 운동을 해오며 늘 해소되지 않았던 더 많은 사람과의 교류, 현장에서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끝 무렵부터 제 관심사는 ‘여성 인권’에 쏠려있었습니다. 이 많은 일상 속 성차별들과 여성혐오 범죄들은 어디서부터 기인하는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저의 숙제였습니다. 이제 모든 걸 혼자 결정하고 저의 주관을 내세울 수 있는 성인이 되고 나서는 대학 내의 페미니즘 소모임, 인권 소모임에 가입하여 몇 가지 활동을 해왔습니다.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읽고 토론하거나 매주 인권과 관련한 주제 이를테면 페미니즘, 트랜스젠더 등 한 주제를 정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곤 했죠. 또는 대학교에 입학할 성 소수자 학생들을 환영한다는 의미를 담은 플랜카드를 제작하고 학교 정문에 거는 프로젝트도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매일같이 일어나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비판하지만 늘 부족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가 여성 인권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교내 동아리원들로 제한적이니 행동할 수 있는 반경이나 생각할 수 있는 시야가 좁혀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는 더 다양한,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움직임에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고민의 과정들을 거쳐 알게 된 것이 인턴십이고 인턴십 지원 당시에 1순위로 여성을 택하고 자기소개서에 이러한 저의 고민과 바람을 잘 녹여낸 덕에 상담소에 오게 되었습니다.
큰 기대와 바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합격 소식을 듣고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상담소까지는 2시간 30분이 소요됩니다. 단순히 물리적 거리가 부담되기보다는 출근 시간의 대중교통에 대한 두려움, 막막함이 커서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또한, 막상 출근을 한다고 하니 상담소에 제가 어울릴 사람인지에 대한 물음도 매일같이 들었습니다. ‘지식이 부족해서 드러나면 어떡하지’부터 시작해서 ‘딱딱하고 무서운 분들만 계시면 어쩌지!’ 등등 굉장히 영양가 없는 걱정과 부담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러한 걱정은 출근 이틀째부터 싹 사라졌습니다.
인턴 시작 첫 주에는 OT를 하며 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때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이렇게까지 자세하고 정성 들여 OT를 해주시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함께한 인턴 수이님과 여러 번 놀랐습니다. 이때의 OT가 ‘상담소는 이런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해주며 저의 걱정을 눈 녹듯이 사라지게 해주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상담소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여성주의 상담팀부터 시작한 OT가 제게는 상담소에 대해 배우고 상담소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방향을 잡아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인턴으로 근무하며 맡게 된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제30차 정기총회 준비입니다. 올해로 개소 30년을 맞은 상담소는 코로나 19로 인해 너무나 아쉽게도 이안젤라홀에서 온라인 총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인턴 시작 전, 코로나 19로 인한 제약이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저에게 정말 큰 아쉬움으로 다가올지는 생각 못 했습니다. 정기총회도 그렇고 뒤에 작성할 수요시위도 그렇고, 현장에서 새로운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또 그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그 경험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매우 아쉬웠습니다. 이것 또한 생각해보면 다른 곳이 아닌 상담소에서 인턴을 시작해 상담소에 애정을 많이 쌓고 그만큼 소중한 기회라고 여겼기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정기총회 준비는 OT 시간과 더불어 제가 상담소에 대해 알아가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상담소가 2020년 한 해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총회 준비에 있어 저의 주 업무 중 하나는 총회에 쓰일 PPT를 제작하는 것입니다. 20년도에 여성주의 상담팀, 성문화 운동팀, 부설 연구소 울림, 부설 쉼터 열림터, 사무국 각각 어떤 활동을 해왔고 21년도에는 어떤 일들을 계획하는지 PPT를 제작하며 제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는 정말 우리 상담소에서, 활동가분들이 정말 많은 일을 해오며 의미를 거두고 계심을 직접 느꼈습니다.
또 하나 저의 주요 업무는 제147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기자회견 준비였습니다. 그동안 수요시위와 일본군성노예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런데 성문화운동팀 신아 활동가님과의 첫 회의를 하기 전에 미리 준비하며 모르는 사실이 많아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2015 한일합의와 이번 승소 판결이 난 소송까지 들어만 봤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때 많이 반성하고 회의를 마치고 ‘눈길’이라는 관련 영화를 한 편 시청하고 유튜브에서 영상들을 시청했습니다. 이렇게 잘 모르고 있는데 과연 내가 상담소의 일원으로 수요시위 기자회견을 주관해도 될지 부끄러운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이때 나름의 공부를 하고 이후 진행된 3차례 정도의 회의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의견을 냈습니다. 어쩌면 제가 무관심하고 외면했던 이 문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공부할 시간을 준 이 기회 역시 큰 감사를 느낍니다.
제1478차 수요시위 기자회견 포스터에 들어갈 문구는 ‘우리가 들었다. 우리가 답한다’입니다. 우리는 30년 전 그 목소리를 들었고 이제는 우리가 답할 차례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맞춰 피켓 제작까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수요시위 기자회견 당일 현장에서 저는 성명서 낭독을 맡았습니다. 원래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터라 이날 역시 정말 많이 떨었습니다. 어떤 목소리를 어떤 힘을 가지고 읽어야 할지부터 시작해서 버벅대면 어쩌나 싶은 잔걱정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아무것도 안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안경도 벗어 던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 차례가 되고 사람들 앞에 서자 떨림보다는 분노의 감정이 너무 커져서 그 감정을 표현하기 바빴던 것 같습니다. 옆에서는 또 다른 애국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그곳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되기에 개인적으로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말을 하다 보니 피해자들의 30년간의 외침과 한일 양국에 대한 분노들이 떠오르면서 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성명서를 읽는 시간 동안은 그곳의 사람들이 저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니만큼 마음을 다해 정말 진심으로 읽었습니다. 마친 후 주변 친구들과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님의 격려와 칭찬에 감사드렸습니다. 사실 어쩌면 안경의 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날 수요시위를 마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후련하다 ’입니다. 그동안 양국 특히 일본에 가졌던 그 무수한 감정들을 이렇게나마 표현하고 외치고 나니 조금은 후련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직 피해자분들의 외침에 대한 사과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에 갈 길은 멀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저는 그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외치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이상 상담소에서의 두 가지 주요 업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외 외상 백서를 정리하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위력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판결을 앞두고 국가인권위위원회 앞에서 이루어졌던 기자회견에 참관한 것 등 기타 소중한 업무들도 있었습니다. 인턴십을 잘 마치고 이전의 인턴분들처럼 후기를 작성할 날이 온다면 적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침 나눔’ 시간입니다. 아침 나눔 시간이야말로 제가 보다 빠르게 상담소에 적응하고 또 소속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입니다. 저는 아무래도 외부인이다 보니 상담소에서는 그래도 거리를 두고 함께할 수 없는 것들이 많으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 나눔 시간에 그 전날의 일들과 오늘의 일, 계획 등을 나누면서 모든 분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시는 그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활동가분들은 어떤 생각이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상담소의 한 식구, 일원이 된 것처럼 사건 진행 과정 등 중요한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저희를 포용해주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에는 모든 분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시는지 이해하며 저도 그 이야기들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또한, 퇴임하신 이미경 소장님과의 외상 정리 시간에도 포용해주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30년간의 상담소의 발자취가 담긴 이 사건 자료들을 저희에게 맡겨주심에 감사했습니다. 순전히 정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관련한 책을 소개해주시거나 이야기를 하며 저희의 생각을 물어봐 주시는 등 상담소의 일원으로 존중받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소장님의 따뜻한 카리스마는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또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점심시간입니다. 합정역 맛집은 단연 상담소 1층 주방입니다. 상담소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매일 점심에 활동가분들이 돌아가며 직접 요리한 것을 먹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그저 너무 맛있고 대단하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것은 오전 시간을 거의 통째로 할애하면서 점심을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어떤 메뉴를 할지 고민하시는 모습들, 더 먹으라고 하시는 모습들을 보며 정말 정성과 따뜻함이 가득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담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느꼈던 가장 큰 기분은 감사함과 따뜻함입니다. 직접 요리해주시는 이러한 점심시간이나 상담소에서 오가며 간식을 챙겨주시는 것들이 모두 제게는 활동가분들의 따스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위 사진은 제가 NGO 인턴십 15기에 지원할 때 실제 작성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제가 목표했던 저 세 가지 모두와 그 밖의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현장이 아니었다면, 저는 분명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인턴 참여자의 NGO 및 공동체 마인드 향상' 이 목표는 인턴십이 마무리된 현재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겉핥기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NGO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공동체 마인드의 절실함까지, 내가 NGO에 관심을 가진 것이 틀린 게 아니라는 확신과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보통 어떠한 일을 마치고 나면 후회가 남기 마련입니다. '이거 하지 말 걸, 이거 이렇게 할걸' 저 역시 후회는 남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알았더라면….' 하고 말입니다. 또 'NGO에 관한 공부 좀 할걸' 이 생각도 듭니다. 대학교 1학년 혹 2학년 때 NGO에 대한 관심이 있었더라면 저는 더 다양한 일을 하며 많은 것들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8주라는 너무나도 값지고 행복했던 상담소에서의 이 시간이 제가 몸으로 직접 공부하고 느끼게끔 해주었기에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인턴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NGO 인턴십이 아니라 일반 기업 업무를 하게 되었다면 그동안의 감정, 배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때로는 그저 단순 사무 업무와 우편물 발행 업무 또 때로는 행사 기획 및 참석 업무 등 다양한 업무들을 해내면서 매 순간 각기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NGO 인턴십을 시작하게 된 것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었던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고 나서 잊어버리고 그 소망과 멀어진 현실이 너무나도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하게 된 이번 인턴십에서 저는 얻어가는 게 더더욱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전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기자회견을 다녀올 때, ‘아 이렇게 일하면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고, 제1478차 수요시위를 기획하기 위한 고민을 하면서 저 스스로가 커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직접 제가 일을 하면서 배운 것만이 저를 성장시키지는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10시에 진행하는 상담소의 ‘아침 나눔’ 시간에서도, 기자회견 현장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것도,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도. 활동가분들이 하는 모든 것들이 제게는 배움이었습니다. 활동가라면, 이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이런 사고를 하고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상담소의 활동가분들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고 바꾸었습니다. 저는 NGO 인턴십을 하면서 활동가분들의 삶 속에 잠시 다녀온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바라는 소망이 이분들 덕분에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상담소에서 인턴십을 하는 기간 동안 종종 이곳에서 이분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배를 운항할지 모르겠습니다.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를 항해할 수도, 어쩌면 난기류를 만나는 비행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어떤 길을 가던, 저의 활동명 '뿌리'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이 방향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이곳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느꼈습니다. 어릴 적 마냥 꿈꾸던 시민활동가가 이제는 제게 현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곳 단체에 어울리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꿈꾸려고 합니다. 제가 활동가분들께 당당하게 웃으며 말씀드렸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다시 그곳 상담소에서 웃으며 활동가분들과 인사하고 일하는 일상을 보내고 싶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의 192시간, NGO 단체 인턴으로서의 192시간은 너무나도 값지고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으며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할 수 있게끔 해주었습니다.
잠깐!! 그래서 제가 왜 ‘뿌리’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가분들은 각자 활동명이 있었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첫 출근을 한 날, 혹시 활동명이 있냐고 물어보셨고 당황해서 별명을 말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빠르게 내뱉어서 저를 별명으로 불러주실 때 혼자 찜찜한 마음이었습니다. 며칠을 지켜보다가, 저의 새로운 활동명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로 활동명을 정한 활동가분도 계셨고 자신을 닮은 동물로 활동명을 정한 활동가분도 계셨습니다. 저의 활동명은 '뿌리'입니다. 1월 초 당시 소장님이셨던 지리산이 제 활동명을 들으시고 멋있고 심오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제 활동명을 혼자 꽤 오래 고민해서 결정했습니다. 제 이름 뿌리는, 제가 지향하는 이 방향이 틀리지 않음은 분명하니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 어떤 일을 하던 그 일은 옳다. 그러니, 어떤 일을 하든 뿌리 내리며 살라는 뜻으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숨은 뜻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에 비하면 너무나도 가냘픈 식물들은 알고 보면 곧고 단단한 뿌리를 내렸듯이 저 역시 거센 바람을 만나도 단단한 사람이 되자는 뜻이 있습니다. 상담소 근무 초반에 지은 이름이지만, 인턴십을 하는 동안은 이름 대로 살고 있었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뿌리라는 단어가 좋고, 뿌리라는 저의 활동명이 참 좋습니다.
192시간 동안 평생 잊지 못할 순간순간들을 만들어주신 상담소의 모든 활동가분과 든든한 동료가 되어준 인턴 수이님, 업무 중 만난 목적지가 같은 많은 여성분께 감사드립니다.
인턴십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상담소에서 경험하고 배운 모든 것들을 앞으로의 연대에 있어 잘 활용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씨티-경희 인턴십으로 192시간동안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인턴십 활동을 진행한 '뿌리'가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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