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담소는 지금

[후기]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3부 응용편

2021년 9월 30일(목) 오후 7시 30분 온라인 화상회의(ZOOM)으로 릴레이 토크쇼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마지막 순서인 3부 응용편이 진행되었습니다. 자원활동가 은혜님의 후기를 전합니다.

 

"우리 서로의 안녕과 안전을 바라는 동의를 기꺼이 하기로 해."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3부 응용편은 성매개감염, BDSM, 폴리아모리라는 보기에 따라 ‘엄청난' 주제를 다뤘다. 기존에 갖고 있던 편견이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무지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게 해주었다. 더 나아가, 동의는 서로의 안녕과 안전을 바라는, 존중을 담은 의사소통 방법임을 알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 3부 응용편, 윤정원 발표자료 중

 

첫 발표는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전문의 윤정원님의 "파트너와 STI(성매개감염) 말하기"였다. 주요 주제였던 STI에 대해서 나는 문란한 성생활의 결과라는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 시선 외에는 제대로 알고 있던 지식조차 없었다.

 

내가 STI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유명 약사 유튜버가 헤르페스 감염 사실을 숨기고 피임기구 없이 상대방과 성관계를 가진 사건이 작년에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상대방은 해당 약사 유튜버와 더 이상 친밀한 관계가 아니지만 미래의 연인에게 헤르페스를 옮겨야 하는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뉴스에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특정 이슈가 없었다면 헤르페스라는 병명은 들어볼 기회도 없었을 만큼 우리나라에서 STI는 제대로 교육되지 않고, 거의 금기에 가까울 정도로 꺼려하는 주제다. 그러나 100명 중 90명이 살면서 한번 이상 STI를 경험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인데 나는 금기, 낙인으로 인해 STI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접하기 전에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위협이 되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렇지만 나 그리고 상대방이 높은 확률로 신체적 증상이 미세하게 발현되었거나 발현되지 않은 잠재적 감염자임을 인지하고, STI는 일부 완전 치료가 불가능한 유형을 제외하고는 약물 등으로 완전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라는 정보를 알게 된다면, 각자의 신체의 안녕과 정신 건강 보호를 위해 성관계 전 STI 검사 및 결과 공유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한다.

 

윤정원님은 이후 지적 권력 관계 관련 질문에 "우리가 기꺼이 흔들리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며, ‘기꺼이’라는 마음이 전제된 후에 평등을 고민하는 것이고, 어떻게 서로를 돌보면서 기꺼이 해나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부지런하게 하는 것이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라는 답변을 주셨다. 이는 내가 위의 생각을 하기까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책과 수치로부터 상대방과 나를 지키기 위해서 정확한 정보를 알아가고 주변의 친밀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내가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 3부 응용편, 희정 발표자료 중

 

두 번째 발표는 기록노동자 희정님의 "이상성욕자? 선량한 변태들의 목소리"였다. 주요 주제인 BDSM(구속/훈육,지배/복종,가학/피학 플레이) 내에서 나타나는 안전의 권리와 획득, 그리고 우리가 ‘동의'라고 부르는 일방적 언어 전달에 대한 다른 시각을 공유하게 되었다.

 

‘변태화한 이미지', ‘이상 성욕자' 등의 키워드는 그동안 매체에서 BDSM을 다뤄왔던 피상적인 모습으로만 보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실제의 BDSM은 즐거움과 한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파악하며 원하는 플레이를 알고 동의를 해야하는 행위이다. 욕구와 동의 내용을 벗어나면 그 행위는 고통과 폭력이 될 수 밖에 없으므로, 각자의 기준은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따라서 이들에게 의사소통은 상대방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이 내용을 알고 나니 오히려 BDSM이 아닌 성관계에서 흔히 ‘동의’라고 부르는 언어적 수단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행위 이후 긍정적인 피드백을 바라고 묻는 일방적인 질문을 동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혹은 옵션 몇 개를 정해놓고 수용 여부만 묻는 걸 과연 동의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전혀 즐겁지 않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며 즐기는 척하는 것도 내가 동의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행위 도중 느낀 불쾌감에 대해 그 순간에 바로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를 합의된 부분이었다고 볼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수많은 의문은 결국 세밀하고도 명확한 의사소통의 부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BDSM 외의 성관계도 모두 상대방과 나의 안전과 안녕을 바란다면 과연 "우리 사이에 무슨 대화야?" 같은 스킵이 있을 수 있을까? 또는 반대급부로 자신이 원하는 체위나 분위기를 명확히 말하는 것 자체를 ‘섹스를 밝힌다', ‘헤프다'는 시선으로 볼 수 있어 쉽게 말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한 스킵과 편견들이 모이고 모여 일방적이고도 만족스럽지 못한 일종의 ‘망한 섹스'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망한 섹스’를 피하고자 하는 소극적인 방법이 아니라 서로의 만족을 얻고자 하는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 세세히 공을 들이고, 많은 시간을 들이고, 할 수 있는 만큼 정성을 들여서 의사소통 하는 것이 원하는 답에 가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 3부 응용편, 홍승은 발표자료 중

 

세 번째 발표는 집필노동자 홍승은님의 "연애 계약서 새로 쓰기 : 독점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을까"였다. 주요 주제는 폴리아모리(다자관계)로 사회문화적으로 고정된 관계의 틀과 룰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원하는 방식의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한 다른 가능성들과 다양한 방식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모노아모리(일대일 독점적 관계)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보통의 연애' 모델로서 기능하고 있는데 연애 뿐만 아니라 법률, 문화적으로도 지지를 받고 있으며 그 이외의 관계는 모두 범죄화되거나 음지화 된다. 홍승은님은 이 틀에 질문을 던진다. ‘사랑에는 진정한 원형이 있는가?’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는 것에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막상 내 연인이 나도 사랑하지만 다른 사람도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상황을 가정할 때 느껴지는 당혹스러움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나도 독점과 통제와 감시가 사랑의 영역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걸까? 그렇지만 일대일 독점적 관계 속에서는 조금이라도 덜 사랑하는 사람이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한 강요, 협박, 위협, 조종, 기만행위가 진정한 사랑의 원형이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가 있나? 하는 혼란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주제였다.

 

이에 대해 폴리아모리는 기존의 연애각본의 권력 관계를 백지로 만들고 각자가 원하는 방식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평등에 이르는 합의의 과정이라는 답을 제시한다. 그 과정은 사소하면서도 중대한 모든 부분을 커버한다. 새로운 파트너와 밖에서만 만나고 싶은지, 기존 파트너들과 다른 파트너와의 관계를 공유하고 싶은지, 비출산을 위한 정관수술을 할 수 있는지, 서로에 대한 신뢰, 정직, 책임, 돌봄 등 관계 유지를 위해서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함께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같이 걸어갈 것을 제안한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상대방의 안녕과 안전을 바라며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는 것이고 이 바람이 실질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꺼이 모든 생활에 동의라고 하는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한 행위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중간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다소 이른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그럼 일일이 다 계약서 쓰고 섹스해?”라는 무례한 질문에 장장 여섯 시간에 걸친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릴레이 토크쇼를 듣고 하는 성의 있고도 정중한 대답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후기는 자원활동가 은혜님이 작성했습니다>

 

일다 스케치 기사 <성관계에서 ‘좋았어?’ 질문 대신 묻고 말해야 할 것> 함께 보기 https://www.ildaro.com/9166

 

≪일다≫ 성관계에서 ‘좋았어?’ 질문 대신 묻고 말해야 할 것

성적 행위를 하기 전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럼 뭐 계약서라도 쓰란 말이냐?’라는 말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동의를 구하거

www.ildaro.com

 

새로운 반성폭력·성문화 이정표를 만들어가고자 진행되었던 릴레이 토크쇼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전체 내용은 속기록을 엮어 자료집으로 발간될 예정입니다. 홈페이지에 PDF로도 공유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