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0일 토요일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미투운동 이후 다섯번째 여름을 맞아 [미투운동 중간결산 : 지금 여기에 있다] 를 온라인, 오프라인 동시에 열었습니다.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미투운동 중간결산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인사동 ‘코트’에서 열린 오프라인 행사장에는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미투운동에 마음을 모아준 분들로 하루 종일 북적북적 했는데요. 미투운동이 남긴 언어와 여전히 함께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전시] 미투운동이 당신에게 건넨 말
당일 행사장의 널따란 마당에는 멋진 걸개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소속 디자이너 15명이 ‘미투운동이 당신에게 건넨 말’ 하나하나를 새롭게 디자인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바뀔 때까지 미투는 멈추지 않는다” “존재만 하는 위력은 없다” “이 싸움의 끝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닮아 있을 것입니다” 등 미투운동의 대표 구호와 함께 N번방 사건 대응 과정을 보여주는 “우리의 연대가 너희의 공모를 이긴다”, 이반지하의 “세상아 너는 두려워해야 할거야, 나는 생존자거든” 까지 다양한 방식의 증언들이 각 디자이너들의 흥미로운 해석을 통해 멋진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FDSC는 행사에 필요한 현수막, 배너, 온라인 홍보물 등 모든 디자인 결과물을 분담하여 맡아주셨습니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운동에 함께할 것인지 그동안 고민을 모아오셨기 때문에 상담소도 이런 감사한 협업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행사 정보와 온라인 전시, 일부 발언문들은 현재도 모두 웹사이트(2022metoo.com)에서 확인가능한데요. 이는 FDSC에서, 행상의 의미를 담고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제안해주신 덕분에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넓은 공간에서 걸개 작업물 전시와 더불어 부스, 세션 등을 세팅하고 운영해야 했는데, 미투를 기억하고 운동을 이어가고자 하는 많은 자원활동가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선민, 정인영, 소연, 지윤, 강승희, 지니, 도롱뇽, 이재정, 정재원 총 9명의 자원활동가분들이 행사 진행에 빼놓을 수 없는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부스] 반성폭력 도서/물품, 적극적합의 타로카드 꾸미기, 성폭력 사건 지지 연대 참여
1층에는 작은 반성폭력/페미니즘 도서전이 열렸습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여성운동사를 기록한<여성노동자, 반짝이다>, 최영미시인의 최근 저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공항철도> <돼지들에게>, 김지은님의 <김지은입니다>, 연대자D의 신간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FDSC의 <뛰어놀며 운동장의 기울기를 바꾸기>등 ‘미투운동 중간결산’의 패널로, 영상 출연자로, 전시 작업으로 함께해 주시거나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을 지지하는 많은 분들이 당일 도서부스에 참여해 주셨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적극적합의 타로카드 꾸미기’ 프로그램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이 운영하는 불량언니 작업장의 다양한 물품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연대의 커피 <람지커피>는 김지은님이 직접 만들고 판매하여, 현장에서 ‘완판’을 이뤄냈는데요! 김지은님은 행사 말미에 멀리서 여전히 싸우고 있는 성폭력피해생존자와 연대자분들에게 <김지은입니다>책과 연대의 말을 전하여 모두에게 용기를 전달해 주셨습니다.
[영상] 미투운동 중간결산 : 1664일, 달라진 질문
행사장에서 두근두근 첫 공개되었던 영상 ‘미투운동 중간결산 : 1664일, 달라진 질문’은 <애프터 미투>프로젝트 팀이 촬영하고 엮어내주셨습니다. 박소현, 이솜이, 강유가람, 소람 감독님은 옴니버스 다큐 <애프터 미투>를 통해 미투운동 이후 한국사회에 어떤 질문과 가능성이 놓여있는지 여성들의 일상과 목소리를 따라가는 작업을 해오셨습니다. <애프터 미투>의 9월 ‘대개봉’을 앞두고 바쁜 와중에 행사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영상 제작을 흔쾌히 맡아주셨습니다. 영상은 2017년 #문단 내 성폭력, 2018년 #미투운동에 참여한 문단 내 성폭력 고발자 X와 최영미시인의 이야기가 담겨있었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를 따라 미투운동의 여정을 함께 하며 달라진 일상과, 달라질 질문들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었습니다.
[세션 1 : 여는 마당] 성찰빼고 돌아올 때_가해자 처벌 후 복귀 전, 공동체의 숙제
진행자로 예정되었던 나임윤경 선생님의 코로나 19 확진으로, 패널이었던 한국성폭력상담소 란 활동가가 사회를 보았고, 사전 모임 때 나임윤경 선생님께서 나누어주셨던 질문을 함께 다루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_신용우(안희정 성폭력 사건 증인)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증인이자 8년간 안희정의 비서로서 직무를 수행했고, 피해자의 직전 수행비서로서 업무 인수인계를 한 당사자 신용우씨는 안희정 지사의 성폭력 사건을 듣고는 “알고 있는 진실 그대로 말하면 8년동안 아버지처럼 모셔온 안희정 지사의 유죄를 주장하는 일이 되었고, 그렇다고 진실을 알면서도 안희정 지사의 무죄를 주장할 수도 없었다”라며 당시의 어려움을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고심 끝에,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했던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해야겠다고 결심” 하며 증인으로서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신용우씨는 대한민국의 차기 대권주자로 인지되는 권력에 부딪치며 권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뼈저리게 경험하였고, 안희정 지사 주변인들이 “대통령 선거운동급으로” 역할을 나누어 피해자를 공격하는 현실을 목격하였습니다. 재판 후 안희정 지사 측 증인들은 승승장구하며 여러 공직에 오르고, 피해자 측 증인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해고를 비롯한 어려움이 계속됐다면서,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주체들은 이 상황에 대해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은 단순히 개인이 개인에게 저지른 범죄를 뛰어넘어 권력과 그의 무리들이 개인과 진실의 편에 선 사람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공격하고 짓밟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정의하며 이 상황을 만든 주요한 책임주체인 민주당에는 다음과 같이 요구하였습니다. “민주당은 권력형 성폭력당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 권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던 공동체로서 도의적인 책임성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가해자 제명이라는 꼬리 자르기 식의 책임 회피성 조치가 아닌 근본적인 대책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중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일은 2차 가해에 앞장서서 그의 무리들로부터 마치 상을 받듯 구걸을 하는 그들에게 당은 특혜를 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2차 가해에 앞선 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주고 보호해 줬던 사실은 없는지 명명백백하게 조사하여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안희정 지사에게는 “지금이라도 지난 시간들을 다 복기해 보시고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리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중략) 계속되는 이 고통들을 온전히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안희정 지사 본인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발언하였습니다.
_장혜영(국회의원)
“미투운동 무엇과의 싸움이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성폭력과의 싸움임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기득권과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가해의 구조를 살펴보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정치적, 문화적 기득권들이 있었고, 그런 맥락에서 미투를 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존엄함을 선언하며 피해에 맞선 것이기도 하지만, 이 사회의 기득권에 맞서서 용감하게 저항하고 폭로하고 목소리를 내온 사람들이기도 하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처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던 만큼 꿈꿔왔던 것은 성찰의 시간”이고, 오늘 자리에서 “우리가 힘겹게 만들어낸 처벌의 시간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시에 속해있던 우리 공동체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는가 돌아보자”라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장혜영 의원은 자신이 미투운동의 연대자이기도 하지만 미투 당사자이기도 할 때, 자신의 공동체에서 과연 성찰이 있었는가를 평가해 본다면 불충분함을 느낀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사전 모임에서 나임윤경 선생님은 “성찰은 자기 진술문인데 명령어로서 “너 성찰해!”라고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미투운동 과정에서 공동체의 성찰이라는 구호는 있었지만 사실 그 구호가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미투운동 당사자와 연대자가 생각하는 성찰의 구체적인 상이 무엇인지 공유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남겨 주셨습니다.
장혜영 의원님이 제시한 성찰의 구체적 모습은 “이야기의 형태로 남는” 것이었습니다. “미투운동의 전체적인 흐름,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개별적 사건들을 어떤 이야기로 기억하고 표현하고 전달하고 있는가가 우리의 성찰이 어디까지 왔는가를 보여주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는 피해자의 용기에 대한 확장”이라는 멋진 성찰문을 남겨주셨습니다. “공동체가 피해자의 용기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싸움”을 하는 것에서 우리의 깨달음을 더욱 발전시켜가야 한다는 말로 발언 마무리하셨습니다.
_이산(성평등작업실 이로)
이산님은 2018년 이윤택 성폭력 사건 이후 연극계가 해온 작업들은 어떤 것이었는지 설명하며 발언을 시작하였습니다. “좋은 연극을 만들기 위해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배워왔던 불편함, 고통, 침해를 걷어내고” “범죄임에도 쉽게 묵인되었던 행위에 대한 인식을 점검하고, 일상에 가까운 쉬운 말로 책임의 범위와 윤리적 규범을 다시 쓰고, 폭력에 대응하는 메뉴얼을 만들고, 법 제도를 요구”해왔는데, 이는 “사소해 보이는 언행이 하나하나 쌓여 폭력을 지속시키는 구조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어 공동체란 무엇인지 질문하며, 이해관계망으로써 공동체를 전제하며 성폭력 사건의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공동체 구성원이 공유하는 환경에는 이해관계망도 포함”되며 “공동체가 자원을 여러 요인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분해왔고, 서열에 포함되기 위해 소수자를 타자화하고 착취해온 역사를 함께 돌아보는 경험이 없다면 공동체의 이익 추구는 차별과 폭력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연극계 내 성폭력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에서 시작한 관계들이 대부분 청산되는 시간을 거치며 “공감은 이해관계의 울타리를 넘지 못했고, 공통의 환경은 척박하여 다들 벗어나고 싶어 할 뿐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공동체의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가해자는 공동체와 분리되었던 시간을 권력으로 보상받으려 하고, 자신이 쥐고 있는 이해관계망을 흔들어 피해자의 안위를 해치도록 부추기기 쉽다”면서 '변화를 향한 초대'를 어떤 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함께 찾아가자고 제안해주었습니다.
_공통질문 ‘폭력 이후 공동체가 진화적 방식으로 변화하려면’
장혜영 의원님은 ‘피해자는 일상으로’라는 중요한 구호가 있지만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일상이 없다”며 “미투운동은 기득권과의 싸움이고, 기득권 위에 구조화된 것이 나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라고 발언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일상을 창조해 내야 하는 과제가 피해자 앞에 놓여있고, 공동체의 과제 또한 피해자와 함께 어떻게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갈지가 핵심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산님은 성평등 교육 활동가로서 공동체 내 주변인들의 연루감을 어떻게 소화하도록 도울지 많이 고민한다면서 “연루된다는 것이 반드시 어마어마한 비윤리적 행위를 한다기보다 힘을 보탤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라며 거기에 대해서 부채감이나 자책감으로 더 위축된다거나 혹은 책임을 나눠가지면 좋을 사람들이 방어만 하게 되는 상황에서 그 격차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뭐가 있을지 고민이라고 나눠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참여자의 발언도 이어졌습니다. 자신을 광주에서 활동하는 배우라고 밝힌 그는, 사건 공론화 이후 피해자와 주변인들이 낙인찍히거나 배제당하면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대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을 경험했다며, "저는 과연 연대자인지 또 다른 피해자인지" 고민을 나눠주셨습니다.
[세션 2 : 쟁점토크] '피해 부정'의 시간, '2차 피해' 해결은 가능한가?
세션 2에서는 한겨레 21 박다해 기자의 사회로 ‘2차 피해’와 ‘피해 부정’의 양상을 다루었습니다.
_김혜정(한국성폭력상담소)
미투운동 4년은 2차 피해 대응 4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면서, 특히 성폭력을 ‘부인하려는 행위’가 매우 끈질기거나 전면적이었던 경향성을 짚으며 이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피해를 부정하고, 피해자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는지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부인하려는 행위’는 객관적 증거와 사실관계에 의해 성폭력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부인하려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함으로써 성폭력 아님을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이 행위는 2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성폭력 여부를 따지는 정당한 방식이라는 방패막으로서 반론권, 피해자에 대한 객관적 검증, 국민의 알권리, 무죄추정의 원칙, 피고인과 피의자의 권리 담론으로 설명되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에 대한 온갖 가짜뉴스, 음모론, 사생활 평가, 위협 같은 행위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정당한 검증과 사건과 무관한 공격이라는 분류는 ‘부인하려는 행위’안에 뒤섞여 있다고 관련 연구자들은 지적합니다. 김혜정님은 두가지 양상을 분류하고 제재하고 책임은 지는, 해결하려는 의지와 역량을 가진 공적 주체는 지난 4년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부인하려는 행위’는 남성연대를 경유하여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특정인의 특정 범죄 행위를 고발하는 것을 넘어 남성연대를 어떻게 적확하게 비판해야 할지”가 남겨진 질문이라면서 “가해자 한 사람이 아니라 조직도를 알아가는 것, 해당 업계의 구조도를 알아가는 것 그것이 미투운동 활동가로서 제일 많이 배우고 알아야 했던 지점이었고, 일반 시민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하지? 고민되었던 지점”이라고 발언하였습니다.
_이보라(국회정책연구회)
기본적으로 2차 피해 담론은 운동이 법을 적극적으로 만들었고, 법이 운동을 적극적으로 흡수했던 배경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하며 지금의 문제는 사회운동의 원리가 공동체에 공유되고 법의 제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을 바로 수용했던 법과 너무 느린 공동체의 사후적 공유 과정에서, 지체된 문화적 현실 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짚어주셨습니다. 여기에는 언론이 사건을 빠르게 키우고 국회가 이를 바로 입법화(ex000법)시켰던 배경, 즉 언론의 단타성과 국회의 단발성이 만나는 접점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성폭력의 발생 구조를 묻고자 했던 사회운동으로서의 목적의식적, 한정적, 맥락적인 언어가 법과 수사의 언어로 곧바로 확대된 것이죠. 입법 노동자로서 이보라님은 “빠른 입법은 반드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걸 너무 알고 있고, 법이 통과된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략이 있는가 하는 물음이 비어있는 상태“에서 사회의 공동화( 空洞化) 에 대한 우려를 전해주셨습니다.
미투운동의 성과로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통과 되었고, 이 법에는 2차 피해의 정의와 방지를 위한 방안이 담겨 있지만, 2차 피해를 야기하는 폭력 방지 수단은 교육 등으로 제한되어 있는 상황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념만 무성하고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전략은 비어있는 상태를 보여준다고 진단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피해 개념의 유용성은 분명히 있고, 그 지점 중 하나는 정치 영역이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저는 공동체가 특정되어 있다면 2차 가해 개념은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당에는 당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특정되어 있고, 특히 정당과 정치라는 평판사회에서는 피해자가 일상으로 복귀 못하게 하는 기제가 2차 피해일 때, 2차 피해를 얼마나 제대로 규율하는지가 피해자가 일상으로 복귀하게끔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_송란희(한국여성의전화)
운동적 차원에서 2차 피해 개념은 “여성폭력 문제 해결이 단지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같이 다뤄야 할 문제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여성운동의 큰 성과”이며, “가해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과 사회 인식의 문제가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실체적 피해를 야기한다는 것을 개념화”했다는 점에서 2차 피해가 중요하다는 점을 짚어주셨습니다. 그러나 ‘2차 피해’ 개념을 문제해결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왕왕 실패하기도 했는데 대표적 사례로서 성폭력에 대해 ‘말하기 금지’ ‘말할 수 없음’의 시간들이 분명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미투운동을 거치며 ‘2차 피해’개념은 더욱 대중화되었고, 2018년 크리스마스에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이 생기면서 2차 피해 개념이 법제화되었는데, 가장 큰 성과는 성폭력 외 가정 내 여성폭력, 성매매, 데이트 폭력, 스토킹 등 젠더 기반 여성폭력 전반에 ‘2차 피해’를 적용하게 되었다는 점을 꼽아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성폭력방지기본법상 벌칙조항은 부재한다는 것이 한계인 상황입니다. 결론적으로 ‘2차 피해’는 사건처리 전반에서 피해자가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언어가 되었지만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은 매우 미흡한 실정이라며 그러나 이를 모두 법제화해야 하는지 혹은 할 수 있는지는 논의해야 할 과제라고 발언하였습니다. 송란희님은 모든 사건을 다 사법적으로 해결해야하는가를 논외로 하더라도 모든 사건을 사법적으로 ‘정의롭게’ 처리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차원이라는 문제의식을 이야기하며, 근본적으로 원사건인 강간,강제추행 같은 경우 폭행 또는 협박 구성요건이 변하고 있지 않은 법적 현실에서 원사건의 해결이 난망한 가운데 2차 피해라는 것은 예정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에 대한 고민을 나눠주셨습니다.
_권김현영(여성현실연구소)
권김현영님은 ’성폭력피해자가 스스로 말하는’ 그것도 집단적으로 말하기 시작한 시작한 미투운동은 한국사회가 상상한 범위를 넘어선 일이었고, 미투운동이 혁명적인 부분은 바로 피해자가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면서 “엄청난 2차 피해가 일어나는 사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사건이 바로 우리 사회의 환부를 정확하게 건드리고 있다”라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는 말로 발언 시작하셨습니다.
당일 자리에서는 2차 피해를 이야기할 때 사법적인 차원과 사회윤리 차원을 나누어서 생각할 것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여성폭력 방지법의 2차 피해에 대한 법적 정의 중 ‘그 밖에 정신적 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로 인한 피해’를 포함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2차 피해를 지나치게 확장시키는 방식이고 이는 2차 피해의 쓸모라고 하는 것을 오히려 더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개념이 지나치게 넓게 사용될 때 “피해자한테 뭘 물어봐도 2차 피해야”라고 하는 물음에 끊임없이 응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게 됩니다. 저는 이런 문제는 사회윤리 차원에서 우리가 어떻게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의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법정의 차원에서 2차 피해 관련한 문제는 정확하게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와 관련하여 법적 안정성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언론이라든지, 수사기관 상담기관들이 이에 해당되며 전문가 집단 내에서의 윤리라고 하는 규정은 상당히 명확하고 꽤 활용도가 높은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2차 피해의 양상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서 2차 피해 자체를 없애자는 큰 목표가 아니라 왜 발생되냐에 따라서 사건 지원 플랜을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이길 수 있는 작은 싸움을 만들자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2차 피해가 ‘유난히’ 심한 사건들의 특징은, 가해자가 부인하거나/ 공론화는 크게 되었으나 실체적 사건에 대한 정보가 지나치게 적은 사건들이거나 /피해자가 ‘매력적’일 때 입니다. ‘젊고, 예쁜’여성들이 피해자일 때 2차 피해가 강력하게 생기는 이유는 젠더규범과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여성이 소비되는 방식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이것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리가 없다는 거죠. (중략)가해자가 부인하는 행위 때문에 2차 피해가 심하다면 심지어 대법이 끝나고 나서도 부인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을 내려서 어떤 식의 단절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세션 3 : 다함께] 피해자는 일상으로 : 달라진 우리로 살아가기
세션 3은 한국성폭력상담소 감이 활동가의 사회로 미투운동 대표 구호인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를 다함께 다시 써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라는 것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고, 피해생존자의 ‘회복’에 필요한 조건과 환경을 나눠보았습니다.
_주연 (충북스쿨미투연대)
주연님은 청소년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청소년 피해생존자로서 또 지역에 성폭력 고발자로서 일상회복의 조건을 말해주셨습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다른 지금을 살자”라는 선택은 어떤 시간 속에서 가능했고, 무슨 기반이 필요한지 자신의 경험 속에서 단단하게 길어올린 이야기를 나눠주셨습니다.
“직시를 하게 됐어요. 피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제가 그렸던 일상 회복은 가해 교사만 쏙 빠진 학교생활이었거든요. 그 사람만 쏙 빠지고 나는 이제까지 다니던 사람들과 함께 잘 다니고 그래서 과거로 회귀하는 거에 붙잡혀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스스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근데 이게 나쁜 게 아니라 그러니까 조금 더 바뀐 지금을 살자는 다짐을 하기까지 되게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저 혼자 고민하고 매여 있게 되는데 그 옆에 꾸준히 지켜주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제 친구가 그랬고, 지지모임이 그랬고, 그렇게 하나하나 지나오다 보니까 20살이 된 거예요. 저는 사실 제가 20살을 맞을 거라고 전혀 생각을 못했거든요.”
_권수정 (금속노조 부위원장)
권수정님은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되고 나서 수많은 동지들에게 ‘조직 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어떻게 핵심 임원으로 승인될 수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오래 고민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결국 집단적 지지가 피해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주는 반짝이는 이야기가 거기 있었습니다.권수정님의 목소리를 조금 길게 인용해봅니다.
“2004년에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이 금속노조 내에서 처음으로 제소되었습니다. 그 사건의 피해자가 저였고요. 쟁점은 2차 가해였습니다. 당시 우리 조직의 규정에는 2차 가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이상한 일도 아니죠? 2004년입니다. 중앙위에서 2차 가해가 계속 인정되지 않았고 대의원대회까지 안건으로 올려서 발언을 했습니다. '내가 성폭력을 당했고, 이 사건을 조직에 제소하였더니 어떤 지부에서 공식적으로 제가 소속된 지부에 성폭력이 아니라는 공문을 보냈다 2차 가해를 인정해라.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금속노조 안에 동지에게 다른 여성 동지가 성폭력을 당해서 제소했을 때 공식적으로 진상조사를 하기도 전에 2차 가해가 아니라고 선언해 버리면 어떤 피해자가 무서워서 말할 수 있겠냐? 이 얘기는 즉, 성폭력을 당해도 말하지 말고, 입 닥치고 살라는 이야기다. 동지들이 나를 동지로 인정한다면 2차 가해도 인정해 줘야 한다.' 이런 내용의 발언을 했고, 표결을 통해서 2차 가해가 인정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 이후에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모두 폐기하였고, 사건 자체를 내 머릿속의 서랍에 넣고 문을 잠근다고 생각했습니다. 탁탁 털고 나는 이제 이것을 잊어버릴 거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렸습니다. (중략)시간이 흘러 부위원장이 되었고 ‘나는 왜 살아남았지’그런 질문을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금속 노조는 집회나 토론회 할 때 확대 간부 지침이 대부분입니다. 집회에 가면 그때 그 대의원 대회에 있던 사람들이 다 있는 거예요. 집회 장소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합니다 ‘권수정 동지 안녕하세요’ 깔판을 찾아주고 커피가 제 손으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게 좋지 않았어요. ‘이 사람들이 내가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라는 걸 알고 있구나’ 그런데 싫지도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고 있구나 ‘네가 맞아 네가 말한게 맞아’라고 인정해주고 있구나라고 느꼈기 때문에. 내가 잊어버려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조직의 동지들이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것을 2020년에 그 질문을 받고 생각한 다음에 알았습니다.”
_허디터(허들을 넘는 여자들)
허와 들 두 에디터분들은 생존자들의 일상회복에 대해 10명의 생존자들의 글을 모아 <허들을 넘는 여자들>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피해자’와 ‘일상회복에 대한 기대’를 받는 생존자라는 압력에 맞서 어떻게 주체적으로 일상회복을 말할 것인지 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작년에 들 에디터님께서 제안을 주셨어요. 그 기획안에 ‘씻을 수 있는 상처’라는 단어를 써서 주셨습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론에서는 주변에서든 성폭력은 씻을 수 없는 상처라고 굉장히 이야기를 많이 했잖아요. 그런데 씻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 상처를 언제 어떻게 다룰지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된다는 들디터님의 주장에 대해서 공감하는 바였습니다.(중략)그런데 저도 기획을 하기도 했지만 피해 당사자이기도 하거든요. 계속 생각을 해봤어요. 돌아가고 싶은 일상이 있는지. 어떤 게 괜찮아진 상태인지, 되게 어렵더라고요. 여기에 답을 구하기 어렵다면 괜찮아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모아보자. 그러면 거기서 뭔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만들어진 책이거든요”
3부 세션에서는 참여자들의 목소리도 적극적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푸른나비는 친족성폭력 생존자로서 일상회복은 무엇일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부산에서 온 참여자는 생존자 말하기 대회 경험에서 굉장히 많은 피해자들이 자기 이야기가 경청되고, 공감되는 경험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서 오늘의 자리가 많은 피해생존자분들이 힘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되어준 것 같다고 고마움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참여자 중 한 분은 지지와 연대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질문해주셨는데, 이에 대해 권수정님은 눈빛과 태도만으로, 그리고 꼭 나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면서, 연대자들이 용감하고 거침없이 지지를 표현하는 것도 좋겠다는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공연] 싱어송라이터 이랑
마지막 순서로는 가수 이랑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자리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응원하며, 환대와 보살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기획팀은 했었는데요. 이랑의 공연은 많은 이들에게 울컥한 마음과 지난 시간을 지나온 우리 모두를 격려하는 노래가 되어 주어 더없이 좋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날의 자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인상깊은 장면이 많았습니다. 세션 3 패널들의 사전 모임 때 20년이 넘게 여성노동운동가로 살아오며 축적된 노하우를 담담히 들여주시던 권수정 선생님은 스쿨미투 당사자로서 놀라운 힘으로 사건을 해결해온 주연님에게 동지라고 호명하며, 지금까지 일상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묻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당일 행사장에서도 사는 지역, '미투운동'과 만난 시간이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 모였지만 현재 서있는 자리에서 서로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노하우를 꺼내어놓고, 필요한 돌봄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기획팀으로서 바랬던 것 같아요. 또 첫 기획회의 시간에 각자에게 미투운동이 어떻게 남아있는지 이야기하며 '상식이 바뀐다' '다른 관계망' '선수들, 플레이어가 바뀐다'고 키워드를 꺼내보았습니다. 당일의 토론장에서도 미투운동을 통과하며 다른 주체로서, 새로운 윤리/상식을 가지고, 어떻게 사회를 새롭게 지을 것인지 풍성한 논의가 이어졌는데, 미투운동이 개인들에게 남긴 수많은 의미들이 잘 정돈되고 또 풀어낼 방향을 찾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지 준비했던 사람으로서 궁금한 마음입니다. 앞으로 각자의 공간에서 펼쳐지고 엮어갈 멋진 이야기들을 응원하고 기다리며 후기를 마무리합니다!
- 현장의 생생함이 담긴 자료집 바로가기 https://www.sisters.or.kr/data/report/296
- 웹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전시와 일부 발언문, 언론 기사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사이트 https://2022metoo.com
- 한국성폭력상담소 유튜브 채널에서 [미투운동 중간결산 : 지금 여기에 있다] 다시보기가 가능합니다.유튜브 다시보기 https://youtu.be/i7ztN4Awb8E
<이 글은 성문화운동팀 동은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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