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에서 직장 내 괴롭힘, 스토킹, 불법촬영과 싸웠던 성폭력 피해자, 끝까지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던 여성노동자가 가해자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비통하고 분노스러운 마음으로 고인의 싸움을 기억하며 추모 액션을 진행했습니다.
<긴급 추모액션> 신당역 10번 출구 포스트잇 행동
9월 15일 저녁에는 신당역 10번 출구에 만들어진 추모공간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추모행동이 있었습니다. 상담소 활동가들은 이 사건을 마주하며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긴급하게 논의하여 아래와 같은 포스트잇을 적어보았습니다.
“더는 한 명도 잃을 수 없다”
“끝까지 직장내괴롭힘, 스토킹, 불법촬영과 싸웠던 성폭력피해자, 끝까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여성노동자였던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합니다.”
“피해자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법부의 현주소. 스토킹 3년, 불법촬영 가해자 구속영장 기각한 재판부는 자성하고 대책 마련하라.”
“우리의 일상이 두려움으로만 채워져서는 안되기에, 애도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여성이 폭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일상을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
“가해자 관점의 범행 서사 묻지도 듣지도 말라”
스토킹 처벌법상 가해자와의 분리조치 등을 통한 피해자 보호 조치가 얼마나 미진한지, 스토킹 가해자의 폭력이 강력 범죄로까지 이어지기 전 수많은 ‘살인 전조’가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보호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 등 스토킹 범죄로서 이 사건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했습니다. 또한 가해자 관점의 범행 서사를 언론에서 무비판적으로 기사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 했습니다. 무엇보다 고인을 추모하며 끝까지 일상을 포기하지 않고 싸움을 이어갔던 피해자의 용기를 기억하고자 했습니다. 상담소 회원과 시민들도 퇴근길, 귀갓길 발길을 돌려 함께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살해당했다” <여성노동자가 안전한 일터를 위한 침묵시위>
9월 16일에는 민주노총 주최로 침묵시위와 추모집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국립 의료원 장례식장에서 개별 조문 후 참여자들은 신당역까지 “여성폭력 없는 일터” “일하다 죽었다””여성폭력은 왜 산재가 아닌가” 등의 피켓을 들고 행진했습니다. 상담소 활동가들은 자체적으로 만든 피켓을 들고 신당역 거리를 침묵하며 걸었습니다. 침묵시위는 침묵으로 자신의 의사를 강하게 표시할 때 사용되는 시위의 형태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마주할수록 느끼는 ‘말문이 막히는’ 심정을 보여주는 행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토킹 피해의 성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영장 기각한 재판부와 여성노동자에게 안전한 일터를 만들지 않은 직장, 사건의 본질을 되려 왜곡하는 정부, 스토킹을 ‘사랑싸움’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 등이 층층이 쌓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신당역 10번 출구 추모공간을 돌아 신당역 화장실 들머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도착한 후 추모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여성노동자가 일하는 공간에서 살해당한 이 사건은 젠더 폭력 문제이자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의 문제로서 성평등한 일터, 여성노동자에게 안전한 노동공간을 이야기해 온 민주노총 활동가들의 애도의 시간이자 ‘막을 수 있었던 산재’로서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이날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앎은 집회 현장에서 발언하며 “여성이 폭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일상을 살아갈 권리”를 말했습니다. 끝까지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지 않고 직무를 이어갔던 성폭력 피해자, 여성노동자의 싸움을 기억하며 두려움만이 아니라 연대로 이 공간을 채우자고 제안했습니다. 아래는 발언 전문입니다.
- 직장내괴롭힘, 스토킹, 불법촬영과 싸웠던 성폭력피해자, 끝까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여성노동자였던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합니다.
어제 아침, 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성폭력상담소에서 제가 상담했던 많은 피해자분들이 떠올랐습니다. 가해자에게 해코지 당할까 봐 두려워서 신고를 망설이는 피해자분들께 신변보호나 접근금지 제도를 안내해드렸던 기억이 떠오르자 목이 메었습니다.
고인도 신변보호를 받았습니다. 언론에 따르면, 경찰은 한달 간 아무 일도 없었다는 이유로 신변보호를 종료했다고 합니다. 3년 전부터 스토킹이 지속되었고, 불법촬영과 협박이 있었으며,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고, 가해자는 불구속 상태였는데, 고작 한달 만에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겁니다. 피해자가 신변 보호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피해자가 위험성을 판단해야 합니까? 피해자의 판단만으로 경찰이 신변 보호를 종료했다는 것이 과연 적절한 변명입니까? 위험성을 판단하는 책임을 피해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무책임한 변명입니다. 구속 영장을 신청했는데, 법원이 기각했다고 합니다. 구속 영장을 신청한 근거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위험성을 고려하고 피해자를 보호했어야 했습니다.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법부의 현 주소에 분노합니다. 특히 구속영장 기각한 재판부는 자성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자리에서 두려움만을 강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사건 기사를 보고 아마 많은 피해자분들이 나도 이런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커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저는 지금 일부러 보복이라는 말을 피하고 있습니다. 보복이 아니라 해코지입니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신고를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런 폭력 속에 침묵한다면 우리는 안전한 일터, 평등한 사회에서 살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 두려움을 넘어서 다시 용기를 내고 힘을 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고인은 가해자의 폭력을 멈추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대응을 다 했습니다. 경찰에 수차례 신고했고, 어제는 재판 선고 예정일이었습니다. 가해자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 스토킹, 불법촬영, 주변인에 의한 2차 피해에도 불구하고, 고인은 이곳, 자신의 일터에서, 일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고인은 마지막까지 일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기를 내야 했을지 생각해봅니다. 저는 끝까지 싸운 고인의 용기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일상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불법 촬영과 살인이 두려워서 화장실을 가지 않고, 성폭력이 두려워서 밤길을 돌아다닐 수 없는, 그런 사회에서 여성이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일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러한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두려움으로만 채워서는 안 되기에 애도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이곳 이 자리에서 우리가 연대의 목소리로 추모의 목소리로 힘을 다시 채우고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더는 한 명도 잃을 수 없다. 외국에서도 많이 사용했던 이 말을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몇 번째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이 잃을 수 없다는 말이 무력하게 들리지 않으려면 정말 잃을 수 없다는 이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그러려면 더욱 힘을 모으고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기자들이 가해자에게 왜 죽였냐 왜 스토킹했냐라고 묻는 장면들이 보도가 되었는데 가해자의 관점으로 범행 서사를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피해자의 관점으로 여성들의 관점으로 스토킹이란 무엇인지 직장 내 괴롭힘이란 무엇이고 불법 촬영이란 무엇이고 여성 살해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권리가 있는지를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크게 소리 높여 외치고 싶습니다.
함께 싸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성노동자의 ‘일상을 살아갈 권리’
이현경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 조합원은 고인과 직장동료였다고 밝히면서 함께 일했던 동료로서 느끼는 슬픔, 서울교통공사의 면피성 대응에서 느끼는 분노, 최소한의 안전망인 2인 1조 도입에 대한 책임 있는 약속을 요구하며 발언 이어가셨습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싸울 동료, 최선의 안전조치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말하는 슬프고 힘 있는 발언 일부 공유합니다.
고인에게 이 공간이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고인에게는 출근한 공간이 스토킹으로부터 안전한 곳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하는 곳에는 동료들이 있고, 지나가는 승객들이 있어서 혼자서 두려움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지 않았을까요. 그런 일터에 출근해서 고인이 생을 마감했습니다. 성폭력 가해자가 아무리 피해자를 죽일 의도를 가지고 갖은 수단을 쓰더라도, 취객이 직원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더라도, 지하철에 불이 나거나 물이 차더라도 노동자가 죽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노동자가 다치지 않고 죽지 않도록 공사는, 서울시는, 정부는 대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10년 전부터 말했습니다. 2인 1조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비극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교통공사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말씀드리기조차 민망합니다. 직장 내 성폭력 없는, 여성들에게 안전한 일터가 필요하다는 요구안을 제시했습니다. 삭제했습니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우려된다고 합니다. 도대체 2차 가해가 뭔지, 2차 피해가 뭔지 알고 있는 것입니까? 본사는 젠더갈등을 유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여성노동자가 안전한 일자리를 만들자는 주장이 왜 젠더갈등입니까? 어떤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나요? 공사 관리자가 언론과 인터뷰했습니다. 이 죽음은 2인 1조와 아무 관계가 없다. 아닙니다. 2인 1조로 근무했다면 가해자의 공격에 함께 대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서울시장이 언론에 발표했습니다. 2인 1조 도입하겠다고 합니다. 반가워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알맹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2인 1조 도입에 필요한 인원 확충에 대한 언급은 어떤 언론 기사에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번지르르한 언론 플레이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함께 일할 동료입니다. 최선의 안전조치, 최소한의 안전조치, 함께 일할 동료가 필요합니다.
젠더폭력은 구조적 성차별의 결과,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해결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안태진 보건의료노조 정책부장은 ‘피해자는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라고 말하며 비합리적 이유로 구속영장 기각한 재판부, ‘여성노동자가 일하다 죽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 만들지 않은 서울교통공사, ‘여성혐오 범죄 아니’라고 일관하는 여가부와 여가부폐지 추진하는 정부 모두의 책임이라며 정확한 현실 진단에 따른 해결책을 촉구했습니다. 아래는 발언 일부입니다.
여성노동자가 야근을 하다가 직장 동료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350차례가 넘는 스토킹 피해가 있었고 피해자는 이에 경찰에 신고하고 재판을 견뎠습니다. 피해자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망했습니다. 판사는 구속영장을 기각시켰습니다. 가해자가 회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영장 기각에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350차례나 스토킹을 저지른 사람이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없습니까 회계사 자격증이 있으면 추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습니까
가해자가 구속되었다면 피해자는 살아있을 것입니다. 비합리적인 이유로 영장 신청을 기각한 판사의 책임입니다. 오늘 보도된 바에 따르면 가해자는 직위 해제됐으나 불광역에서 서울교통공사 내 접속망에 접근할 수 있었고 피해자의 근무 시간을 파악했다고 합니다. 스토킹과 불법촬영으로 직위 해제된 직원이 내부망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시스템의 결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입니다.
고인은 야간에 혼자 순찰을 하다 사망했습니다. 인력 감축 추진하고 2인 1조 도입하지 않은 서울교통공사의 책임입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의 성범죄 가해자의 94% 이상이 남성이고 강력범죄 가해자의 98% 이상이 남성이고 피해자의 85%이상이 여성입니다. 이래도 여성폭력의 문제가 아닙니까 잘못된 현실 인식과 진단은 잘못된 해결책을 가져옵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면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피해자는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정부와 교통공사는 피해자이자 여성 노동자인 고인을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해당 센터와 서울교통공사, 서울시 김현숙 여가부장관과 윤석열 정부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떠한 노력을 해도 고인은 살아 돌아올 수 없겠지만 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야 합니다.
여성현실연구소 권김현영 소장님은 지금 정치가 해야할 역할은 “문제가 없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것에 있다고 발언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나눠 주신 이야기 중 일부를 공유합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올해 6월에 법무부 장관 취임했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얘기가 스토킹 범죄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징역형을 구형 받은 스토킹 범죄자는 전자발찌를 채우겠다고 얘기했었죠. 그런데 이 가해자는 재판 하루 전날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의미가 없는 조치였겠죠. 그리고 6월 이후 지금까지 스토킹 피해자의 권리를 위한 어떠한 조치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다 아시겠지만 이 정부는 여가부 폐지를 외치고 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피해자를 위한 권리 보장 법무부가 할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결과 중 하나가 오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현실입니다.
반의사 불벌죄 폐지를 국힘에서 얘기하고 있더군요. 피해자는 너무나 가해자가 처벌받기를 원했습니다. 지금의 이 사건과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예요. 왜 상관없는 얘기를 지금 하고 있죠? 문제를 해결하라고요. 정말 정치권에 얘기하고 싶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라고요.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그런 얘기를 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일정이 정말 너무 많았는데 여기 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스토킹 범죄는 수사기관에서, 재판부에서 계속 ‘그거 별거 아니야’라고 하는 방식으로 20년 동안 만들어지지 못했던 범죄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만들어졌는데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이 법에 어떠한 종류의 보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여성들은 거리에서 “여성에게 국가가 있냐”라고 외쳤습니다. 국가가 있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왔죠. 근데 정말정말 없네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집회 마무리 후 활동가들은 신당역 추모의 벽 앞에서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벽면을 채운 수 많은 포스트잇 중 “세상은 그대로이지만 우리가 바뀌었습니다.”라는 문구에 유독 눈길이 오래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추모 행동들을 보면서 두려움뿐 아니라 바뀐 우리가 말하는 ‘일상의 권리’가 더욱 선명하고 단단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도 바뀐 우리의 목소리의 더욱 힘을 싣는 활동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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