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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이슈대응 집담회> ‘우울증’이 덫이 되지 않으려면 : 우울증 갤러리 함께 이야기하며 연대의 그물망 짜기

지난 4월 16일 10대 여성이 강남의 한 건물에서 스스로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고인이 우울증 갤러리에서 활동하며 강간, 성매매 피해를 입은 배경이 있었으며, 우울증 갤러리 내에서 미성년자 여성들을 대상으로 개인/집단 성인 남성들의 각종 성범죄가 번번히 이루어져 왔다는 고발이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진화된 N번방” “제2의 N번방”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습니다. 

 

우울증 갤러리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마음 깊이 고민하고 슬퍼하는 우리는 무엇을 함께 이야기해야할까요?  고립되어 있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10-20대 여성들이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를 찾아갔기 때문에 폭력에 노출됐다는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 사안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지난 6월 14일, 이슈대응 집담회 자리를 열게 되었습니다. 

 

평일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40명이 넘는 분들이 이 자리에 참여하여 이 사안을 이해할 언어를 찾고, 어떻게하면 서로 '연대의 그물망'이 되어 줄 수 있을지 깊이있게 모색하는 자리였습니다. 

 

 

발제 1_우울증 갤러리와 강간문화

 

우울증 = 성적 취약성? 문제는 강간문화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김신아 활동가는 언론이 우울증 갤러리를 설명할 때 아동 청소년의 우울증이라는 취약성이 어떻게 성폭력과 성착취 등 성범죄에 이용되었는지 ‘그루밍 성폭력’으로서 다루고 있다면서 피해자의 불안정한 가정환경, 폭력피해를 우울증 갤러리 유입배경으로 설명하고 피해자의 장애를 강조하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 보호해야하는 집단의 취약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닐지 질문하며 발제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청소년의 우울증이 취약성의 조건이 되었던 것은 바로 온라인 커뮤니티의 남성문화, 더 정확히는 여성의 성을 통해 남성성을 확인하고, 여성에 대한 강간이나 폭력 통제를 부추기는 강간문화에 있다고 짚어주셨습니다. 우울증 갤러리 뿐 아니라 많은 남초 커뮤니티의 남성 유저들은 우울증을 가진 여성에 대한 특정한 상 (‘남성에게 의존적이고 성적으로 문란하고 쉽게 자준다’)을 만들고, 유통하며, 여성들과의 통제적이고 폭력적인 성관계 경험을 과장/자랑하고 이에 대한 후기를 갤러리에 공공연하게 올리는 문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김신아 활동가는 “글을 쓰고 댓글을 달고 경험과 후기를 공유하면서 우울증을 가진 여성들을 “성적으로 이용해도 괜찮은 문란한 존재”로 만드는 문화를 이야기하지 않고, 피해자의 ‘심리 정서적 취약성’만을 이야기할 때 권력관계와 강간문화는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10대 여성들의 피해 경험들, 강간죄로 판단할 수 있을까?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는 사회적 공분과 대응을 촉발해왔고, 제도적인 성과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2020년 의제강간죄 연령 상향,2021년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이 통과된 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폭행 협박을 기준으로한 강간죄가 1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현장에서의 마주한 다양한 사례들을 나눠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아동 청소년의 경우 명시적인 협박, 물리적인 폭행이 없이 피해자의 저항이 억압되는 사례가 성인에 비해 더 많다는 것이 여러 통계를 통해 확인되고 있고, 이는 법적해결을 어렵게 하는 큰 장벽이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주셨습니다. 청소년의 폭행 협박 없는 피해 현실을 법에서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의제강간죄와 아청법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한 경우 처벌하는”조항을, 업무상위력에 의한 간음죄 그리고 대법원 판결등에서 “특별히 보호되어야하는 대상”으로 고려되면서 엄격한 폭행 협박 없이도 성폭력으로 처벌할 수 있는 여러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동청소년이 폭행 협박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특히 청소년의 제한된 사회적 권리, 주거 상황, 지지관계나 자원의 부족으로 성인에게 의존하거나 불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거나, 협력적으로 행동한 경우 성폭력 피해가 축소되거나 인정되기 어려워집니다. ”피해자가 협력적이거나 자발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성적 자기결정권이 행사된 것으로 보고 성폭력 피해를 부정하는 판결의 태도는 청소년 피해자의 무력함, 무능함을 강조하는 사회적 시선과 연관되어 있다”면서 현재의 강간죄의 근본적인 한계와 이에 맞춰진 사회적 인식의 문제를 짚어주셨습니다. 

 

 

발제 2_온라인 기반 성착취 대응하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신성연이 활동가는 방심위가 경찰이 요청한 우울증 갤러리 임시 폐쇄 조치 요청에 대한 심의에서 “과잉규제 우려“로 인해 “자율규제 강화”를 의결하였는데 이 같은 결정은 사실상 효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적일뿐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 대한 부족한 이해를 보여주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온라인 공간은 단지 성착취 피해가 발생한 플랫폼이 아니며 피해가 구성되는 요소라는 점에서 이 공간의 “역사, 특징, 구성원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대응계획이 수립되어야한다고 짚어주셨습니다. 디시인사이드는 우울에 관한 말하기가 나타나는 여러 온라인 공간 가운데서도 괴로움과 고통에 대한 표현방식과 정도를 제재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고 이는 유저들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신건강의 취약함을 드러낸 여성은 온라인 상에서 그루밍의 위험에 처한다는 사실은 우울감을 표현할 자유, 익명의 공간을 사용할 자유가 젠더화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 

 

그러면서 이 사안에서 무엇을 논의해야하는지 제안해주셨습니다. 우선 우울증 갤러리 사안을 이야기할 때 ‘우울증갤러리’ 자체를 우범지대화하는 것은 성착취를 가능하게 만드는 젠더권력을 겨냥하지 못할 뿐 아니라 피해를 증언하는 목소리 또한 타자화할 가능성이 있기에 주의해야 하고, 우울증 갤러리가 위안과 위험이 엉켜 있는 공간임을 유의하여 봐야한다고 제안해주셨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곳의 효능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는지 맥락을 살피고, 우울증 갤러리와 같은 공간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피해로 변질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신 부분이 저에게는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발제3_10대 여성의 온라인 친밀성과 위험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호연님은 10대 여성의 온라인 친밀성과 위험을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한 3가지 축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첫번째는 취약한 조건에 놓여있는 이들에 대한 이분법적 시선과의 거리두기 입니다. 대개 불쌍하거나 문제적이라는 시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축은 청소년들의 경제사회적 조건을 살피는 것입니다. 호연님의 발제에서 원가족에서의 지원이 어렵거나, 물질적인 빈곤 상황에 놓여있기도 한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주요하게 등장하기도 하고, 실제로 청소년의 사회적 위치는 부모의 자원여부와 상관없이 빈곤하다고 생각한다며 청소년들이 놓인 위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세번째는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하는 방식입니다. 청소년의 성적 행위성을 이야기하면 한국사회에서는 그 자체로 낙인찍고 비난하기에 청소년 섹슈얼리티 자체를 말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다고 지적해주셨습니다.

 

이날의 발제는 호연님이 2022년도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활동가들과 함께 온오프스터디를 토대로 진행한 인터뷰 분석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습니다. 청소년과 만나고 성교육을 할때 이들의 온라인 세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공동의 어려움 속에서 머리를 맞대어 공부하고 분석한 결과물이었습니다. 해당 연구는 우울증 갤러리 사안을 이해하는데에도 중요한 참고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우울증 갤러리 피해자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위험 알지만 기댈 곳 없어” 호연님은 이 말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제안해주셨습니다. “위험을 아는데 왜 위험을 피하는 방식으로 실천되지 않는지? 여기서 ‘안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즉 위험에 대한 감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은 친밀성의 관계에 대한 부재와 기대가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데 취약한 상황에 놓인 청소년이 위험을 알지만 온라인에서 친밀성의 관계를 맺고자 하는 마음은 어떤 것인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이어져 있다면 친밀성의 관계는 어떤 차이와 연결성이 있는지?” 

 

서두에 제안해주신 3가지 축을 중심으로 새롭게 제기된 질문들은 우울증 갤러리 사안을 이해할 때 취약성을 강조하고, 그럼으로써 보호를 요구하게 되는 언어가 아니라 폭력의 구조의 타겟이 될 수 있는 이들의 맥락을 경청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인상깊고 의미있었습니다. 발제해주신 연구 내용 모두 공유하고 싶지만 지면의 한계상 성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눠주시며 어떤 말걸기가 유효할지 제안해주신 내용을 인용하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추후 업로드될 자료집을 참고해주세요) 

 

“성교육 현장에서 위험 상황에 대한 사례 공유와 대처 방안에 대해 아무리 잘 설명하더라도 이것이 뭔가를 계속 금지하는 방식 자유의 범위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내용의 교육을 계속 주저하게 되었다. 그러나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이 높지 않다고 했을 때 사실은 정확하게 위험한 상황이 구체적으로 무엇일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필요한데 그렇다면 그걸 겪은 청소년의 서사를 가져와서 다른 청소년에게 흐르게 만드는 방식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왜냐면 그 사람의 위치에서 보는 위험이 이들에게 가장 설득력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교육 현장에서 내가 많이 하는 방법은 위험한 상황에 대한 다른 청소년의 경험을 잘 듣고 그것을 잘 정리해서 누군가에로 잘 전달하는 것이다” 

 

 

발제 4_여성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책임

이민아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님은 여성의 우울, 정신적 고통에 대한 지배적 담론으로서 여성의 본질적인 특성,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여성의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사회적 원인을 성별화된 생애과정과 차별적 노출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청년여성의 현실과 정신건강은 기대와 현실 간의 간극, 젠더폭력의 발생과 영향력 속에서 바라보아야한다는 점도 짚어주셨습니다. 

 

저는 특히 2015년 이후부터 젠더폭력, 여성살해 사건이 가시화되면서 청년여성들이 성폭력과 성차별에 대한 집단적 이해도를 높여왔지만 동시에 성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간접 노출이 불안과 분노 등의 감정을 양산하고 이는 성별화된 두려움을 만들어왔다는 점을 지적해주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청년 여성들이 목도하는 사회적 현실은 청년 여성들의 정신적 고통의 원인이며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촉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점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했습니다.

 

발제 5_우울증/트라우마 경험과 회복의 조건 

최현정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 이사님은 ‘타겟’이 된 ‘우울증 걸린 여자’들이 무엇을 겪었는지 심리학적 관점에서 발제해주셨습니다.

우선 한국사회는 아동기 학대나 아동기 역경, 가정 폭력, 젠더 폭력을 경험하면서 자란 사람에게 무심하며, 특히 사회적 소수자-여성, 아동, 청소년, 성소수자, 경제 자원이 부족한 사람의 심리적 후유증에 대한 사회구조적 이해가 부족하고, 자원이 부족한 사람이 심리사회적 자원에 접근할 방안이 여전히 턱없이 모자라다는 점을 지적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복합 트라우마 후 스트레스와 경계성 성격장애라는 범주가 이 사안을 이해하는데 더 적절한 관점으로 제안해주셨습니다. 위 개념과 후유증의 양상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이들 곁에 서있는 사람으로서 이들의 삶의 맥락에 대한 제대로된 이해를 촉구하고, 여성들의 경험을 누락시킨 남성중심적인 정신건강 분야의 낙인에 대해서도 지적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요컨대, 우울증 갤러리는 열악하고 폭력적인 삶의 경험에 대한 사회적 안정의 부재를 드러내는 징후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는 사람에 대한 낙인이 현저하며, 이들이 살아갈 방식이 제공되지 않았다는사실을 드러내는 징후이다. 아동기 역경과 학대를 경험하고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를 인정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편견없이 자세히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해주시면서 발제 마무리하셨습니다.  

 

‘우울증’ ‘취약성’ ‘성폭력’의 연결지점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세 키워드는 줄곧 저에게 가슴이 철렁하는 현실속에 단단히 얽혀서 존재해왔다는 것을 기획과정에서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습니다.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여성/소수자에 대한 턱없이 낮은 사회적 이해도, 우울증을 앓는 여성에 대한 성애화와 혐오를 통해 작동하는 강간문화, 청년 여성들의 열망과 현실의 극심한 낙차에 따른 높은 수준의 긴장 등 토론회에서 제시된 언어들은 세 키워드를 해체하는 작업으로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공간이 단순히 매개가 아니라 ‘어떤 남성’을 만들어내는 ‘적극적 행위자’로 등장한다는 것, 때문에 단순히 그 온라인 공간을 폐쇄하거나 폐쇄하지 않는 선택만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과 청소년 섹슈얼리티에 대한 담론이 흐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앞으로의 ‘연대망’ 구축의 하나의 구체적 방향으로서 저에게 남게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오신 많은 분들에게도 이 자리가 서로가 서로의 연대망이 되기 위한 하나의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는 자리가 되었기를 바래봅니다. 

 

*해당 토론회의 자료집은 추후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이 글은 성문화운동팀 동은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