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7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춤추는 오름길> 리뷰
'이제 그만'과 '한 번만 더' 사이에서
갈 때마다 망설여지는 곳이 있다. 매번 이유는 각양각색이었다. 조심스러워서, 대면하기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서, 민폐가 될까 봐, 이제 그만 가도 되겠다 싶어서,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서,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싶어서. 그래도 매번 그날이 오면 또 발걸음이 그곳을 향하고 있다. 어느 틈에 벌써 그곳에 닿아 있다. 그 점이 가장 신기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처음부터 안 가려고 작정을 했다. 이미 너무 여러 번 가봤고(총 7회 중에 5회는 가봤나?) 지난번에도 대기자 명단이 너무 길었다. 말하자면 신청했는데도 잘린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여러 번 가봤으니까 이제 그만 가도 되겠지, 뭐 다른 때랑 비슷하지 않을까 같은 생각들. 하지만 나는 결국 그곳에 가 있었다. 왜? 도대체 왜.
태초에 말하기가 있었다
올해의 그곳은 '춤추는 오름길'이었다. 작년에는 'Speakout in Chorus'였고 재작년에는 '언중유희: 이리 오너라 씹고 놀자'였다. 4회는 '그녀들, 광장에서 별별 말하다'였고 3회는 '그녀들의 소란, 공감의 세상을 열다', 2회는 '그녀들의 목소리 세상을 울리다'였다. 그리고 이 세상의 시작은 '들어라! 세상아 나는 말한다!'였다.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그곳은 어디인지 아직 오락가락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주최하는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에 관한 이야기다. 올해로 벌써 일곱 번째가 되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세간에서 부르는 성폭력 피해자라는 이름보다 생존자라는 이름을 더 좋아한다. 그 끈질긴 싸움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걸맞은 이름이다. 말하기 참여자와 듣기 참여자가 있어 말하기 참여자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듣기 참여자는 그 경험에 지지와 공감을 보낸다.
ⓒ한국성폭력상담소
1회부터 7회까지 말하기대회는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나 역시 그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 그게 안 되면 참여자, 그게 안 되면 산 증인이라고라도 주장하고 싶다.
1, 2회 때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날것 그대로인 자신의 얘기를 했고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즉석 말하기라는 코너도 있어서 말하기 참여자에게 한껏 영감을 받은 듣기 참여자들이 앞다투어 다시 자기 경험을 말하곤 했다. 그 기묘한 릴레이가 매우 아름답고 벅차면서도 서글펐던 기억이 난다.
그 후 4회 때는 대학교 운동장이라는 엄청난 광장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여 말하기 릴레이를 펼쳤고, 5회부터는 말하기와 공연이 결합된 형태로 점차 진화해 왔다.
올해 춤추는 오름길에는 '합창'이란 요소가 추가되었다. (<남자의 자격>보다 훨씬 먼저! 1년 전부터 준비했다고 한다.) 홍대에서 활동하는 인디 싱어송라이터 시와, 흐른, 소히가 각각의 합창곡을 작곡해 주었다. 으흐흐- 이 멋진 언니들에 대한 팬심이 있는데 적절하게 표현할 길이 없어 일단 패스-
오르락내리락 춤추는 오름길
앞부분에 말하기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간단히 하고 독창을 했는데, 첫 노래를 들었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왜 그랬더라, 음음- 말하기대회의 막이 오른 것이 벅차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지켜주고 싶어서>라는 곡을 작사하신 참여자는 본인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무리라 다른 참여자 네 분이 대신 불러주셨다. 그래, 그분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울컥했을 수도 있다. 아픈 누군가를 대신하여 힘껏 노래를 불러주는 마음, 그녀를 위로하는 마음, 그녀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마음, 그녀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마음. 그 넷의 중창이 얼마나 장엄하고도 든든했는지, 마지막에 17명이 부른 합창보다도 더 압도적인 느낌이었다.
또 다른 말하기 참여자는 엄마에게 보내는 노래를 불렀다.
" 엄마에게 지금까지 못한 말이 노래에 담을래엄마한테 온전히 나를 드러내고 싶어언젠가는 말하고 싶었어아니 말해야 될 것 같았어아무 일 없던 것처럼 숨기고 싶지는 않아"
그분이 이 노래를 부르실 때 나도 그렇지만 앞뒤좌우에서 진짜 많이들 울었다. 누구나 엄마에게 숨기고 있는 비밀 하나는 있잖아. 그것도 꽤나 무거운 비밀. 말하기 두렵지만 또 다 털어놓고 나 자신, 있는 그대로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잖아. 노래 부르신 분이 그 마음을 정말 잘 표현하신 것 같아서 짠하고 눈물겨운 마음.
그러고 나서 바로 다른 참여자가 어머니를 찍은 영상이 나왔는데 그 어머니도 정말 많은 박수를 받았다. 딸이 말하기대회에 서는 것을 지지하고 어서 상처를 치유하고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말씀. 또 상처는 지울 수 있지만 기억은 삶의 일부니까 지울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
이번 말하기대회에서 어머니를 찍은 영상도 나오고 어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해 친척들이 전부 대회에 온 참여자도 있었는데, 나는 오지랖 넓게도 <엄마>라는 노래를 부르신 참여자의 마음이 조금 걱정됐다. 그분의 마음은 내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어쩐지.
마지막 세 곡은 합창으로 불렀다. 그중에서도 <교수 K>라는 노래는 진짜 널리 알려야 하는 노래인데 "K 그는 능력 있는 교수 연구 논문도 해마다 수십편 K 그는 만능 엔터테이너 술자리도 기본이 4차 K 그는 귀엣말을 하고 너는 오늘 나와 함께하자" 같은 가사로 되어 있다. 현실과 가사와 선율이 120퍼센트 일치하는 노래라 진짜 널리 알리고 싶다-_-;
ⓒ한국성폭력상담소
말하기 참여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참여한 코러스를 포함해 17명이 합창을 부를 때는 정말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기분이었다. 뭐랄까, 정말 힘 실어주고 힘 받는 느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느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생존자들이 함께하고 발자국을 지우기는커녕 부러 꾹꾹 눌러 남기고 나무에 리본을 매달아 표지를 남겼기 때문이리라. 마지막의 합창은 정상에 오른 무한한 기쁨이자 함께 가는 길에 대한 굳은 약속이었다.
뻔뻔하고 염치 없지만 조금 더 욕심 부려도 된다면
1, 2회 때의 정돈되지 않은 감정의 흘러넘침과 6, 7회 때의 차분하고 정리된 말하기와 노래. 그 차이는 무엇일까. 일단 말하기 참여자들이 사전 워크숍을 통해 많은 것들을 쏟아내고 정리한 다음에 공연이 이루어졌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보이스 워크숍, 노래 만들기, 몸으로 표현하기, 전신자화상 그리기 등으로 참여자들은 지난 여름을 누구보다도 뜨겁게 보냈으리라. 그런 과정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고 두려움을 극복하여 감동을 만들어낸 말하기 참여자들에게 듣기 참여자들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낼 수밖에.
하지만 듣기 참여자로서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 정상의 감동이 크면 클수록 그들이 산에 오르는 과정을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니까. 특히 아직 상처를 건드리기가 두려운 피해자라면, 그런 피해자가 듣기 참여자로 앉아 있다면, 다음에 말하기 참여자로 서고 싶은 듣기 참여자라면, 지금의 말하기 참여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무대에 오르게 됐는지 조금 더 알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 같다.
어제 말하기 참여자 중 한 분이 "story? 여기서는 이런 걸 궁금해하는 분은 없으시겠죠?"라고 말씀하셨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내막을 알고 싶은 사람이 없으리라는 말은 지당한 말씀이지만, 가끔은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공감하고 싶다, 그녀가 서 있는 정확한 지점에서 공감하고 싶다, 그녀가 힘들었던 부분이 무엇인지, 나와 같은지 다른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는지, 조금 더 알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실은 나와 같은 듣기 참여자도 말하기 참여자와 통하고 싶은 것이다, 진심으로.
말하기 참여자들은 이미 사전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내면의 두려움과 상처가 많이 밖으로 나왔을 테고, 그래서 구체적인 서사나 구체적인 감정을 말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이미 충분히 소화하고 나를 떠나간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정리하여 떠나 보내는 중이기 때문에.
하지만 기승전결에서 '기승전'은 빼고 '결'만 보는 듣기 참여자의 입장에서 말하기의 간결한 내용, 노래로 파악해야 하는 이야기 등은 다
소 애매모호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리하여 듣기 참여자는 '참여자'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이 되어버린 느낌도 있다.
소 애매모호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리하여 듣기 참여자는 '참여자'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이 되어버린 느낌도 있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함께 몸과 마음을 풀고 공감과 지지의 말을 건네고 대화를 주고받고 눈물이 날 때 손수건을 건네는 사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하기 참여자의 감동적인 무대에 박수를 보내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객석에서 박수 치는 관객의 역할 말고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면? 듣기 참여자의 역할에 대한 상상력이 마구마구 솟구치는, 그러나 쓸 만한 아이디어는 별로 없는 뒷감상이었다.
이 리본이 보이나요?
8회 말하기대회는 어떻게 구성될까? 무엇이 달라질까? 말하기 참여자와 듣기 참여자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생겨날까? 나는, 나는, 과연, 어떻게 될까? 내년 말하기대회에도 그곳에 있을까? 올해도 신청 인원이 300명을 훌쩍 넘었다고 하는데 내년에도 신청하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실은 매번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이 감동을 대신 느껴줬으면, 누군가 발길을 이쪽으로 돌려 이곳을 발견해 줬으면, 우리의 발자국을 따라왔으면, 제발.
ⓒ한국성폭력상담소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7회 공연이 이루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간 것에 비해 생존자말하기대회에 대한 리뷰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너무 넓어서 공허한 인터넷 세상에 노란 리본을 하나 묶는 기분으로 이 글을 쓴다. 누군가 길을 잃었을 때 이 글을 보고 제대로 찾아와주길 기대하면서. 그곳을 간절히 원하는 당신이 찾아와 준다면, 그곳에 가주기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찾아가지 않아도 괜찮다. 물론 이렇게 떠들어놓고 내년 이맘때가 되면 염치불구 다시 한 번 신청해 버릴지도 모르겠지만 :)
※ 본 리뷰는 블로거 '당고' 님의 포스팅을 편집·수정한 것입니다. (원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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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사진::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_사진::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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