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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아주 특별한 말하기: 온라인 스피크 아웃

함께 행복하고 싶어서 찾아나선 길, 나의 말하기_ 한새


 
<아주 특별한 말하기: 성폭력 생존자 온라인 스피크 아웃> ①

함께 행복하고 싶어서 찾아나선 길, 나의 말하기_ 한새



한국성폭력상담소가 ‘한새’라는 별칭으로 살아가는 그녀와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로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6년이 되었다. 비가 많이 내리던 여름날 오후에 상담소 지하에 있는 눅눅한 방에서 그녀를 만났다. 한새는 현재 특별히 공을 많이 들여 키워낸 ‘예비’ 성교육 강사인 아들과 알콩달콩 살면서, 열혈 성교육 강사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생존자말하기대회 홍보대사 역할을 자청하고 있기도 하다. 그녀와의 멋진 말하기,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일시/장소: 2011년 7월 13일 @ 상담소
인터뷰어: 이윤상


내 경험의 키워드_“회복탄력성”

비오는 날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오랜만에 한새 얼굴 보는 거 같아요.


한새: 오늘 인터뷰 오면서 내 피해경험과 관련된 키워드를 생각해봤는데, “회복탄력성” 혹은 “탄성”, 이런 단어가 떠올랐어요. 

좀 어려운 단어 같은데, 어떤 뜻이죠?


한새: 내 경우도 그랬던 거 같고, 이런 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빨리 극복할 수 있는  힘이랄까. 나는 탄력이 강한 편인 것 같고, 그래서 회복도 그만큼 빨랐던 거 같고, 이런 나의 힘에 대한 고마움이 있어요. 밑바닥에서 다시 치고 올라오는 힘 같은 것이죠.

한새에게 특별히 회복탄력성이 더 컸다고 보시나요?

한새: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내가 나의 상태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거죠. 이것을 딛고 일어서고, 또 교육적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내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하는 거죠. 저는 “아는 만큼 더 건강합니다”라는 문장을 정말 좋아하는데, ‘성’, ‘폭력’, ‘차이’, ‘차별’…… 이런 것을 내가 전혀 몰랐을 때와 알고 있을 때는 분명히 차이가 있어요. 탄성의 차이죠. 알면 알수록 더 건강해지고 회복할 수 있는 탄성도 생기는 것 같고. 세상이나 자신의 경험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지죠. 물론 많이 알수록 힘들어지기도 하지만, 더 건강해지는 노력을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마치 예방주사처럼. 나는 나쁜 얘기는 덜 듣고,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좋은 생각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와의 만남, 그 고마운 인연

한국성폭력상담소하고는 언제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한새: 6년 전이던가…… 성교육 강사로 강의를 한 지 3년쯤 됐을 때였어요. 그때는 초보강사는 아니고 뭔가를 알기는 아는데 아직 어설프고, 그래서 열심히 공부를 하던 시기였죠.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도 즐겨찾기에 넣어놓고 매일 방문하던 곳이었어요. 그러다가 상담소에서 하는 제3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광고를 보았죠. 그때 혜화동에서 행사를 했는데 제가 듣기 참여자로 신청해서 참여했어요. 그 무대를 보고 엄청 울었어요. 무대는 충격이기도 했고, 이런 자리가 있다는 게 너무 고마웠어요. 이 단체도 너무 고마웠어요. 늘 오고 싶은 단체였어요. 3회 무대를 보면서 나도 저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4회는 열린 야외 공간에서 하는 것으로 기획되어 많이 부담스럽더라구요. 그래서 4회 때는 자원활동을 했어요. 행사 당일 날 길거리 발바닥 화살표 붙이는 자원봉사, 그런 거 했어요. 그리고 5회 무대에 서게 된 것이죠. 2007년.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말하기대회는 매해 빠지지 않고 쭉 듣기 참여자로 함께 했어요.  


나는 말하기대회 홍보대사! 

그럼 2년을 준비해서 무대에 선 거네요. 무대에 꼭 서보고 싶었다고 했는데, 무엇이 한새를 그 무대로이끌었던 건가요?


한새: 3회 무대를 보면서, 거기에 선 사람들이 자신감에 차 있고, 당당해보였어요. 함께 하는 이들이 큰 소리로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했을 때, 그 말이 정말 큰 울림이 있었어요. 바로 나한테 소리 같았고…… 나도 저렇게 극복한 사람의 대열에 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남들이 말 못한 그런 것들을 그분들은 말을 한 것이 부럽고 존경스러워서 나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2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서 실제로 무대에 섰는데, 처음 기대했던 그런 느낌이었나요? 
 
한새: 물론 100%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가고 있어요. 3회 때 무대에 섰던 분을 작은 말하기에서 직접 만났어요. 만나서 무대에서 다 말하지 못하는 삶의 세세한 얘기를 나누면서 그 분도 여러 가지 기복을 겪고 있다는 것을, 또 기복을 겪지만 잘 극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나도 기복이 있지만 기복의 폭이 점차 줄어들고 있죠. 그게 탄성이죠. 힘든 얘기를 들어주는 상담소가 있다는 게 너무 고맙고, 이게 ‘나만’ 겪은 것이 아니라 ‘나도’ 겪은 것이라는 사실을 여기 와서 알게 된 것이 너무 소중해요. 그걸 알게 되면서 나 자신을, 내 경험을, 그리고 세상을 더 너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어요. 바로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 상담소, 말하기 대회가 아주 신선하고 강한 충격이었던 거죠. 저는 강의에서 작은말하기, 큰 말하기에 대해서 꼭 얘기해요. 얘기하면 그런 것이 있냐며 다들 놀래요. 내가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니깐요.

 
한새를 말하기의 홍보대사로 위촉합니다!(웃음) 홍보의 포인트가 뭐예요? 주로 무슨 얘기를 전달하나요?

한새: 일단 이런 대회가 있다는 것부터. 그리고 여기에 참여해서 사람들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있으니 그걸 꼭 들어보시라고 얘기해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 위해 꼭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거든요. 물론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자리를 알리고 싶고요. 이런 자리가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 알려주고, 또 이런 단체가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어요. 사실 책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기회죠. 

인식개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사람들의 어떤 생각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세요?

한새: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 강의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돼요. 강의 들을 때는 다 수긍하는 것 같지만 질문을 받아보면 그런 생각들이 드러나죠. 유혹한거 아닌지, 한 번 당하고 나면 또 당한다던데 피해자가 처신을 잘못한 게 아닌지, 가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사건 얘기하다보면 이런 인식이 툭툭 튀어나와요. 그리고 피해자는 무력하고 수동적인 사람이라고 전제하는 거. 피해자 하면 자살, 결혼기피 이런 생각을 떠올리더라구요. 모든 사람들의 의식변화로 이런 피해자 후유증을 탈피시키고 싶어요. 



“생존자”의 힘


“생존자”라는 단어를 처음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한새: 말하기대회에서 처음에 그 단어를 봤을 때, 눈물이 났어요. 그 말이 정말 확 맞는거 같아요. 이렇게 말 한마디로 치유 효과가 있다니 이게 언어치료 효과인가봐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햇볕이 비추는 거 같아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잖아요. 주체적이고, 살아있고, 긍정적이고, 이 세상의 삶이 있고, 저 높이 있는 어떤 것…… 그런 느낌이예요. 처음에는 생존자가 너무 대단해 보였어요. 광채가 난다고 해야 하나……. 경험자? 이런 단어도 괜찮은거 같아요.

윤상: 전형적인 피해자 상에 대한 도전이죠. 말하기대회도 그런 취지로 여는 행사이고. ‘말 못한 채 숨기고 있지 않겠다’, ‘세상아 들어라’, 바로 이런 포스가 있는 거죠. 그런 의미를 잘 담고 있는 거 같아요. 




행복을 향한 걸음으로 시작한 나의 말하기

한새는 말하기대회, 작은 말하기, <버라이어티 생존 토크쇼(이하 버생쇼)> 출연까지 많은 작업을 했고, 성교육 강사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계시고, 또 이렇게 온라인 스피크아웃 제의에도 흔쾌히 응해주셨지요. 한새에게 이런 기운 많이 느껴져요. <버생쇼>라는 다큐 영화에 아들도 출연했던데, 그런 걸 보면 아들한테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나 가치를 알려주고 함께 공유하려고 노력하는 거 같아요. 바람직하지만 누구든지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한편 무척 교과서적인 삶이기도 하고 한편 진짜 멋지다, 이런 감탄사도 나오고. 이렇게 선택한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또 선택했지만 뜻대로 안 된 것도 있을 거 같은데.

한새: 전 호기심이 많아요. 호기심이 출발선이 되기는 했죠. 하지만 행복했다면 안 했겠죠. 난 너무 불행했고 너무 힘들었는데, 행복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죠. 너무 힘들고 불행했기 때문에 행복하고 싶어서 찾아나선 길이예요.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하면 어떻게 될까? 영화 찍고 나니까 점점 친구들이 많이 생기고, ‘동지’가 생기고, 의식있는 분들을 알게 되고, 나의 인식도 변화하고, 여러가지 시너지 효과가 나는 걸 느꼈어요. 이런 과정이 너무 고맙더라구요. 영화 제안이 왔을 때도, 처음에도 망설였죠. 그 때는 나에게 참 힘든 시기였어요. 이혼을 준비하는 시기였고, 삶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던 시기였어요. 영화 출연은 돌파구 같은 역할을 했어요. 


아들과의 말하기

한새: 사실 우리 아들한테 나는 공을 많이 들였어요. 아들이 6살 때 부모교육을 받으면서부터 아들 앞에서 배운 걸 복습했어요. 그 때부터 우리 아들은 의식고양이 된 거죠. 아들이 나한테 지적질을 하더라니깐요(웃음). 남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건강한 남자로 키워야지 하는 생각이 컸어요. 성평등 의식을 보여주고, 인권감수성을 키워주고…… 나의 분신같이 공들였어요. 나랑 대화가 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아들로 키우고 싶었어요.

그런 욕망은 한새의 성폭력 피해 경험과 관계가 있나요?

한새: 관계있죠. 또 그것뿐만 아니라 남편, 아버지와의 관계도 관련이 있어요. 남편한테 무시당하고 가정폭력 피해도 있었어요. 아버지한테도 무시를 당했죠. 아버지는 교육열이 대단했는데 내가 아버지가 바라는 만큼 제대로 못 하니깐 멸시하고 무시했어요. 성폭력 가해자도 남자잖아요? 그래서 내 아들 만큼은 건강한 남자로 키워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었어요. 

지금 아들의 모습에 만족하시겠네요^^

한새: 그럼요. 지금 고1인데, 아들이랑 같이 다니면 엄마랑 아들이 조잘조잘 얘기를 잘 하니깐 사람들이 쳐다봐요. 둘 사이 너무 좋아 보인다며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해요. 그러면 우리는 서로 “나 같은 아들 없다”, “나 같은 엄마 없다” 자랑하죠(웃음). 서로 성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고, 우리 아들이 즐겨보는 책이 <성교육의 이론과 실제>예요. 그 책이  재밌데요. 밑줄쳐가면서 외우다시피 하면서 절 가르쳐요. 우리 아들이 중간고사를 봤는데 내신에도 안 들어가는 기술/가정을 전교 1등을 했대요. 장래희망이 성교육 강사예요.

 
공을 들인 성과가 확실히 있네요.   

한새: 지금까지 보면 그래요. 저랑 대화가 잘 되고, 다른 사람과도 대화를 잘하고. 사실 우리 아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예요. 처음에 내 피해를 아들한테 얘기했을 때는 나한테 상처 주는 얘기 많이 했어요. 제가 정말 화도 많이 냈어요. 하지만 차차 엄마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점차 제 입장에 많이 공감하게 된 거 같아요. 처음에는 나한테 화를 내더니, 이제는 자기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설명해요. 이유를 들어보면 아들 행동이 이해가 가기도 해요. 그러면서 내가 강의를 어떻게 해야할 지 알게 되고요 (웃음) 

아들이 어떤 얘기를 했었나요?

한새: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아들은 그런 얘기를 듣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던 거 같아요.  “여자는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더라구요. 그때 정말 화가 많이 났어요. 내가 참고 가만히 있으면 다 조용할 텐데 하는 생각. 아들은 버겁기도 하고, 도와주지 못한 것도 화가 나고, 엄마가 불쌍하기도 하고, 본인도 화가 나고, 그러면서 나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무척 복잡한 심정이었던 거 같아요. 아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게 있잖아요. 여자는 수동적이고 참아야 하고……. 그런데 자기 엄마는 그런 모습이 아니고, 그런데서 느끼는 혼란이 있었던 거 같아요. 밖에서 배운 어머니상과 실제 모습이 다르니까. 그런 걸 얘기하면서 저도 아들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참…… 아무리 집에서 공들여 키워도 밖에 나가서 그렇게 듣고 배우니 답답해요. 

애들은 가정에서만 배우는 게 아니잖아요.. 학교문화, 친구들, 드라
마 등등…….

한새: 그러니깐요. 난 ‘문제있는 가정’이라는 말은 틀린 거 같아요. 가정에서 가르친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정말이지 그런 말이 너무 싫어요.

 
영화 찍은 건 아들이 중1 때였잖아요. 아들한테 피해 사실을 얘기한다는 것이 참 큰 결심을 필요로 했을 텐데?

한새: 영화 찍기 전에 큰말하기대회 나갈 때 얘기했어요. 그리고 영화 찍으면서 더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죠. 사실 아들은 공을 많이 들였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걸 잘 이해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사실 진짜 힘들었던 것은 부모님께 얘기하는 거였어요. 영화 찍고 나서 시사회에 부모님, 여동생과 제부, 남동생을 초대했어요. 사전에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그냥 내가 영화에 나왔으니 와서 보시라고만 했죠. 사실 5일 간 감금되었던 그 피해가 있던 당시에, 내가 5일 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우리 부모님은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고, 그냥 건강하게 돌아와서 고맙고 그걸로 됐다고만 하셨어요. 그리고 그 이후로 그 일에 대해서 한 번도 얘기를 안했죠. 가족들은 영화를 보면서 내 얘기를 처음 알게 된 거죠. 우리 딸 영화 나온다고 하니깐 가벼운 마음으로 오셨는데……. 시사회 끝나고 우리 아버지가 마이크 잡고 “우리 딸 대단하다. 왜 성교육 강사를 하는지 이제 알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가슴이 벅차더라구요. 사람들도 울고, 저도 울고. 
 




“나의 말하기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한새: 영화 찍고 나서 많이 얘기하게 된 거 같아요. 말하기 무대는 그 날 왔던 사람들만 보는 거지만 영화는 여러 번 상영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니깐요. 또 아들이 나오니깐 저한테 관심이 많이 쏠리기도 했어요.  

영화가 영향력이 있죠. 그래서 무서운 거기도 하고요. 영화, 말하기가 한새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한새: 죽기 전에 할 수 있어서 고맙죠. 하지만 영화 찍고 나서도 여전히 사람들한테 열심히 홍보를 안 해요. 강의에 가서도 내가 생존자로서 영화에 출연했다는 얘기는 별로 안했어요. 그러다가 2년 전에 서울시 교육청 강의 때 어떤 분의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우연하게 처음으로 얘기하게 되었어요. 영화제목에 관심이 있어 계속해서 질문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영화이야기와 세상에 관심 있고 꼭 보고 싶다는 말에 그만 말하고 말았지요.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말을 하고 싶다라구요(킥킥).
내가 얘기를 하면 긍정적인 파장이 있을 거라는 안정감이 있었어요. 얘기하고 나니깐 박수를 받기도 하고 지지받는 느낌도 있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불편해하는구나 하는 것도 느껴졌어요. ‘강사’가 얘기하는 거랑 ‘생존자’가 얘기하는 거는 다르잖아요. 나는 사람들이 나를 생존자가 아니라 강사로 봐주기를 바라는 거 같았어요. 생존자라고 얘기하면 괜시리 “나를 무서워하지 않을까,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두려움이 있는 거죠. 그런데 얼마 전에 서울시 교육청에서 교육재능인으로 선정되었다고 상장이 왔어요. (어머!) 영향력이 큰 사람으로 뽑혔다고요……. 너무 놀랬어요. 갑작스럽게 얘기하게 된 건데, 첫 번째 얘기한 거 치고는 결과가 좋은 거죠(웃음). 그때 이후로 힘들지만, 간간히 얘기하기 시작했어요. 교육청 강의나 여성단체 강의 같은 곳에서 한 여섯 번 정도 얘기한 것 같아요. 아주 가려서 조금만 한 거죠. 하지만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고 좀 더 적극적으로 얘기하려 해요. 죽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해야겠다, 말을 많이 해야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예전보다는 용기를 많이 내는 편이예요. 내가 지금까지 8년 간 강의를 해왔지만 내 강의를 들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앞으로 10~20년을 열심히 강의한다고 해도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 게 아니잖아요. 내가 그렇게 강의를 많이 했는데도 사람들이 아직도 안 바뀌었고……. 그러니 용기를 내어 더욱 열심히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이 나의 사명감이고 살아갈 이유이고, 내 경험이 헛되지 않는 길이라 생각해요.

한새는 사회적 사명감 강한 사람인 거 같아요. 

한새: 안 그랬는데 내가 점점 오지랖이 넓어지고 있는 거 같아요(웃음). 나는 경험이 있잖아요. 경험이 헛되지 않는 길, 극복한 사람으로서 할 일, 사명감이 생겼어요. 나한테도 꿈이 생기고 목표가 생긴 거죠, 살아갈 이유가 생긴 거고. 세상에 작은 영향이라도 미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한테 꼭 하고 싶은 말씀은?

한새: 큰말하기 무대에서 했던 말인데, 생존자들은 그런 경험을 겪으면 극복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구든 어려운 일을 극복하기도 하고 못하는 면도 있죠. 그런데 못한다고 계속 얘기하면 극복 못하는 것으로 규정되죠.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게 중요해요. 극복할 수 있고, 극복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힘없는 존재로 보면 볼수록 그렇게 나약하고 수동적인 존재가 돼요. 생존자에 대한 편견을 떨쳐버렸으면 좋겠어요.
저 또한 동성애에 관한 강의를 동성애자인 강사에게 직접 듣고 배우고 알아가면서 편견이 작아지고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거든요. 사람들이 혐오하는 동성애보다 성폭력피해자들은 조금 안타깝게 생각하데 나는 왜 말을 하지 않을까? 피해자인 동성애자들도 말을 하는데 나는 말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하면 더욱 더 빨리 변화되는 것을 본 저에게 큰 힘이 되었지요. 
 우리 사회의 집단무의식이 불러오는 2차 피해가 있어요. 내가 그렇게 무기력했다면 모를까, 나도 그렇지 않은데, 자꾸 피해자는 그렇게 무기력하다고 말하니깐 난 강하게 반론을 제기하는 거죠! 나도 강사와 피해자, 여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말하면 세상의 편견을 작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말을 하면서 계속 생겨나내요. 그래서 강사 일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계속해서 이 일을 하고 싶고 꼭 해야만 되는 사명까지 생겨난 거겠죠.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강사로 해야 할 일이 생겨난 것이죠. 난 이제 나를 사랑하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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