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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군대위의 소속사단에서 걸려온 전화


두주일 전,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스토킹 피해를 입었던 여군대위가 소속되어 있던 사단에서 걸려온 한 여군의 전화였습니다.

'군과 관련하여 상담을 하고 싶다'는 메모를 받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핸드폰이 아닌 유선전화 연락처를 남기신 탓에, 전화를 걸면서 조심스러웠습니다.
‘혹시 상담을 원하는 본인이 아닌 사람이 받을 수도 있는데,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전에는 상담소라고 밝히지 말아야겠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서 전화 받기 곤란하신 건 아닐까’
염려하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행히 전화하셨던 본인이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어떤 문제로 상담을 원하시는지 묻자, 공동대책위가 지원하고 있는 여군 대위에 대해 말씀하시려고 전화를 하셨다고 합니다.

 

'여군대위 한 쪽의 말만을 듣고 공동대책위가 개입하는 것 같아 염려가 된다'고 하십니다.

군 내부에 있는 사람의 입장으로 상담소에 전화하시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같은 사단에 있었다면 지켜보는 사람으로의 심정도 있으셨을 것이니 좀 더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14개의 단체가 어떤 마음과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공동대책위를 꾸렸는지 진심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5분, 10분, 통화가 진행될수록
사건 담당자로서 긴 시간 꼼꼼히 읽어보았던 재판 관련 기록 중, 내부고발자인 스토킹 가해 소령이 쓴 진술서와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심지어 여군대위에게 ‘평소 문제가 있다’고 표현하시면서
이 사건은 '남녀 간의 예민한 문제니, 두 사람만 아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전화를 주신 분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겁니다.

이 분이 군 사무실에서 상담소로 전화를 걸어, 고발자인 소령이 주장한 바와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이것은 이미 군 전체에 퍼져있는 인식일 수도 있습니다.

 

여군대위를 스토킹한 소령은, 한 달에 몇 백건이 넘는 문자를 보내고도 1심 법정에서 이것이 ‘지휘관심’이라고 증언했습니다.
남자친구를 사귀지 말 것, 사생활을 일일이 보고할 것이라는 내용의 각서를 쓰게 하고도, 여군대위가 ‘관심장교’였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었습니다.

 

상담소는 그동안 조직 내, 직장 내의 많은 성폭력사건을 접하면서
성폭력 피해를 밝힌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문제 있는 사람’, ‘골치 아픈 사람’, ‘거짓말 하는 사람’으로 오해 받게 되는지 똑똑히 보고 들어왔습니다.

‘조직 보위’를 언급하면서 피해자의 사생활에 대한 거짓소문을 내어 피해자 편을 없애는 것도, 가해자의 공적을 핑계로 책임을 묻지 않는 것도, 저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광경입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직접 마주하고, 피해자와 함께 해결해나갔던 14개의 단체가 모인 곳입니다. A4 용지 한 박스에 달하는 공판기록, 군의 다른 인권문제에 대한 많은 자료들, 여러 단체의 의견들, 회의에서의 토론.

이 사건이 군 내 인권 문제 해결에 한 획을 그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앞으로 다시는 혼자 군과 싸우는 한 명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이 사건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위와 아래의 사진은 공동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 활동가들의 손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의 손이 필요합니다.

지난 번, 기자회견 퍼포먼스에 대한 글에, 참으로 많은 분들이 의견을 달아주셨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궁금한 것도, 토론하고 싶은 것도 많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곧 이 사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가지고 토론의 장을 열겠습니다.

 

다음 재판은 7월 8일, 고등군사법원에서 열립니다.

다시 법정에 서게 될 여군대위에게 지지의 답글을 달아주십시오.


그리고 만에 하나, 군악대의 업무와 지휘관계에 대하여 재판에서 증언이 가능하신 분이 계시다면

ksvrc@chol.com 으로 메일을 주십시오.

 

군 내 성폭력문제 해결을 위해,
아직 높기만 한 군의 담장을 여러분의 목소리로 함께 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