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반성폭력 운동단(?) 14인의 모습. 서있는 자세도 자기 성격대로~
상담소 활동가들이 모여 4월 26일~28일 2박 3일 동안 제천 일대로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첫날 저녁 '다양성 바베큐'와 다음날 아점인 '태국 요리의 날' 준비를 담당한 열림터 활동가 백목련입니다.
원래 태국 요리의 날은 다른 날에 할 예정이었지만 활동가들이 모두 모이기 어려워 워크숍 때 하기로 워크숍 일주일 전에 급히 결정하였습니다. 이렇게까지 큰 일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너무 쉽게 덤벼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사실 이런 결정을 하기 전에 저는 제가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음식 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제가 만든 음식에 대해 주변에서 감사하게, 맛있게 먹어주는 상황이거든요. 물론 저의 노고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곳이라면 "그냥 사먹어~" 라고 했을 것 같네요. 14명의 물개박수를 받겠다는 아주 단순한 욕심이었습니다.
'다양성 바베큐'라는 적절한 이름은 오매가 지어주었습니다. 상담소에는 (특정) 해산물을 즐기지 않는 활동가, 육류만 선호하는 활동가, 고루 먹지만 야채를 사랑하는 활동가, <육식의 성정치>를 읽고 비육식을 지향하게 된 활동가 등 식생활에서도 다양한 지향과 고민들이 이 공간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먹는 것에 큰 뜻을 두지 않기도 하지만, 저는 식생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모두가 같이, 본인이 원하는 만큼, 좋아하는 식사와 음료를 즐기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함께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전 직장에서였습니다. 직장 동료 중 한 명이 비건(Vegan, 비육식을 지향할 뿐만 아니라 우유나 꿀 같이 동물을 희생시켜 얻는 부산물도 섭취하지 않는 사람들 가리키는 말)이었거든요. 사무실에서 밥 먹을 때는 각자 도시락을 싸와서 먹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다같이 식사를 할 때마다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비건인 동료와 같이 생활하는 데에 대해서, 어떤 제한이 있는 것을 못 견디는 저는 좋은 동료는 아니었습니다. 내심 '채식하는 사람 옆에 있는 건 너무 불편해'라고 생각하고 그게 행동으로 종종 드러났을 테니까요.
그런데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전 직장에서 2박 3일 워크숍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 동료가 했던 말인데요. "집에만 가면 내가 좋아하는 재료로 아주 맛~있~게 된장찌개 끓여서 푸지게 먹을 거야!" 사실 워크숍 가기 전만 해도 동료는 김밥 한 줄만 먹어도, 혹은 맨밥에 나물이나 김만 있어도 괜찮다고 했었거든요. 한에 서린 저 한 마디를 듣는데 왠지 너무 미안하더라구요. 매번 김밥만 먹기도, 또 본인을 위해 없는 김밥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은근한 눈치도 한의 근원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생활할 때는 제가 느끼는 불편감만을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먹는 것을 이렇게 중요하는 사람이 삼시세끼 눈치밥을 먹는 사람의 불편감은 왜 생각을 못 했는지 후회가 됐거든요.
그래서 다양성 바베큐는 육류, 야채류, 해산물류를 구울 수 있는 3개의 화로를 올리고 각 재료를 가장 잘 구울 수 있는 사람이 배치되었습니다. 육류는 열림터 지희, 야채는 저, 해산물류는 사무국의 오매가 역분을 맡았습니다. 야채는 모두가 먹을 수 있는 재료니 중간에 두고 양 옆으로 육류와 해산물류를 배치하니 자연스럽게 각자가 선호하는 식재료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음료도 각자의 취향에 맞게 맥주, 소주, 적/백와인, 보드카와 라임, 딸기청과 탄산수를 준비하였습니다. 사실 작년에도 바베큐와 뒷풀이 담당이었는데 그때는 야채는 맛있으니까 준비했지만(역시 감수성이 떨어지는 부분) 음료는 주류 중심으로만 맞췄거든요.
취향껏 드시라고 부페식으로. 고수는 따로 덜어서 먹을 수 있게 준비하였어요.
풍경도 좋고 음식도 많이 많이. 분명 어젯밤에 먹은 게 소화가 안 됐는데 제 손은 밥을 많이 담고 있네요.
다음 날, 아점인 태국 요리의 날도 전날 과식으로 소화가 안 된 배를 소화시킬 겸 아침 7시부터 설렁설렁 부엌에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집에서는 눈꺼풀이 무거운데 여행만 오면 몸이 왜 이렇게 가벼운지. 여행 와서 몸이 가벼운 사람, 잠자리가 바뀌어서 거실로 일찍 나온 사람, 소란스러워져서 일어난 사람들이 모여 수다 떨며 함께 또 요리를 했네요. 전날 다양성 바베큐 준비하면서 한 번에 야채 손질은 열림터 지희와 순유, 파파야 채썰기는 사무국 선민과 열림터 사자와 함께 준비해서 수고를 덜었습니다. 파파야 샐러드인 쏨땀은 파파야와 줄콩, 고추와 땅콩, 말린새우 등을 양념과 함께 절구에 찧어서 만들어야 하는데 선민과 사자가 돌아가며 사이좋게 완성하였습니다. 망고찰밥은 오매가 야심차게 준비한 재료인데요. 망고찰밥을 먹어보지 않은 활동가들의 조바심으로, 과거 초콜렛파스타라는 역작을 만든 오매의 솜씨(?)로 그냥 망고를 먹으면 안 되냐는 읍소를 잠재우는 것도 요리 준비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으하하.
태국 요리의 날에는 계란후라이를 올려 만든 태국식 바질돼지고기볶음덮밥인 팟까파오 까이 무쌉, 코코넛크림과 가지가 주 재료인 그린커리, 새우와 각종 향신채를 넣어 만든 맑은 국물 똠양꿍, 디저트로 망고찰밥이 준비되었습니다. 망고찰밥의 푸른빛은 색소가 아니고요. 오매가 지난 번 태국 여행 갔을 때 사온 안찬꽃으로 쌀을 불려 만들었습니다. 코코넛크림과 팜슈가로 코리안스타일 적당한 달다구리 정도를 완성하여 활동가들이 망고찰밥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했어요. 메뉴도 여럿이고 재료는 다양하게 썼으나 맵기는 조절을 못하여서 몇몇 활동가들이 화장실 고생을 하였습니다. 내년에는 순한 맛도 내겠다는 약속을 하고 설거지 당번들의 조력으로 워크숍 맛지킴이 활동을 종료하였습니다.
워크숍 후기라더니 뭐, 순 먹는 것 이야기 밖에 없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그만큼 함께 먹는 것이 중요한 워크숍이었습니다.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우리에게 식생활과 관련한 다양한 지향과 성향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소외되니까요. 일상적인 부분에서부터 서로의 차이를 고려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모하게 14인분상을 두 번이나 차리겠다고 선언한 저와 함께 워크숍에도 요리 노동에 종사한 지희, 사자, 순유, 선민, 고맙습니다. 박수는 제가 주로 받았는데 사실 네 분의 조력이 없었으면 저는 중간에 백기를 들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흔쾌히 망고찰밥을 만들겠다고 한 오매와 부족한 부분이 있었는데도 맛있게 먹어주고 요리 노동의 고됨을 치하해 준 나머지 활동가들과 함께 워크숍 갈 수 있어서 기뻤어요. 그리고 저는 요리하는 것만 좋아하고 뒷정리는 정말 싫어하는데 묵묵히 설거지 해준 활동가들도 고맙습니다. 요리 후에는 뒤도 안 돌아봐서 누가 설거지 했는지는 기억이... 흑흑...
저는 이제 내년 메뉴를 구상하기 위해 온갖 요리 수업을 들으러 다닐 계획입니다. 모두가 함께 맛있게 먹는 밥상을 위하여, 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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