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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뒤집기] 1991 + 한국성폭력상담소 20년의 회고와 전망 + 2011 


(이매진, 2011년 4월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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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뒤집기>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년 동안 해온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여성운동의 실천과 반성폭력 운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 책이다. 



   미국의 “강간위기센터(Rape Crisis Center)”를 참고하여 설립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이라는 단어도 입에 담지 못했던 시절, 굉장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당시 민주화운동그룹이던 사람들이 만든 다른 여성단체들과 달리 발기인 대부분이 여성학과 출신이었기 때문에 초기에 기존 단체들의 적극적인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함께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을 하고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점차 타 단체들과 깊은 연대를 다져나갔고, 독자적인 여성운동단체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편, 상담소 운동은 이론과 실천을 접목 시키고자 하는 여성학 전공자들의 깊은 열망이기도 했다. 상담은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내담자와 상담자는 평등하다.’ 등의 원칙을 내세운 여성주의 상담이었다. 처음에는 과연 상담이 올까? 하는 불안함이 있었지만 상담소가 개소하자마자 전화가 폭주했다고 한다. 상담 사례가 지속적으로 쌓이며 성폭력 유형에 대한 통계화가 가능해졌고 활동가들은 신뢰할만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성폭력의 실상을 알리고 공론화했다. 초기 활동가들은 피해자를 위한 의료적, 법적 지원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통합적 지원 체계를 마련했다. 이제 성폭력 상담 지원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지만 이제 제도화로 인한 내담자의 신상정보 문제, 성폭력 상담의 전문화, 가해자에 대한 교육 등 많은 고민거리들이 남아 있다.



   열림터는 성폭력 피해자가 치유와 회복을 하며 생존자로 거듭나는 공간이다. 열림터는 당장 피할 곳이 없는 가족/친인척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피난처에서 시작되었다. 체계가 잡히지 않은 초기에는 여러 갈등과 많은 업무량으로 상근활동가가 자주 변경되었지만, 열림터를 통해 근친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되고 전국에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이 생겨나면서 피해자 역량강화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열림터에서는 사건 지원, 상담 지원, 심리치료, 생활 지원(학교, 전학 문제, 의료), 문화생활 등 통합적인 피해자 지원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열림터는 정부의 규정에 얽매이지 않으며 다양한 운영을 시도할 수 있는 공간, 성폭력 피해 여성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 활동가들이 소진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활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고 직장 내 성희롱이 법에 규정된 것은 성폭력 피해 사건에 대한 공론화와 언론 보도, 성폭력을 여성의 정조 문제로 한정하는 기존 법의 한계,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발언, 여성단체와 대학생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법 제정 운동 모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두 성과는 성폭력과 성희롱이라는 언어와 개념을 새로이 만들어 냄으로써 현실에서 보이지 않던 성폭력 피해를 드러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성폭력 담론은 ‘여성의 정조’에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문제로 바뀌었고, 남성들의 순전한 놀이문화였던 성희롱은 서울대학생의 발언으로 시작해 6년에 걸친 소송 끝에 성차별 및 성폭력의 문제로 인식되었다. 성폭력에 대한 법정책을 변화시킨 것은 훌륭한 성과였다. 하지만 이후 법 집행 과정에서 법이 가부장적으로 해석되어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현실을 인식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재판 모니터링 및 감시 활동과 법 종사자 성 인식 실태조사, 대법원 판례 바꾸기 운동에 집중했다. 현재는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되었고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현재 맞닥뜨린 법정책 운동 과제는 미투에 저항하는 명예훼손 및 무고죄에 대한 대응과 ‘낙태죄 폐지’다.



   한국의 남성 중심적인 성 규범이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라면, 중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성문화 운동팀이 출발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방방곡곡 다양한 대상으로 진행한 성교육을 시작으로 다양한 책을 펴내고, 미디어 모니터링, 대학 내 성문화 운동, 밤길 되찾기 시위를 진행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가장 인상 깊었던 활동은 현재까지도 지속 중인 자기방어훈련과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다. 자기방어훈련은 몸에 새겨진 규범과 성 역할에서 벗어나 새로운 몸의 움직임을 기획하려는 의지에서 기획되었다. 자기방어훈련은 일상에서 쉽게 해보지 않았던 신체 활동과 움직임을 통해 무력감, 수동성이 새겨진 여성의 몸을 스스로 변화시켜나가는 과정으로 여성의 삶에서 쉽게 맞닥뜨릴 수 있는 성폭력 상황에서 여성이 통제권을 가지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다. 한편, 말하기 대회는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이 존재를 드러내는 공간이자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공감하고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공간이었다. 초기에는 참여자를 제한하는 등 방어적으로 시작되었던 말하기 대회는 점점 열린 공간에서, 더 많은 대중 앞에서 무대공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앞으로 반성폭력 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이 책의 마지막 좌담회 부분에서는 법제정 이후의 운동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책이 출간된 지 8년이 지난 지금, 최근의 미투운동이 이 물음의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미투 고백을 보면서 사람들은 성폭력 가해자가 특별한 괴물이 아니고 성폭력 피해가 나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좌담회에서 나온 남성들의 ‘억울한’ 백래시, 여성단체로서 성폭력 상담소의 운동 방향 등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고민들이라고 생각한다. 성폭력 관련 법이 상정하고 있는 아동·여성에 대한 보호주의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년이 집약된 책을 덮으며 반성폭력 운동이 해온 일이 많은 만큼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작성 : 유랑 (여성주의 상담팀 활동가) 




Posted by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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