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연대] 함께 할 준비되셨나요?
▶ [보통의 연대]란?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 혹은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캠페인이에요. 모든 사람은 성폭력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터뷰하고자 해요. 성폭력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세요.
▶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없이 성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강간, 강제추행뿐 아니라 시각적·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피해자의 거부에 대한 불이익 조치, 불법 촬영, 비동의유포,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 등이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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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 주변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윤문 및 편집 외에는 인터뷰 참여자의 말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논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인터뷰 취지에 맞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있을 경우 수정 또는 삭제 요청드리거나 관리자가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용기 있게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 참여자 분들께 비난과 질타보다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아는 사람에게 피해 경험을 듣고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던, 예진의 인터뷰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예진입니다.
Q.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나요?
음, 성폭력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의 주변인뿐만 아니라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사람도 주변인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포함해서요)
Q. 내 삶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가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세요?
생각보다 멀지 않을 것 같아요. (수치로 표현한다면) 70. 클수록 가깝게.
Q. 성폭력 또는 성폭력 피해자가 나오는 책이나 영상을 본 경험이 있나요?
요새 올라오는 웹툰 <27-10>을 보고 있어요. 피해자의 심리를 되게 잘 (표현)한 것 같아요. (내가 피해자라면) 정말 그렇게 느낄 것 같아요. 그 웹툰에서 아빠가 가해자고 딸이 피해자인데요. 가족이고, 어렸을 때니까, (피해자가) 크게 반항하지 못하고 대처하지 못하는 내용이 되게 잘 나와요.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가해자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그냥 계속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이게 현실이구나’라고 느꼈어요.
Q. 성폭력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보거나 들은 경험이 있나요?
사실 이런 사건은 대학생들 관련해서도 많이 일어나고, 연예계 관련해서도 (기사가) 되게 많이 올라와서 봤는데, 구체적인 건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아, 그거. 성폭력 피해자들의 옷을 전시한 전시회가 있다는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조금 시간이 지난 기사 같은데. 생각보다 옷들이 너무 평범해서요. 가해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예를 들어서 남성 가해자고 여성 피해자였을 때, “여성 피해자가 옷을 짧게 입었다”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짧은) 옷들이 아무래도 많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평범한, 긴 팔, 긴 바지 입은 사람들도 있었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피해자가) 많더라고요.
Q. 미투 운동에 관해서 주변 사람과 대화를 나눠본 경험이 있나요?
가족들이랑도 얘기했었고. 대학 동기들이랑도 얘기했었어요. 그냥 친한 친구들이랑도 많이 얘기했었는데. 아무래도 연예인들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서 미투 운동이 활발해졌다고 생각해서 한 번쯤은 얘기가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어떤 한 연예인이 미투 운동으로 인해서 자신의 잘못이 밝혀지니까 자살을 했어요. 그 뉴스를 보고 얘기가 나왔었는데,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러지 말지” 약간 이런 반응이긴 했어요. 가해자한테. “왜 그랬을까?” 약간 이런 반응. 생각해보니까 피해자에 관한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피해자에 대해서는 ‘조심해야겠다’라는 반응이 많고,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내가 가해자가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은 많이 안 하는 것 같아요. 은연중에 내가 가해자가 될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사실 저도 가끔 얘기하다가 ‘혹시 방금 내가 잘못 말한 건가?’ 약간 움찔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생각보다 ‘내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정말로. ‘이런 일이 있었대’ 얘기를 해도 ‘내가 이런 일 안 당하게 조심해야겠다’라고만 생각하지 ‘나는 이런 (가해) 행동을 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가해자는) 생각보다 평범하고 일상생활에 이미 내 옆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에요. 피해자도 그렇고요.
Q. 공중화장실에 있는 화장지, 스티커, 실리콘 등으로 막아놓은 것을 본 경험이 있나요?
네. 지하철 공중화장실도 그렇고, 음식점 화장실, 뭐 이런 데에서 되게 많이 본 것 같아요. 그리고 “공중화장실에 구멍이 있으면 카메라가 있다, 혹은 있을 수 있다”라는 말이 이미 많이 알려져 있잖아요. 그래서 저 스스로도 구멍이 있으면 휴지를 이렇게 돌돌 말아서 막고, 이랬던 적도 있어요(웃음). 네, 직접 해본 적도 있어요.
인터넷 보니까, ‘조그만 휴대용 실리콘을 사서 들고 다니면서 구멍 보이는 걸 다 막자’라고 하는 글도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대학생인데, 동기들이 ‘우리 학교 화장실도 이렇게 (검사)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해서, 학교에서도 주기적으로 카메라 같은 기기를 감지하는 검사를 시행하고 있거든요.
(화장실에 있는 구멍을 보면) 솔직하게 얘기하면, 좀 한심한 느낌, ‘되게 하찮다(웃음)’ 그런 느낌(이 들어요). ‘어우,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런데 또 그걸 막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도 들고요. 내가 이렇게 피해를 봐야 하는구나, 하는 게 좀 씁쓸할 때도 있어요.
Q. 성폭력 피해를 겪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행동에 제약이 생긴 경험이 있나요?
아, 이건 사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다 가지고 있는 생각일 것 같아요. 뭐, 남성들도 포함되지만. 밤늦게 다니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딱 머리에 있어요. 이것도 제 생활에 제약이 생긴 것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새벽이나 좀 늦어질 땐 되도록 밖에 안 나가려고 하는 것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음, 옷차림? 아무래도 좀 짧은 치마를 입거나 짧은 바지를 입을 때는 항상 속바지를 입게 되고, 나시나 이런 상의도 되게 신경 써서 입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생활이나 옷차림에 대해서 되게 걱정을 많이 하는 게 있어요.
Q.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성폭력 관련 상황이 있었다는 걸 들어본 경험이 있나요?
제가 고등학교 때 반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음, 저희 반에 저와 친한 친구가 화장실에 혼자 갔는데, 다른 동성 친구가 그 용변 보는 장면을 위쪽에서 손을 이렇게 넘겨서 찍은 일이 있었어요. 경찰도 오고 되게 일이 크게 됐었거든요.
(소문이) 많이 돌았죠. 경찰도 왔고. 그리고 사실 아직까지 편견으로 있을 수 있는 문제 중 하나가, (성폭력 피해는) ‘남성이 여성에게 그런다’, 아니면 반대로 ‘여성이 남성에게 그런다’이잖아요. 동성끼리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그때 다시 느꼈던 것 같아요.
(피해자나 가해자에 대한 말들 중에) 다행히 피해자를 나무라는 내용은 없었어요. 흔히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였던 반응은 (이런 말 써도 되나?) ‘미친 거 아니야?’, ‘진짜 왜 그랬지? 왜 그랬대?’ 이런 반응이 되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Q. 내가 아는 사람이 성폭력을 겪었거나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경험도 있다고 하셨어요. 혹시 이 경험에 대해서 제가 질문을 해도 될까요?
네. 제가 아는 분이 친하게 지내던 이성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와 늦게까지 음주를 하고 자취방에 갔다가 성폭력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제가 (그 얘기를) 듣고 되게 충격이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런 일은 많잖아요. 주변에서도 술 마시고 늦게까지 있다가 자취방에서 자는 일은 되게 흔해요. 그 생활 중에서도 역시 성폭력의 위협이 있다는 게 슬프더라고요.
(피해자에게 직접 피해 사실을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웠죠. 사실 피해자가 하는 생각에 반도 못 따라갈 생각이겠지만 ‘왜 이런 일이 얘한테 일어났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피해자가) 되게 덤덤하게 이야기를 해서, 그게 더 마음이 아팠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 들었을 때는 약간, 뒤통수 맞은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딱 들어서 말도 잘 안 나왔어요. 계속 얘기를 듣다 보니까 그냥 ‘네 잘못 아니야’라는 얘기를 계속했던 것 같아요. (피해자가) ‘나 때문이야’라고 얘기를 하진 않았는데, 은연중에 ‘아, 내가 안 그랬으면’하고 자기 탓을 했던 것 같아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 뚜렷한 해결 방법이 없는 것처럼 느껴서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해결은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피해자의 상태가) 괜찮은데, 그래도 그 상처는 걔한테 지워지지 않을 거니까. 그게 마음이 아프죠. (상처는) 없어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을 거니까.
Q. 인터뷰하고 난 지금은 내 삶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가 어느 정도 되는 것 같나요?
음, 80? (더 가까워진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고 (들은) 이야기들인데, 말을 함으로써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있구나’라고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사진)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보통의 연대] 릴레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이 인터뷰 진행자로 함께 하며,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2019 양성평등 및 여성사회참여확대 공모사업인 "성폭력,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 다희님이 진행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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