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회원소모임 "페미니스트 아무 말 대잔치(이하 '페미말대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앎 활동가입니다. '페미니스트끼리 속시원하게 수다 떨고 싶다!' 라는 단순한 바람으로 시작했던 페미말대잔치 모임이 어느새 2년을 꽉 채웠네요.
그동안 참여자들은 취직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여성/인권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직접 액션/캠페인을 기획해서 주도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페미니즘이란 뭘까? 탈페미(?)할까?'라는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어요. 각자 조금씩 바빠지면서 만나지 못한 때도 많았지만, 정기적으로 모여서 서로 잘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그때그때의 이슈와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든든했습니다.
작년에는 여성주의 수다모임이라는 성격에 맞게 안전한 공간에서 실컷 수다를 떨었다면, 올해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의견을 받아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함께 했었어요.
1월에는 보드게임 <이지혜 게임>을 했고, 3월에는 이태원에 가서 섹스토이샵을 돌아보았어요. 5월에는 차별잇수다 워크숍을 진행했고, 6월에는 한국퀴어영화제를, 7월에는 페미니즘 연극제를 관람하러 갔습니다. 8월에는 광복절에 맞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다룬 영화 <어폴로지>를 보았어요.
하나하나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체험 활동을 하다 보면 늘 수다 떨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체험 활동과 관련된 대화가 중심이 되다 보니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우리는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면서 생기는 대소사와 고민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나눌 수 있는 시간이 아직도 더 많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과 하기 어려운 대화도 터놓고 나눌 수 있다는 점이 페미말대잔치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결국 하반기에는 초심으로 돌아와 수다모임으로서 이야기 나누는 데에 집중했어요.
올해 마지막 모임은 송년회를 겸해서 진행되었어요. 맛있는 비건 케이크와 비건 도넛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게 먹느라고 그만 사진 찍는 것을 깜빡했네요!
마지막 모임에서 특히 기억나는 주제는 '어디까지 2차 피해/2차 가해인가?'였어요.
'2차 피해/2차 가해'라는 개념은 사회문화적으로 가해자에게 쉽게 이입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의심하거나 비난하는 문제, 그로 인해 피해자가 피해 이후에 겪게 되는 어려움을 지적하기 위해 생겨났죠. 하지만 실제 사례를 보다 보면 피해자를 '기분나쁘게' 하는 모든 상황과 행동을 다 '2차 피해/2차 가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고민이 될 때도 있습니다. 만약 내가 정말 신뢰하고 오랫동안 가깝게 지낸 사람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었을 때 내가 즉각 가해자를 '손절'하지 않는다면 2차 가해인 걸까?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기 어려운데,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원하는 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무조건 2차 피해인 걸까?
사실 수많은 페미니스트와 인권 관련 조직/공동체 구성원에게는 특별히 새로운 고민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2017년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토론회 <'2차 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를 진행했을 때 수백 명이 신청하고 참여했었고, 2018년에는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이라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으니까요. 공동체 내 성폭력 해결 과정을 한번이라도 거쳐본 조직/공동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고민에 빠지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제를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는 생각보다 어려워요. 애초에 '2차 피해/2차 가해'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고민하는 결이 다르니까요. 오죽하면 2017년 <'2차 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에 대해>라는 주제로 칼럼을 썼던 권김현영은 서두에 "이 글은 피해자 관점을 부정하기 위해서 쓰인 글이 아니다. 2차 피해 문제의 심각성을 흐릿하게 만들거나 가해 중심 관점을 옹호하는 목적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에 등장하는 2차 가해의 남용, 피해자중심주의의 오용 등과 같은 문제는 윤리적 기준과 기대가 매우 높고 성원들의 공동체의식을 요구할 수 있는 시민사회와 인권단체, 노동조합 및 정당, 학생회와 동아리, 페미니스트 내부 그룹 등에 한정되어서 일어나는 일이다."라고 못을 박았을까 싶습니다.
페미말대잔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지지자이자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는 모임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인지, 기탄 없는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었어요. '페미말대잔치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지 밖에서는 차마 내 생각을 말 못하겠다', '이렇게 말하면 2차 가해자로 낙인 찍힐까 봐 두렵다'라는 솔직한 감정까지도 서로 이야기 나누었어요. 우리끼리 이야기 나눈다고 갑자기 '사이다' 같은 정답이 생겨날 리는 없었지만, 각자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주제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나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였어요.
피해를 경험하고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폭력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이 높아질수록, 내가 한 잘못을 돌아보게 되고 '나도 가해를 한 부분이 있다'라는 죄책감과 혼란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가해자의 폭력에 맞서거나 가해자에게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표면적으로 봤을 때 '폭력'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저항'이었나, '폭력'이었나, 딱 잘라 정의내리기 어렵습니다. 누군가는 '저항폭력은 폭력이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내가 피해자니까 그냥 위로해주는 말' 혹은 '저 사람은 구체적인 상황을 모르니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내가 피해자로서 힘들고 분노에 찬 상태에서 공격적/자기파괴적 행동을 하는 경우에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때 나는 피해자니까 무조건 이해받고 배려받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요? 누군가가 나에게 '아무리 피해자라도 그런 행동은 하면 안 돼'라고 말하면 그것은 '2차 피해/2차 가해'일까요?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최근에 읽은 책을 떠올렸어요. <당신, 왜 사과하지 않나요?>라는 책은 가해자가 잘못된 행위를 한 것과 그에 대한 피해자의 반응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책의 주장대로라면, 가해자가 성폭력을 가한 것과 피해자가 피해 이후에 공격적/자기파괴적 행위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선뜻 공감이 가지 않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오죽 고통스러우면 그러겠나, 애초에 가해자가 성폭력을 저지르지만 않았어도' 라는 생각이 먼저 드니까요. 그렇지만 피해자라는 정체성이 또다른 폭력을 정당화, 합리화하는 근거가 되어서도 안 되겠지요. 무엇보다도 피해자 자신이 그러기를 원치 않으니까 계속 성찰하고 고민하는 것이잖아요.
폭력적이지 않은 저항은 어떻게 가능할까? 피해자를 충동질하는 공격적/자기파괴적 행위를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어요.
2020년에는 페미말대잔치 시즌2 참여자를 모집하여 월 1회 여성주의 수다모임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 및 지지자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오니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내용을 참고하셔서 신청해 주세요~
◆ 일정 : 매월 셋째 주 목요일 오후 7시(상담소 사정이 있을 경우 협의 하에 일정 변경)
- 2020년 첫 모임은 1월 16일(목) 오후 7시,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됩니다!
◆ 문의 : 한국성폭력상담소 앎 (02-338-2890, ksvrc@sisters.or.kr)
◆ 페미니스트 아무 말 대잔치에 참여하고 싶다면?
한국성폭력상담소 대표메일 ksvrc@sisters.or.kr 로 다음과 같이 참여 신청 이메일을 보내주세요!
제목 : [페미말대잔치] 회원소모임 참여 신청
내용 : 이름/별칭, 연락처, 참여 동기
담당 활동가 앎이 연락처 및 참여의사 확인 후 오픈카톡 링크를 보내 초대해드립니다! 원하시는 경우 오픈카톡 링크 들어오시기 전에 먼저 1회 시범 참여 하실 수 있는 찬스도 드려요~ 메일 보내주시면 1주일 이내로 전화 연락 및 이메일 답장 드립니다!
※장난 치거나 시비 걸려고 들어오시는 분들이 있어서 오픈카톡 링크를 부득이 비공개로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020년에 또 만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후기는 성문화운동팀 앎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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