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세 번째로 찾아온 활동가 인터뷰! 지난 4월에는 환갑을 맞은 활동가 지리산과 사자를, 6월에는 2030 활동가인 주리-유랑-낙타를 인터뷰했습니다. (4월 활동가 인터뷰) (6월 활동가 인터뷰)
이번에는 2000년대 초반, 상담소 자원활동을 시작으로 상근활동가가 된 두 사람을 인터뷰해 보았습니다. 상담소 부소장인 오매와 여성주의상담팀의 감이가 그 주인공인데요, 어떻게 상담소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두 사람이 직접 그린 <인생곡선>과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함께 보시죠!
인터뷰어: 세린(셀), 승은(승), 닻별(닻)
인터뷰이: 오매(옴), Y.감이(감)
Intro. 활동명에는 무슨 뜻이 있나요?
감: 용감한 페미니스트로 살기 위해서 지은 이름이에요. 용감에서 감만 떼가지고 감이.
닻: 그래서 항상 앞에 Y 가 붙는군요.
감: 풀네임을 쓸 때는 ‘용’의 Y를 써요. Y.감이 이렇게요.
옴: 저는 오매불망 할 때 오매구요, 잔다 깬다 그런 뜻입니다. 빛과 그림자 두 세계를 다 이름에 넣었습니다.
감: 회의할 때도 자다깨다, 운전할 때도 자다깨다. (일동 웃음)
옴: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에서 이렇게...
감: 되게 있어보이게 설명하잖아?
옴: 자연재해를 너무 좋아하는데, 이재민들에게 말하기 그렇지만 문명과 비문명의 경계에 자연재해가 있기 때문에, 태풍 속에서 죽고 싶어요.
1. 용감한 감이의 인생곡선
감: 간단하게 먼저 얘기를 하면, 어렸을 때는 기억이 잘 안 나요. 기억이 나는 데는 이렇게 굴곡이 심하고, 평탄한 데는 사실 굴곡이 없었다기보다는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셀: 미화된 건가요? (웃음)
감: 예, 그렇죠. 어릴 때 기억이 별로 없어서…. 근데 막 고민이 많거나 그런 아이는 아니었어요.
옴: 텐션이 기본.
감: 네. 긍정적인 아이였어요. 그래서 예전에는 평탄하게 살았던 거 같고, 2001년에 대학교에 입학했어요. 그 앞에 있는 표시는 고등학교 때 풍물패를 해서 좀 더 재밌게 살았다는 표시구요.
옴: 노란 엑스가요?
감: 네. 그러다가 대학교에 갔는데, 풍물패 같이 하던 언니를 만나서 그 언니가 있는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그 언니가 동아리 사회과학부장을 하다가 학생회로, 그 다음에는 총여학생회로 옮겨 가서 저도 2002년인가 2003년부터 그 언니를 따라 총여학생회 활동을 시작했죠.
승: 굴곡이 심해지는데요?
감: 재미있었던 거 같긴 한데 남아있는 이미지가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총여 활동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고생도 많이 하고, 저한테 많이 실망하는 기간이었어요. 그래서 굴곡이 좀 있구요. 또, 저희 엄마가 신장 이식 수술을 받으셨거든요. 제가 학교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하기 전이라 엄마랑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 때가 좀 기억이 나고.
2008년에는 대학원에 입학하고 7월에 결혼을 했죠. 돌아보니 이 때가 되게 좋았던 거 같아요. 당시엔 힘들었던 거 같긴 한데. 집에 있을 때 통제받으면서 살진 않았지만 막 자유롭게 살지도 않았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하면서 자유로워지는 시기였고, 파트너랑 싸우기도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많이 하는 시기였어요.
2008년에서 2010년 사이도 굴곡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 잘 기억이 안 나요. 대학원생이어서 풀 타임으로 공부만 하니까 힘들 건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관계 측면에서 좀 힘들었던 거 말고는 전반적으로 괜찮았던 거 같고. 원래는 다들 논문 쓸 때 바닥을 치거든요? 근데 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제 논문 주제가 대안 여행, 공정 여행이라 여행을 되게 많이 다녔어요.
승: 논문 쓰는 과정에서요?
감: 네. 논문 쓰기 전에 현장 연구를 한다고 태국이랑 네팔 이런 데 가서 혼자 여행하는 여성들의 경험을 들어야겠다고, 저 혼자 알리바이를 만들어서 한 70일 정도 여행을 갔었거든요. 그 때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립기도 하고, 자유롭게 살았던 거 같아요. 그렇게 논문을 쓰고 2011년에 졸업하고 2012년에 출산을 했죠. 그 이후에 수많은 균열과 산산조각이 나서 (인생곡선이) 이어지지 않아요. 육아 때문에 힘들었던 시기인데, 최근에 읽은 글로 대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행복하지만 불행한 것 같은 시간이고, 온전한 거 같으면서도 불안한 시간이고, 우울하다가도 힘나는 시간이고, 몸은 번잡한데 외로운 시간이고.”
정말 이 말이 맞더라고요. 극단적이지만, 우울감과 행복감이 늘 공존하는 시기여서 표현이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9개월 정도는 제가 완전히 아이를 혼자 봤고, 그 후에는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 주시고. 2012년에서 2015년 사이에는 둘째를 낳기도 했는데 이대 아시아여성센터에서 일하는 등 파트타임으로라도 일을 계속 하려고 했죠. 2015년에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입사하고 나서는 자존감도 높아지고 되게 좋았어요.
승: 입사하게 된 계기는요?
감: 2003년 즈음에 상담소에서 제1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기획단을 한 것을 시작으로 계속 자원활동을 했어요. 2006년에는 상담원 교육(* 성폭력상담원기본교육. 교육을 이수하면 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을 받고 나서 전화상담을 했는데 전화 받는 게 무섭고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활동을 잠시 쉬다가 우연히 자리가 났다는 얘기를 듣고 지원하게 됐어요. 둘째가 세 살이 될 때까지는 제가 키우려고 일을 그만둔 상태였는데 자리가 났다는 얘기를 듣고 그냥 왔죠.
아이를 키우면서 활동을 하는게 생각만큼 그렇게 쉽지는 않아서 부침이 많이 있었는데,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있었을 때 가장 바닥을 쳤어요. 그 때는 성문화운동팀에 저랑 앎 둘밖에 없어서 일이 진짜 많았거든요. 평소에는 아이들이 어린이집 가기 전에 시부모님이 집으로 오시면 저는 먼저 출근하고, 부모님이 아이들을 챙겨서 등원을 시켜주신 다음에 하원도 해 주시고, 저는 야근하고 들어가고. 그렇게 계속 살다가 어머님이 갑자기 어깨 수술을 하시면서 아무도 아이들을 봐줄 수가 없게 됐거든요. 그것만으로도 힘들었는데 강남역 사건으로 해야 할 일도 되게 많고, 다른 활동가들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새로운 판을 짤 수 있겠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그럴 여력이 없는 거예요. 정말 아등바등 겨우겨우 버텼던 시기였어요.
그러다가 2018년에 미투시민행동(*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상황실 구성을 위해 각 단체에서 활동가가 한 명씩 차출되었는데, 제가 상담소 대표로 자원해서 가게 됐어요. 재미도 있었고 활동가로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하면 되는지, 상담소 바깥의 다른 활동가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좀 보게 되고. 자존감도 높아지고 활동에 동기부여도 되는 경험이었어요. 상담소에 돌아온 뒤, 성문화운동팀에 신아가 합류해서 좋은 팀워크로 1년 바짝 재밌게 활동했죠.
2019년에는 첫째가 학교를 갈 때가 돼서 육아휴직을 했어요. 6개월 간의 육아휴직 기간도 되게 좋았는데, 돌아오고 나서가 되게 힘들었어요. 휴직 기간 동안 잘 쉬고 와서 다시 일하면 되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오니까 제가 겉도는 느낌이었어요. 육아휴직 이후에는 제가 거의 전담으로 아이들을 보고 정말 필요할 때만 시부모님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식으로 육아 방식이 달라져서, 제가 6시 땡 하면 퇴근해서 애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거기다 5년 동안 몸담고 있던 성문화운동팀에서 여성주의상담팀으로 팀 이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활동가들 간에 갈등도 있었고 해서 2020년 4월 정도까지는 상태가 정말 안 좋았어요. 코로나도 그렇고,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기분이었는데 요즘은 그나마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일동: 와아∼ (박수)
감: 되게 우울하네요. (웃음)
2. 인터뷰이 질문 타임!
Q. 감이가 2002-2003년 즈음에 총여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잖아요. 이 때가 대학가에서 총여가 운신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던 시기였는데, 총여 활동할 때는 어땠나요?
감: 맞아요. 90년대 말이 제일 활발해서 각 캠퍼스에 총여가 있었고 여러 소모임도 있었죠.
닻: 학회나 교지 모임 같은?
감: 네. 교지 편집 이런 것도 되게 많았고. 학교 간 연대 활동이나 학내 동아리 모임도 활발했고. 저희는 그 때 학교 안에서 페미니즘 페스티벌도 하고 페미니즘 캠프도 했어요. ‘여성연대 한판’이라고 2000년대 초반에 전국 대학 내 여성주의자들이 다 모여서 1박 2일, 2박 3일 정도 함께하는 장이 마련됐어요. 여학생 휴게실에서 담배도 피고 잠도 자고 술도 먹고… 다같이 세미나 하고 친해지는 시간도 갖고 그랬었어요. 엊그제 상담팀에 법률상담 해주시는 변호사님 한 분이랑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변호사님도 그 때 당시에 학교 안에서 여성운동을 했던 분인 거예요. 그 전에는 전화로만 소통하다가 거의 처음으로 같이 식사하는 자리였는데, "얼굴이 낯이 익은데 혹시…" 이러면서 서로를 알아본 일이 있었어요.
셀: 17년 전 일인데 어떻게 알아봤나요?
감: 그때는 학교 간 교류가 많아서 서로 잘 알 수 있었고, 또 구심점이 되는 친구들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던 거 같아요.
옴: 연대 한마당 이런게 되게 많았어요. 교지 연합회 한마당, 학내 신문기자 한마당, 학교 내 생협 운동하는 사람들 한마당, 대안교육운동 하는 사범대생 한마당.
감: 그리고 메이데이 있잖아요. 노동절. 각 학교의 운동권들 다 총집합하는 날이잖아요. 그럴 때 메이데이 행동 같은 것도 페미니스트끼리 따로 하고.
옴: 전날. 밤새.
닻: 너무 재밌었겠다.
감: 그런 판을 아예 따로 만들고 그래서 되게 재밌었던 기억이에요. 다채로운 사람들이 모이기도 했고.
셀: 근데 왜 인생곡선이 내려갔나요?
감: 너무 힘들어가지고.(웃음) 그 전에 되게 해맑게 살다가.
옴: 인생 첫 힘듦인가.
감: 여성주의를 알게 되면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잖아요. 싸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그러려면 공부도 많이 해야 되고. 내가 아는 거 쟤는 왜 몰라 하면서 설명해주는데 못 알아들으면 싸우고, 나는 왜 쟤를 설득하지 못할까 술먹고 막…(웃음) 그런 날들의 연속. 일주일에 6일 술 먹고 그랬어요.
닻: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일동 웃음)
감: 맞아맞아.
승: 인생곡선의 하락세와 상승세에서 공통되게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이 나타나요. 어떨 때는 잘 해보고 싶은 마음들이 좌절돼서 힘들었고, 또 어떨 때는 나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하신 것이 와닿았어요.
Q. 다른 활동가들 중에서도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신 분들이 있을 텐데, 그분들은 다들 어떻게 꾸려나가고 계신가요?
감: 현재 상담소 상근 활동가 중에는 저희 아이들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분은 없어요. 지금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활동가가 곧 복귀를 앞두고 있는데, 그 분은 아이들이 저희 아이들보다 더 어려요. 그래서 저는 복귀하면 정말 죽을만큼 힘들 거라고 하죠. 너무 큰 기대 하지 말라고.
책에서 봤는데, 육아를 하면 온전히 1인분의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래요. 그런데 이 사람이 실제로 일과 삶에서 요구받는 역할은 2-3인분이니까 늘 과부하되어 있는 상태? 특히 활동가라는 직업은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하고 여러 뉴스들이 업데이트 돼야 하는데 처음엔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집에 들어가면 핸드폰을 보거나 전화를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다음날 기자들이 전화해서 "어제 그 사건" 얘기하면 막 못 알아듣기도 하고.
옴: '사건'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일동 웃음)
감: 그리고 활동가들은 밤새 있었던 사건 이야기를 하는데, 못 따라가겠는 거예요. 그래서 새벽 두세 시에 깨서 신문기사를 엄청 읽었어요. 지금 상황이 어떤지 보려고 애를 썼죠.
셀: 활동가라는 직업 특성상 힘든 부분이 있었네요.
두 사람의 파란만장 페미니스트 라이프와 상담소와의 접점이 궁금하신 분들은 오늘부터 연재될 8월 활동가 인터뷰를 기다려 주세요. 내일은 오매의 인생곡선과 질문타임으로 돌아옵니다.
화요일 오후 6시에 또 만나요!
기획/편집 : 세린, 승은, 닻별
녹취록 작성 : 세린, 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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