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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

[후기]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일상 대응 연습>, 하은 님의 후기

! 일상대응훈련한 여자야!

지난 6월 13일부터 8월 8일까지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일상 대응 연습>이 진행되었습니다. 일상의 여/성폭력에 대응하고 성별 규범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몸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참가자 하은 님이 훈련에 대한 후기를 전합니다. 

*본 훈련은 코로나19 감염 및 확산 예방을 위한 방역을 준수하며 진행되었습니다.

작년까지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다가 올해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로 어쩔 수 없이 공부를 내려놓고 무엇을 해야할지 멍하던 시간을 보냈었다. 어느날... 허탈한 마음을 가지고 털레 털레 어딘가 가던 전철 안이었다. 의미 없이 페북을 보는데 두둥!! 심장이 두둥!! 두둥!!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자기방어훈련을 한다는 포스팅을 봤다. 얼른 눈으로 프로그램을 봤는데 강사 중에는 익숙한 이름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 하면서 내 손은 벌써 신청서를 작성해서 보내기를 누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당연히 될 줄 알았다. 누가 그리 많이 신청할까 했는데 나중에 활동가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게시글 올린지 3시간 만에 충원이 되었다고...워메어후 세상에나~~

 

훈련 기간이 다가오니 마음이 설레기도 했지만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공간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여겨졌고 내가 과연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 갑자기 17킬로그램이 찐 몸이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마음을 가볍게 편하게 먹고 첫 날 드디어 합류했다.

첫 날, 각자 세운 8주 훈련의 목표 

첫 강의 강사님이 박은지 트레이너여서 어쩌면 마음을 편하게 먹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서대문구에 살 때 약 6개월 간 박은지 선생님에게서 운동을 배웠서 안면이 있고 트레이너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긴장이 되었지만 걱정은 덜 할 수 있었다. 사람간 신뢰가 이렇게 여러 가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내 불어난 몸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타인의 몸에도 신경 쓰지 않으려고, 마음 먹었지만 첫날부터 잘 안 되었다. 프롬더바디 공간에 쫘~~~악 세워져 있는 거울에 비친 내 허벅지와 엉덩이와 뱃살과 둔턱한 어깨, 그와 반대인 다른 사람들.. 사실 전신 거울로 몸을 본적이 없고 집에는 화장실에만 거울이 있어 항상 어깨까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을 봤기에 복부와 하체가 어떤지 전혀 몰랐고 정말 심각하게 살이 많이 쪘고 건강을 위해서 얼른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으히히...그래도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임했고 회기가 지날 수록 내 몸의 모양에 신경쓰는 것이 줄어들었다.박은지 트레이너의 시범을 따라 하며 매트 스트레칭과 폼롤러 운동을 하며 몸의 근육과 몸 동작에 의식을 둘 수 있었고 아프면서도 시원하고 상쾌한 경험을 했다. 다들 으아악.. 거리며 폼롤러 운동을 하더니 나중엔 그 통증을 감내할 수 있는 여유의 숨소리..

박은지 선생님의 말대로, 세 번째에는 더 익숙해졌던 준비 운동

그동안 근력 운동 못하고 이사와서는 찔끔찔끔 하던 요가, 그 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올해 초부터는 아무것도 못했는데

요가를 하면서 의식했던 내 몸과 움직임이 훈련 시간에 동작을 할 때 도움이 되었고, 짝꿍이 바뀌기도 하고 같은 사람과 하기도 했는데 서로 마음을 열고 편안한 사람과 할 때 더 재미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치의 최대(?)가 나오기도 하고, 지지받으며 할 때 더욱 신났다. 연대하고 함께 하는 것, 독고 다이로 혼자 사는 것이지만 연대하는 것이라는 굵은 선을 만났다. 짝꿍을 신뢰하며 다양한 자기 방어 기술을 연습하고, 자기 방어가 무엇인지부터 찬찬히 알아보는 시간이 참 좋았다.

 

워낙 물건을 안 사고 있는 물건을 활용하며 살아왔는데 이번엔 드디어 요가매트와 폼롤러를 샀다. 근데 아차폼롤러를 너무 단단한 걸로 샀더니 집에서 하려니 아파죽겠어서살포시 모셔두었다^_______^. 이 이야기를 자기 방어 훈련 시간에 나누었더니 모두들 즐거워 하며 박수쳐주었다. 이렇게 즐거워 해줄 줄이야. 참으로 공감 능력 좋으신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즐거웠다. 그리고 데조로 쌤의 사인을 받기 위해, 이미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던 [여자는 체력]을 샀고 직접 사인도 받았다^^

5회차 '길거리 괴롭힘' 수업에서 방어-공격 자세 연습 중

이회림 강사님의 강의와 실전 연습도 참 인상깊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동영상을 찍던, 사진을 찍고, 당장 112에 신고를 한다! 그게 머리에 많이 남았다. 또한 2명의 남자 형사들과 실전연습을 할 때, 약간 긴장이 되고 떨리면서도 재미있었고 배운 여러가지 방어 동작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고 그저 주저 않거나 팔로 밀치거나 내 몸으로 밀치는 행동을 많이 하면서, 위급한 상황, 당황한 상황에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실내에서 시뮬레이션 할 때 실제로 택배 기사를 빙자한 성폭력범이 집안으로 쳐 들어왔을 땐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잘 와닿지 않는다. 아직 그건 나에게 궁금증이다.

 

나는 사실 그 당시엔 실제보다는 시뮬레이션의 강도나 상황이 약하기 때문에 조금은 쉽게 생각을 하기도 했고 좀 시시하다고 여기기도 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며칠 후에 갑자기 플래시백이 왔다. 완전히 까먹고 있던 일이 생각났다. 머리가 욱신거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고 아무 정신이 없었는데... 그것이 플래식백이란걸 알아차리니까 조금 나아졌고 시간이 지나니 안정 되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고 되돌아보니 그 당시(이회림 강사 시간 실전연습)때 사실 무서웠는데 그 감정을 감소시키고자 실습 상황을 시시하게 여겼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안 무서운 척하려고 그랬나..??????????????????

4회차 '주거지 침입 및 공격'. 머리 질끈 다시 묵고, 시뮬레이션에 임하기

하지만 내 동작을 알게 되었고 길거리에서 좁은 공간에서, 집 안에서 등 갑자기 맞닥들이게 된다면 어떻게 할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기에 도움 많이 될 것 같다. 나쁜 사람 역할을 해주신 남자 경사님들 내가 막 때려서 엄청 아팠을텐데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나중에 기회되면 맛난거 사드릴게요.

 

처음 들어본 '파쿠르'는 정말 생소했고 몸이 적응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날 늦게 도착해서 몸을 풀지 않은 상태에서 훈련에 임했다. 평소에 맨발로 까치발을 들면 항상 발바닥 아치가 아픈데 그걸 참아야 하고, 무언가가 나에게 날라오면 무서운데 그걸 참고 공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함께 했던 짝꿍들 덕에 하기 싫은 것도 조금이라도 해 볼 수 있었고, 우쭈쭈 해주는 말에 신이나서 할 때도 있었다. 안 하려고 쉬고 있을 틈이 없었는데 짝꿍이 그런 나를 배려해서 나는 줄을 돌리도록 해주었던게 고마웠다. '파쿠르'를 하면서 1초도 쉬지 않고 마구 마구 온 몸을 움직이는데, 움직임에 신경을 쓰니 내 몸에 의식을 둘 수 없고 내 몸에 의식을 두니 움직이지를 못하겠고.. 오도가도 못하는 시간들이 좀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파쿠르는 오랜 시간 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하루 당일치기로 하기에 내 몸은 좀 버거웠다.

6회차 '여성주의 파쿠르' 수업 중. 줄 달린 야구공 얼굴로 쫓아가고, 손으로 움켜잡고. 

박신영 작가님 강의 정말 재미있고 뼛속 깊이 공감하고 머리가 저절로 끄덕여지는(헤드벵이 수준으로) 시간이었다. 일상에서 겪는 많은 여성 대상 차별과 폭력이, 물리적인 폭력도 많지만 나에게는 대부분 일상에서 졸렬하게, 야리꾸리하게 행하는 추행이나 희롱이 많았고, 직장 내에서도 동성 직원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게다가 가장 많이 힘든건 남녀 불문하고 나이에 의한 폭력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강의가 없어서, 갈증을 느꼈는데 시상에나 박신영 작가님이 완전 딱 그런 얘기를 해주었다. 세상에나 너무 너무 좋았고, 거울을 보면서 단호하고 무표정으로 거절하는 말을 하는 시간도 참 유익했다.

 

그리고 너무나 시원했던 것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들과 부당한 일(각종 성희롱, 성추행, 목격 등)에 나설 때 부릉부릉 시동을 걸 엔진 오일 같은 말을 써 봤을 떄 참 좋았다. 다들 너무나 멋진 말들을 이야기 했는데 그동안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아주 많이 영글고 숙성된 내 말을 쓸 수 있었다. ”내가 예민한게 아니라 니가 미개한거야, 쌔꺄!”. 이 글을 쓰고 읽는데 어찌나 마음이 즐겁고 상쾌한지. 그리고 이렇게 쓴 것을 내 집 책장 위에 떡~올려 놨는데, 에어컨 설치를 잘못해서 물이 새고, 호스가 부러져 있어 부른 설치 기사가.. 그 멋진 글 보고는 나에게 뭐라고 하려다가 못하는 꼴을 봤고, 그에게 사과하시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녹음도 했다. 야호~!!!

 

6회차 '일상에서 참지 않기' 수업 중. 비오는 날 하은 님이 나눠준 부침개 간식

마지막 시간에 들었던 법률 강의. 법률 강의를 들을 때마다 머리속에는 증거”, “증인이었다. 증거를 제출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에. 근데 내 진술증거라는 말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진술의 일관성. 일관성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이걸로 기각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마지막 날 수료식과 함께 쫑파티를 했는데 세심하게 신경 쓰신 비건 피자! 넘 맛있었다. 츄릅~ 회기 중에 1번 결석을 했었다. 몸 상태가 좀 좋지 않아서 집에서 쉬었다. 코로나가 안정화 되지 않았던 시기라 몸 상태 안 좋으면 타인을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게 바른생활이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이다ㅜㅜ) 그래서 1번 못갔는데 세상에……...개근상이 있었다. ...1번 빠진 사람은 푸시업 도구(2개가 1세트), 1개 주시지 ㅋ헙

 

8회차 '법제도 활용하기' Q&A 토크 중

매 시간마다 재미있고 활기 넘치고 즐거웠는데, 또 한편으로는 내 행동과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가 된 것은 없었는지 많이 자기 점검을 하게 되었고 내가 가진 고쳐지지 않는 모습이나 사회생활에서 답습한 것들이 튀어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며서 반성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일터에서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은 나에게 일터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고 반말을 해서 나도 질세라 같이 반말을 하며 지냈는데 앗뿔싸, 자기 방어 훈련 첫날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반말을 하고 추임새를 넣을 때도 말을 내려놨었다. 아마 불편한 사람들이 있었을것 같아 지금도 마음이 미안하다.

 

8주 간의 훈련 시간이었는데 생각보다 길면서도 짧았다. 중간에 1주 쉼표시간이 있었는데 매주 토요일 12시즘이면 준비하고 나갈 채비를 하다가 아무 것도 안 하니 너무 어색하고 허전하고, 왠지 버스타고 슝~~~합정동으로 가야할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1주의 쉼표는 쉼표이기도 했다. 지금도 토요일 마다 뭔가 허전하고 또 어색하고 가뿐하기도 하지만 뭔가 어디를 가서 몸을 써야 할 것만 같다.

 

 

수료증을 들고 단체 사진!

함께 했던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많이 맺지 못한 점이 아쉽고 후기 모임(?)이나 post자방으로 함께 모여서 배웠던 것들을 복습하거나 커뮤니티를 쌓아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에겐 사람을 모이게 하는 결집력이 없어서 많이 안타깝다. 일상대응훈련, 자기방어훈련을 하면서 방어 스킬을 많이 익히지 못한 한계는 있지만 마음속에는 ! 일상대응훈련한 여자야!”라는 든든함이 느껴지고 자부심도 느껴진다.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곧바로 생각이 나진 않겠지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니까. 앞으로 이런 프로그램이 자주 자주 진행되면 좋겠다.

 

코로나가 약간 잠잠해졌을 때 자기방어훈련을 했고, 코로나로 내 일터는 휴무여서 다행이도 매주 토요일마다 참석할 수 있었다. 다시 코로나가 기승인데 그 이전에 자기방어훈련이 진행되었어서 너무 감사하다. 토요일마다 함께 했던 참여자분들과 활동가님들, 강사님들과 경사님들~고마워요~!! 또 만나요~^^

 

이 글은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일상 대응 연습> 참가자 하은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편집 : 상담소 성문화운동팀 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