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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

[후기] 존엄한 생존자의 신나는 외출

한국성폭력상담소에는 매월 마지막 수요일마다 열리는 생존자 자조모임 <작은말하기>가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삶의 경험을 나누는 소중한 자리가 2006년부터 15년째 이어지고 있지요. 올해는 이 <작은말하기> 참여자분들과 재미있고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았답니다.

 

같이 걷자 팀은 은평에 있는 봉산에 다녀왔어요.

2020년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뒤덮어, 매월 모임 조차 취소되고 연기되는 경우들이 많았는데요. 그런 와중에도 작은말하기 참여자분들은 몇몇 분들은 직접 쓴 글로 수기집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내는 등 말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싶으니, 밖으로 나가보자는 이야기를 참 많이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 위한 계획을 세웠지요.

 

3<작은말하기> 때부터 외출을 위한 기획단을 모집했습니다. 5월과 6월 중 총 세 번의 기획회의를 진행했어요. 첫 번째 회의 때, 정해져 있는 것은 단 하나! 우리가 함께 밖으로 나간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작은말하기에 참여하는 많은 생존자들이 줌회의실에 옹기종기 모여 직접 상상하고 기획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다 같이 파티룸에서 맛있는 것 나누어 먹으며, 영화도 보고, 힐링도 하고, 쉬기도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5인 이상 집합금지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상상은 그대로 현실이 되기 어려워보였지요.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기에, 다시 또 새로운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5인 이상이 못 모인다면, 네 명씩 해쳐 모이자!

 

그렇게 존엄한 생존자들의 신나는 외출이 윤곽을 잡아갔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기획회의에서는 네 명씩 만나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또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요. 영화도 보고, 드로잉 카페에서 그림도 그리고, 멀지 않은 곳으로 여행도 가보고, 평소 혼자서 산책다니던 길을 생존자들과 함께 걸어도 보고, 타로카드와 함께 이야기 꽃도 피워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분좋게 수다도 떨어보는 상상을 하다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세 번의 기획회의에서 구체적으로 결정된 내용들을 가지고 <작은말하기> 참여자들에게 홍보를 시작했습니다. 신청양식에 본인이 원하는 모둠을 선택해서 제출하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생존자들이 모이는 것이죠. 모둠 구성을 마치고 나서는 두 번의 설명회를 가졌습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외출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를 가지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논의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편안하고 자유롭게 대화하기 위한 꿀팁들도 나누었습니다. 각 모둠에서 활동 계획을 세울 때, 서로가 지켜주었으면 하는 것들을 약속으로 만들어 공유하기도 했어요. 이 내용들은 이번 외출 때 뿐 아니라, 평소에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자리라면 어디든 좋은 약속들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모둠 존중의 약속>

혼자만 너무 얘기 하지 말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기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기
질문 할 때는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기
상대방에 대해 평가, 판단하는 말 하지않기
대화는 모두에게 충분한 시간 주기
성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비교하지 않기
동의없이 말을 놓으려고 말끝을 흐리거나 편하게 툭 던지는 말투 삼가기
상대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개인 신상을 묻지 않기
저는 닭종류, 맵고 짠 것은 못 먹고 식사 속도가 느려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나는 누군가 한 명이 추가금을 부담해야하는 분위기가 불편합니다.
나는 음식을 먹을 때는 대화를 최소화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음식을 덜어 먹을 때 공용 집게나 국자를 꼭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물건을 묻지도 않고 만지거나 사용하면 마음이 다쳐요
저는 담배 냄새, 간접흡연이 힘들어요
신체접촉은 물어보고 하기
각자의 음악 취향을 존중하기
조용하고 안전한 분위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요.

 

각 모둠은 마음에 드는 키워드를 고른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장소, 시간 등은 모둠에서 함께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채롭고 매력적인 기획들이 만들어졌습니다.

 

, 이제 각 모둠별로 어떤 신나는 외출을 했는지 보실래요?

 

가장 처음으로 신나는 외출을 떠난 존엄한 생존자들! <짧은 여행 긴 여운> 팀이었습니다.

서울 중심부의 석파정이라는 한적한 공간에서 숲속을 거닐며 편안하고 안락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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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자유주제: 음취뿜취> 팀이었어요.

홍대 인근에 분위기가 기가막히게 좋은 LP바에 갔는데요. 훌륭한 음질로 오래된 팝음악부터 최신영화 음악까지 편안한 공연장에 온 것 같은 시간이었답니다. 서로의 취향에 반하고, 음악에 취하는 마법같은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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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오픈하우스> 팀이었어요.

모둠원 중에서 한 분이 흔쾌히 본인의 집을 모임 공간으로 내어주셨어요. 재미있는 질문카드게임도 하고, 코로나19 때문에 노래방도 클럽도 갈 수 없게 된 요즘 춤과 음악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타로 리더는 타로카드로 각자의 고민을 풀어낼 수 있는 기회도 선물해주셨지요. 마지막에는 이불을 펼쳐놓고 오순도순 정겨운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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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는 <맛있는 음식과 좋은 사람들>팀이었어요.

홍대에 멋진 루프탑 식당에서 맛과 분위기를 만끽 할 수 있었어요. 비록 비가 많이 와서 루프탑으로 갈 수는 없었지만, 비 덕분에 사람이 적어 한적한 공간에서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며 더욱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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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는 <드로잉&수다> 팀이었어요.

홍대 인근에 있는 드로잉카페로 갔습니다. 고급스러운 각종 미술도구가 갖추어져 있는 곳이었어요. 주말엔 시간 제한이 있지만, 이날은 손님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공간과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었답니다. 함께 한 생존자들 모두 하나같이 그림솜씨가 뛰어나더라고요. 모두 예술혼을 불태웠지요. 진지하게 작품을 완성해가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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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여섯 번째는 <같이 걷자> 팀이었습니다.

은평에 있는 봉산에 다녀왔습니다. 숲이 우거져서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었어요. 속도를 높이지 않고 꾸준히 걷는 동안 지금껏 몰랐던 서로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편백나무 숲에 만개한 금계국과 데이지 같은 꽃들 사이를 걸으면서 인생사진을 찍으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어요.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소나기도 반가웠답니다. 비를 피하러 들어간 처마 밑에서 나눈 대화들, 잊지 못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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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해주신 분들의 짧지만 소중한 후기를 덧붙입니다.

 

어떤 점이 재미있었나요? (답변은 모둠 관계없는 랜덤입니다.)
  • 좋은 음악, 맛있는 음식,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 어색하지 않고 솔직했던 수다와 에너지 발산의 댄스파티
  •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음악에 취해 신명나게 즐겼습니다!
  • 댄스타임, 질문카드, 타로, 주인의 비밀물품 공개
  • 어색한 순간이 없을만큼의 자매애를 느꼈어요.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마더피스타로, 각자의 취향을 알아보는 심리카드, 신나는 조명과 음악, 오픈해주신 집과 맛있는 음식. 어느때보다도 편안하고 즐겁고 마음 놓이는 시간이었어요.
  • 분위기 있고 비가 와도 즐거운 저녁이었습니다
  • 특별한 장소에서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주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점이 공감받아서 좋았어요
  • 찍는 사진마다 인별감성^^ 함께 모인 오붓한 공간감각!! 비가 오든 천둥이 치던 뜨거운 날씨건 장소의 힘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함께한 좋은 분들이 있어 장소와 상관없이 따뜻한 느낌은 여전했을거예요
  • 힘든 일상을 떠나 소소한 즐거움을 누려보았던 것이 좋았습니다.
  • 외출하고 사람 만나는 자체가 좋았습니다.
  • 아늑한 분위기의 특별한 장소에서 맛난 음식 먹고~ 스파클링 와인도 마시며 즐거운 수다를 나누었습니다.
  • 내 그림을 소장할 수 있어서
  • 인원 모두 신나고 재미있게 인즌샷과 인생샷을 찍은듯함
  • 예쁘고 편안한 장소에서 명상하듯 그리는 그림과 다정한 얘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어요.
  • 앞치마를 메고 붓을 들기만 해도 화가가 되어 화실에 있는듯한 느낌!
  • 같이한 활동가님 팀원분 재미나게 얘기하고 받아주고 넘 행복했어요.
  • 순간을 함께한다는 것이 재밌었습니다.
가장 신났던 순간은? (답변은 모둠 관계없는 랜덤입니다.)
  • 매 순간이 즐거웠습니다
  • Volare를 들으며 참여자들의 열정 가득했던 댄스
  • 막 시킨 음식이 왔을 때..ㅋㅋㅋ
  • 댄스타임
  • 주책맞을 수도 있는 나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쉽게 하기 어려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자유로운 시간이었어요. 
  • 예쁜사진^^
  • 맛있는 음식이 나왔을 때
  • 비가오는 로프탑에서 보는 경치와 담소
  •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하고 내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했을 때
  • 식사할 때~~
  • 루프탑에서 사진 찍으면서 생존자들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서 행복했습니다.
  • 미대생처럼 앞치마에 토시 착용 후 나만의 밑그림 그리고 아크릴물감으로 집중하며 색칠해간 시간들~
  • 그동안의 힘든 일을 잊고 그림 그리는 것에 열중할 수 있었음
  • 서로의 그림에 대한 장점 나누기
  • 꽃과 나무 경치를 보며 너무 좋다고 감탄사를 하시고 맛나는 저녁도 잘 먹었고 모든게 완벽하게 이루었다고 즐겁고 행복한 오후였습니다.
  • 다 같이 비 피해서 모여있었을 때
이번 외출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요? (답변은 모둠 관계없는 랜덤입니다.)
  • 생존자, 활동가와 함께한 특별한 날
  • 폐쇄된 공간에서도 안심하고 안전할 수 있다는 기억
  • 생존자끼리 슬프고 힘든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명나게 즐길 수도 있다!
  • 생존자들의 힘과 에너지, 자유로움과 개방성, 다양함, 고민과 지향점 등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생존자의 연대가 주는 편안함,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 따듯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자매애를 마음껏 느낀 밤
  • 생존만이 아닌 우아한 일상의 나들이였어요
  •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서 느낀 유대
  • 활동가님이 부드럽게 애써주는 모습과 그 시간이 좋았어요^^
  • 이렇게 일상을 보낼 수도 있다는 것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 참으로 힘든 사건에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으로 신경 써 주심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 같은 피해자에게 관심을 가져주심에 살아갈 희망을 얻습니다.
  • 새로운 시도, 행복한 기억
  • 프리다 칼로라는 화가를 알게 된 것과 그의 작품 "상처입은 사슴"을 나를 대입해서 그린 것, 다음 번엔 그의 54년작 "삶이여, 영원하라"를 그리고 싶다고 느낀 게 의미있다.
  • 내가 나만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한 공간에서 함께 생존자들과 연결된 마음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장소 잘 선택하고 좋은 시간을 함께 해서 더욱 좋았다
  • 존엄한 생존자의 신나는 외출로 만나는 나의 모습
  • 사건 당시 주위에 내 편이 없음에 참 허망했는데 이렇게 같이 할 수 있는 분이 있음에 힘이 나는 날입니다.
  •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구나

 

성폭력 피해 이후에 각자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삶의 궤적을 그려왔습니다. <작은말하기>에서 생존자들은 서로에게 연대자이자, 경청자이고, 또 든든한 동료가 되어준답니다. 이번 <존엄한 생존자의 신나는 외출>은 생존자들의 일상에 작은 휴식과 활력소가 되었어요.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종식되는 날, 존엄한 생존자들이 만들어낼 뜨거운 광장으로 신나게 외출할 날을 손꼽아 기대해 봅니다.

 

<이 글은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 감이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