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된 지하1층 엘리베이터 안에 (잠시) 갇히다.
상담소에 와서 처음 하는 아침당번.
다른 활동가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여 엘리베이터를 켜고,
습한 지하 이안젤라홀에 가서 밤새 꽉찬 제습기의 물을 버리고 다시 파워모드로 제습기를 가동시킨다.
그렇게 한 달을 반복했고, 8월 30일 아침에도 엘리베이터를 켜고,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엘리베이터 불이 꺼져있다.
‘엘리베이터 전등불도 꺼지나? 계단으로 가기 귀찮으니 그냥 타야지~’
하고 지하1층을 눌렀다. 문이 닫히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암흑 속에 갇히며(?) 약간 후회했다.
‘어.. 쫌 무서운데.. 그냥 내리고 싶은데..’
지하 1층에 도착하니 엘베가 평소와 다른 “쾅” 소리를 냄과 동시에 물이 마구마구 들이찬다.
‘아!? 출근할 때 들리던 쏴~~~ 하는 물소리가 지하에서 나오는 물소리였구나!! 지하에 물이 얼마나 찬거지? 이 엘베 안에 물이 얼마나 들이차는 거지? 엘베 문을 왜 안열리지?!!? 나는 불꺼진 엘베를 겁 없이 타서 꼼짝없이 물이 가득 찬 이 엘베 안에서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것인가?(사실 약간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함)’
라 생각하면서 엘베의 <열림> 버튼을 파파파파박 누르고
그 와중에 엘베에 물을 샤샤샥샤샤샤샥 차고 있고...
하지만 약 30초 후 문은 열렸고, 나는 살았다. 휴
그 넓은 지하 이안젤라홀 전체에 발목까지 찬 물..
여전히 들리는 쏴~~ 소리..
이건 꿈인가? 8월에 물놀이 못한 나를 불쌍히 여겨 이름 모를 신이 나에게 워터파크를 선물해준 것인가?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지? 난 아침당번을 한 죄밖에 없다.
약간의 현실부정 하지만 재빠르게 현실 파악하기
나는 소리지르며 2층 사무실에 올라가 사람들에게 알렸고, 아직 출근하지 않은 부소장에게 전화했다.
파랑- 란… 큰일났어요. 지하1층이 물에 잠겼어요
란- 지금 바로 갈게요.
파랑- (빨리오세요)
물은 주말 내내 틀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숙직하는 선생님께서는 토요일부터 쏴~ 소리가 들렸다고 하시고 빗소린 줄 알고 지하에 내려갈 생각은 못했다고 한다. 나 또한 출근 할 때 들리는 쏴~ 소리가 지하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생각치 못했다. 누가 그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 ㅠㅠ 쏴~ 소리가 어디서 나는 것인지 찾아다녔고, 지하 화장실 수도가 터진 것으로 밝혀졌다.
갑자기 저 수도가 왜 터졌을까? 반성폭력운동을 방해하는 누군가의 테러는 아닐까 의심하면서 cctv를 돌려보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아예 지하 물을 잠궈버렸어야 했다는 새로운 교훈을 얻게 되었으며, 지하 하수도가 막혀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주말 내내 차곡차곡 쌓인 물들은 지하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했으니. 그 시작은 맞춤장들이 물을 먹어 다 벌어졌으며, 그 안에 있는 종이 자료도 물을 냠냠 먹었다. 당황한 활동가들은 자료들을 빼내려 했으나 물먹은 종이들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이에 상담소의 대표 힘! 감이와 으니조가 이를 빼냈다.
지하 곳곳에 여러 용품들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것들도 다 젖어서 못쓰게 되거나 말리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맥시멀리스트 상담소가 미니멀리스트 되기 과정인가. 그 과정이 너무 잔인하다
이 와중에 누구 정신있는 사람이 사진 좀 찍으라고 하여 사진찍기 담당은 내가 되었다. 다들 월요일부터 출근하자마자 대혼란의 물잔치. 참고로 감이는 이날 2주간의 재충전휴가 이후 첫 출근 날이었다. 오자마자 다시 재충전 필요한 이 사태.
뭐라도 해야겠다. 물퍼나르기
출근하기 전 이 소식을 듣게된 소장 오매는 급하게 양수기를 구해왔다. 하지만 양수기가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 물이 가득차 있지 않아서 그런 건가? 하고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보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 양수기. 제발 양수기님 움직여주세요.
양수기 호스가 팽팽하지 않아서인가? 다들 제대로 땡겨보자. 모두가 손에 손을 모아 양수기 호스를 당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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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움직이지 않는 양수기.
다들 상담소에 있는 바가지 다 들고오세요~ 물퍼 나릅시다
영차
영차
영차
물을 퍼나르면서 윗층 사람들은 물이 좀 줄었냐고 물어본다.
아랫층 사람들은 택도 없다고 말한다.
갑자기 30여년 전 망원동에서 침수되었던 이야기를 한다. 그때가 생각난다고..
침수라니.. 서울은 올 여름 장마도 심하지 않았는데 침수라니 ㅠㅠ
아무래도 사람 손으로 물 퍼나르는 것은 소용없는 짓 같다.
그러다 전문 양수기업체가 왔다. 와 살았다.
이제 지하에서 잠겨버린 물건들을 끌어올리자.
지하에 이런 것이 있었나. 다 올려올려
30주년 기념식
딱 한달 전 발생한 이 사건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여전히 물건을 말리고, 습기를 빼고, 곰팡이 스는 것을 막고, 지하를 사용할 수 없어 회의실이 부족한 활동가들은 이리저리 장소를 옮겨다니며 일하고 있다.
맞춤장, 고장난 엘리베이터 새로 맞추기, 바닥 공사에는 많은 복구비용이 든다 ㅠㅠ
아 잔인한 2021년.
2021년은 상담소가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10월 7일에는 상담소 30주년 기념식도 예정되어 있다. 이에 맞추어 특별후원도 받고 있는 중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우리 30주년 행사가 대박나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읽고 우리를 가여이 여기신다면, 특별후원으로 우리의 활동을 지지해주는 방법이 있음을 알립니다!
30주년 특별 모금함 바로가기 https://box.donus.org/box/ksvrc/ksvrc_30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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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우리는 부정하고 있지만.. 지하 엘리베이터 고인 물에서 모기가 번식하는 것 같아요.
<이 후기는 여성주의상담팀 파랑 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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