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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

아늑하고 따뜻한 화장실이 당신에게 주는 위로

 

지난 11월, 상담소에는 너무 즐거운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태평양복지재단과 한국여성재단이 지원하는 Happy Bath Happy Smile 화장실개보수 사업에 선정된 것. 오랫동안 금가고 이물질이 제거가 되지 않고 막히던 지하 화장실이 따뜻하고 아늑하고 깨끗한 곳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추억과 사연이 넘치는 곳

상담소 반지하를 우리는 '모임터'라고 부르고 있어요. 자료실, 면접상담실, 회의실, 프로그램 방이 있고 상담소를 이용하는 내담자와 방문객, 회원들이 주로 이 공간을 이용하게 되니 추억도, 이야기도 많이 배어있는 곳입니다.

욕망찾기, 꿈찾기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경우 참여자들의 탈의실, 분장실로도 사용되고요. 상담을 하다가 감정을 가다듬거나 호흡을 고르는 곳이기도, 상담하러 온 친구나 가족을 동행인이 기다리며 머무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상담소는 가정주택을 개조하여 반지하와 2층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건물은 1988년 쯤에 건립되었다고 해요. 20년쯤 나이든 건물이니 오죽 사연이 많았을까요.

10월까지만 해도 지하 화장실은 문짝이 헐어 잘 닫히지 않고,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곰팡이며 이물질이 있고, 세면기 배수구가 자주 막히고, 샷시가 덜덜 떨며 황소 바람을 그대로 투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왜 더 좋은 시설을 원하지 않았을까

화장실 개보수 공사를 하는 동안 지난 화장실의 막힌 도기와 곰팡이가 가득한 타일을 철거하면서, 그리고 그 자리에 하나씩 깨끗하고 아름다운 설비들이 자리잡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왜 더 좋은 시설을 원하지 않았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담소가 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적대가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휴식을 얻을 수 있는 해방구라고 자부해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맞서 싸울 수 있는 새로운 기운을 충전하는 베이스캠프라고요.

그렇지만 그에 걸맞는 아름다운 공간을 구비할 생각은 쉽게 못해왔었나봐요. 그럴 자격이 우리에게 있다고 잘 생각하지 않았나봐요. 가난하고 단촐한 살림에 너무 적응되어 있었던 걸까요.  

까끌까끌하여 미끄럼을 방지하면서도 유행하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바닥 타일, 아늑한 공간감을 주면서 조명을 더욱 은은하게 해주는 돔 천정, 격자 무늬로 바깥의 아치 현관과 너무 잘 어울리는 창문 샷시. ‘더 좋은’ 화장실을 위해 회의하고 까다롭게 선택하고 더 욕심내면서 상담소 활동의 의미와 자긍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쾌적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공간을 원하자

담소에서 상담을 하고 계신 상담자원활동가 선생님, 지속면접 상담을 하고 계신 내담자분들은 화장실의 변신을 너무 즐거워 합니다. 되려, 상담소는 충분히 이런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며 상근활동가들의 흥분을 자제시키기도 합니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공간은,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였다는 깨달음이 생기고 보니, 구석구석 방치해두었던 곳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공사가 완료된 화장실을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가꾸고 보살필지 필요한 비품을 사고 실리콘 주위를 걸레질 하면서, 다른 공간에 대한 ‘환경미화’ 도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습니다.

벽지를 구해다 틈새를 다시 바르고 오래된 집기를 폐기처분하고 갈라지고 벗겨진 담장도 직접 페인트칠 했습니다. 화장실 개보수 공사가 완료된 이후 더 바빠진 셈입니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공간,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가꾸어 가게 될 것 같아요. 아늑하고 따뜻해진 화장실이 당신에게 건넬 작은 위로에 감사하며, 공간의 중요함을 다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조명하나에 편안해지는 마음을 나누고픈 분, 아름다워진 상담소가 궁금하신 분, 언제라도 놀러오세요. 상담소를 가꾸는 일에 함께 하고픈 분들의 아낌없는 도움의 손길도 환영합니다. 

무엇보다 좋은 기회를 주신 태평양복지재단한국여성재단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이후에 터진 바닥 누수, 배수로 막힘, 수도 얼기 사태를 해결하느라 화장실 변신 소식을 늦게 전했습니다. -_-;; 빨리 모임터 물난리 상황이 마무리되어 아름다운 지하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