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죄개정을 위한 2021년의 노력은 다양한 방면으로 진행되었는데요, 국회라는 공간에서 토론회를 열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12월 17일에 정의당 주최의 긴급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정의당은 21대 국회를 개원하면서 5대 우선 과제 중 하나로 '강간죄 개정'을 결정하고, 21대 국회의 두번째 비동의강간죄를 도입하는 형법개정안을 류호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당이기도 하지요. 이번에 대선 캠프가 발족하면서 심상정 후보 역시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젠더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강간죄개정운동을 하는 반성폭력 단체로서는 2021년 12월의 상황을 담은 토론회가 열렸다는 의미에서 반가운 자리였습니다. 무고죄 이야기가 정치권에서도 많이 나오는데, 현재 형법상 강간죄 구성요건 때문에 무고죄가 유죄가 되는 문제도 지적되었고, 준강간 문제 등이 강간죄 구성요건에 어떻게 부딪히는지 더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죄형법정주의에 입각해서라도 강간죄는 개정이 되어야만 하는 때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냥 의사를 바꾸면 되는 거 아냐?”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성적자기결정권은 단순한 의사결정권이 아니라 헌법상 행복추구권에서 도출된 인격권, 성적인 인격, 신체의 통합성(integrity)에 대한 법익을 의미합니다.
부부강간이 인정되어 오지 않았다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변경 결정으로 인해서 인정이 되었지요.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 관점에서 보면 그 대상이 모르는 사람이든 남자친구든 남편이든 간에 동일한 침해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정조’에 관한 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강간죄에서의 ‘폭행과 협박’에 대한 요건입니다. 간음이라는 법적 용어도 현재 일상생활에서는 안 씁니다. 일부 종교에서 불리고요. 혼외 성관계 같은 것을 의미하는 용어인데 이에 대해 음란이라는 잣대를 댔던 정조 개념이 남아있는 것이고, 이는 성적 수치심을 강조하는 문구로도 연결되고 있습니다."
발제 2는 류호정 의원의 '비동의 강간죄의 오해와 설득' 이었습니다.
"강간죄 기준을 동의여부로 하자고 하면 다섯가지 오해가 붙습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1/ 동의 개념이 불분명하다?
형법에 양해나 승낙같은 비슷한 개념이 있습니다. 민법에서 동의는 널리 쓰이는 개념이고요. 개념을 정의하고 법원의 해석으로 의미를 보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무엇을 설득해야 하는지가 달라집니다. 기존에는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저행했냐’를 증명해야 했다면, 이제는 ‘동의가 있지 않았다, 동의가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 것이죠.
3/ 허위 고소가 난무할 것이다???
이른바 ‘꽃뱀’ 논리의 변형입니다. 일부 남초커뮤니티에서만 통용되던 논리가 이제 정치권에서 지분을 획득하고 있지요.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대검찰청 연구에 따르면 성폭력 무고로 유죄 선고된 사례는 극소수입니다. UN은 대한민국 정부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남용을 방지”하라 권고했습니다.
4/ 여성의 의지와 능력을 깎아내린다????
여성이 성교를 거절할 수 있고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지만, 능력을 인정하는 것과 권리 침해 행위를 처벌하는 건 차원이 다릅니다.
전국 66개 성폭력상담소 조사분석은 71.4% 직접 폭행협박 없이 성폭력 피해가 있지요. 신체적인 위협을 평소에 가하던 남자친구에 대한 두려움으로, 입원중인 의료인에 의해 발생한 성폭력 등.
5/ 그런 법이 있는 나라는 없다?????
국제형사재판소, 유럽인권재판소, 캐나다, 스웨덴, 등등 수많은 나라에서 동의여부로 강간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도 특히 법조인 출신 남성 정치인들은 강간죄 판단에서 폭행협박 최협의설 문제를 알고 있고 바뀌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날 티비에 나와서는 ‘무고죄’를 외칩니다. 화가 나네요."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박아름 활동가('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토론이 먼저 있었습니다.
“현재 형법은 이성간 성기 삽입만을 인정하는 ‘강간’, 강간은 아닌데 강간과 유사한 ‘유사강간’, 강간은 아니고 강간에 준한다는 ‘준강간’, 위력을 이용한 ‘간음’ 등을 다 쪼개서 까다롭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피해자가 술에 취해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성폭력이 있었는데, ‘폭행 협박’이 없었다는 이유로 강간죄 적용도 못하고,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까지는 아니었다는 이유로 준강간죄도 적용할 수 없다는 사건이 있는 겁니다. 2019년 대법원은 ‘준강간 불능미수’라는 복잡한 판결을 내립니다.
또 유명연예인이 자신을 성폭력으로 고소했던 여성을 무고죄로 고소했는데 1심은 무죄였지만 2심이 유죄를 내리며 ‘이 사건은 내심에 반해서 이루어진 성관계 같지만, 상식상 강간은 법적 강제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걸 몰랐을 리 없으므로 고소가 무고다’라고 했습니다.
의사에 반해서 하는 게 성폭력이라는 게 사람들 상식입니다. 설령 법이 폭행협박을 요구한다는 걸 안다해도, 자신이 겪은 걸 고소한 사람을 ‘무고’ 유죄 판단을 내린다고요? 이건 현재 형법상 폭행협박 조항이 계속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입니다. 판례 변경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고, 형법상 문제가 있으므로 무고죄 유죄가 생겨나는 현실인 것이지요.”
차혜령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성적침해를 성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교육도 대부분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에서는 성폭력 법 강의에서 그렇지 않다는 걸 설명해야 합니다. 법은 폭행협박을 요구하고, 그 폭행협박도 피해자 저항의 정도가 어느 정도여야 하냐면…
1953년에 형법이 제정되어서 68년동안 이렇게 살아와서 이게 당연하고 익숙하게 느껴지지만, 법과 현실이 안 맞고 있는 것이지요.
현재 형법상 성폭력 체계는 여성의 성폭력과 남성이 겪는 성폭력을 다르게 처벌합니다. 여성이 겪는 것은 강간으로 인정되고 형량도 3년 이상 유기징역인데, 남성이 겪는 성적 신체 삽입은 강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형량도 그에 비해 작습니다. 이런 위계와 차이에 남성들이 문제제기 하실 것 같은데, 그런 의견들이 아직 없는 것일까요?”
안지희 변호사 (법무법인 위민)는 실제 지원하는 사건에서 부딪힌 현재 형법 판단기준의 문제를 나눠주셨습니다.
“불법촬영죄를 보면 신체라고 되어 있어 영상물을 재촬영물한 유포는 무죄였고, 타인의 신체여야 해서 자신의 몸을 찍은 건 무죄이고 해서 법조항을 바꾸는 개정들이 있었습니다. 죄형법정주의 때문입니다.
지금 강제추행죄는 죄형법정주의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법원은 이미 합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률전문가들도 이런 이유로 비동의강간죄 도입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시적 거부의사 표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동의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사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기소 처분이 되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일부 판결은 바뀌고 있지만 실무에서 다 적용되는 게 아닌 것이지요.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언급하기 어려우나, 피해자가 만취상태에서 처음 본 3명에게 간음을 당하였고, 다음 날 몸에 멍이 들어 있었고, 생리중이어서 탐폰 착용중이었는데 빼지 않고 성관계 하였습니다. 피해자가 위와 같은 방식이 동의했다고 볼 사정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피해자가 이후 한 행동들이 의심된다며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죄형법적주의 원칙에 따라서도, 피해자 보호의 관점에서도 비동의강간죄 도입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김동현 부장판사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토론이 있었습니다. 법원에서도 실제로 접하는 사건의 성격들과 형법상 강간죄 구성요건, 판례와 학설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게 된다는 사례에서 시작된 성찰적인 토론이었고, 이는 강간죄 개정 필요에 대한 질문과 반론에 대한 재반론의 논의를 향했습니다.
“일선 법원에서도 최협의설을 불편하게 느끼지만, 어떤 사건이 성적자기결정권 명백히 침해되었다고 느끼면서도 피고인 변호인 측이 ‘최협의 폭행협박에 포섭되지 않는다’고 항변하면 이를 배척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저도 법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판결을 내리면서도 파기되기를 바라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파기되지 않았을 때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요.
강제추행 협박 폭행도 강간죄의 폭행협박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는데 ‘기습추행 개념이 인정됨으로써 강제추행에서는 최협의 폭행 협박 개념이 더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강간죄에 대해서는 최협의 폭행협박 개념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측하기로는 강도죄의 폭행협박 개념과의 균형을 의식해서라는 의견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미 대법원이 실질적으로 최협의설 폐기했는데 명확히 선언할 계기를 얻지 못했다는 말을 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워딩이 남아있는 한 여전히 최협의 폭행협박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해 보입니다.
법원행정처 의견을 보면 피해자 진의에 반하는가로 판단하면 주관적 사정에 따라 범죄 성립 여부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이런 예는 이미 많습니다. 절도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원래도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피해자 진의에 따라 범죄의 성부가 결정되는 것이 혼란을 초래한다고 하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