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와 서울대학교 공익법률센터가 함께 주최한 <성폭력의 법적해결 백래시에 맞서는 로우킥 시리즈 집담회>는, 피고인의 방어권이라는 명목으로 피해자의 권리와 안전을 위험에 노출하는 수사·재판과정의 현실을 꼬집고 해결방안을 고찰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21년 12월 17일에 진행된 1차 집담회에서는 피해자 진료기록 재감정에 대한 토론과 논의가 이루어졌는데요.
지난 2월 8일 오후 두 시, 2차 집담회 <성폭력 피고인의 방어권 악용, 이대로 괜찮은가?>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집담회에서는 피고인의 열람등사 자료 활용 실태를 살펴보고, 그로 인해 위협받는 피해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지 함께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회는 서울대학교 공익법률센터 이도경 변호사가 맡아주었습니다.
피고인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러한 차원에서 소송기록과 증거물을 열람등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리의 행사라는 이름 아래, 막상 피해자가 무분별한 공격에 노출되는 일이 다분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획득한 수사·재판 자료가 피해자 진술의 신뢰도를 깎아내리거나 성폭력 피해자의 사회적 통념을 강화하는 데에 악용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유랑 활동가는 첫 발제로 ‘성폭력 수사 재판 자료의 피고인 활용 전략, 실태와 문제점’을 발표하며, 실제 현장에서 피고인들이 악의적으로 피해자의 사적 자료를 이용하고 유출한 사례를 공유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그는 소위 피고인의 ‘전략’으로 불리는 이러한 행위가 1)사실조회촉탁 신청 자료가 선별 과정 없이 피고인에게 그대로 제공되는 문제, 2) 수사재판 자료 열람등사 시 피해자의 개인정보 및 사생활이 노출되는 문제, 3)피고인이 수사재판 자료를 외부에 유출하는 문제, 4) 피고인의 지위를 이용한 자료 활용으로 2차 피해를 주는 문제 등을 야기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피고인의 방어권에 가려 논의되지 않는 피해자의 권리를 지적하며, 관련 제도 정비와 피고인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다음으로 대한법률구조공단 울산지부 피해자 국선 전담변호사 조현주 변호사의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피해자의 열람등사권 제한, 현실과 문제점’을 주제로, 피고인과 그 변호인에 비해 보장되지 않은 피해자 열람등사권의 한계를 이야기했습니다. 각 수사·재판과정에 따라 현행 규정이 어떻게 피해자의 열람등사권을 제한하는지 제시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조 변호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피해자의 형사절차에서의 지위를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기관마다 상이한 피해자의 열람등사 신청 절차와 근거 규정을 일원화할 필요성이 있음을 언급했습니다.
이어지는 토론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홍진영 조교수의 ‘피고인의 성폭력 수사 재판 자료 활용의 법적 한계’를 주제로 시작되었습니다. 홍 조교수는 피고인 방어권의 필요성을 바탕으로 악용과 남용에 대해 신중한 관점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운을 떼면서도, 현행 법령이 피해자의 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에 대해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1)피고인에 대한 피해자의 인적사항 및 사생활에 관한 정보 제공 범위와 관련한 문제와 2)피고인 측에서 적법하게 확보한 피해자의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정보의 활용 범위에 관한 문제를 얘기하며, 이에 대한 현행 법률과 실무를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자세하게 제시했습니다.
특히, 피해자의 개인정보에 대한 비공개 조치의 사유가 지나치게 좁은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한 개선 방안으로, 피고인 측의 열람·복사 신청에 대해 법원은 서류 단위가 아닌 정보 단위로 판단해야 하며, 피해자 측에서 제한 여부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기존에 접착식 메모지, 라벨지 등을 부착하여 처리했던 실무상 비실명처리의 허술함을 지적하며, 기술적 방법을 통해 더 확실하게 조치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부연구위원이 ‘법적 권리로서 피해자의 형사절차 참여권 보장,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해당 범죄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피해자가 정작 형사사법절차에서 주체로 대우받지 못하는 점을 꼬집으며, 피해자를 형사사법절차 과정 및 결과의 이해관계자로서 마땅히 권리를 향유할 존재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헌법적 근거와 국제사회의 동향을 공유하고, “보호와 시혜” 수준에 머물러 있는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개선 방향을 제안하였습니다. 김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진술권을 비롯한 피해자의 권리 실현을 위해서는 이용 가능한 절차와 방법, 진술을 위해 필요한 자료의 제공이 이루어져야 하며, 충분한 정보를 피해자가 이해 가능한 방법으로 제공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또, 명확한 권리 보장을 위해 피해자의 일반적 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규정하는 헌법 개헌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만연한 사회에서, 이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그의 권리를 훼손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 왔습니다.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벌하는 현장에서마저, 피해자는 도구화되어 ‘피해자다운’ 모습을 보이기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번 집담회를 통해, 피고인의 방어권에 치우친 현행법이 이러한 사회의 편견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법은 우리 사회의 근간으로써 사회 구성원의 사고를 형성하고, 그 사고를 바탕으로 변화합니다. 우리가 법과 제도를 살피고 감시하는데 소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생소한 법률용어에 머리가 핑 돌기도 했지만, 초보 활동가로서 앞으로 펼쳐갈 활동 방향을 조금은 알게 된 뜻깊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의 법적 해결 절차가 피해자에게 진정한 치유회복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거침없이 로우LAW킥!을 날리겠습니다.
<이 후기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홍보팀의 산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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