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고등군사법원이 부하 여군에게 성폭력을 가한 두 해군 상관에게 무죄를 선고한 일을 기억하시나요?
피해자의 직속 상관이었던 가해자 A는 임관한지 얼마 되지 않은 피해자에게 지속적인 성폭력 가해를 하였고, 함장이었던 가해자 B는 피해자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고 있던 것을 빌미로 삼아 피해자를 강간하였습니다. 1심은 이들에게 각각 징역 10년, 징역 8년의 선고를 했는데 고등군사법원이 이것을 완전히 뒤집고 무죄를 선고한 것이죠. 고등군사법원은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 및 협박’이 없었다고 해석하였고, 피해자가 성소수자였음에도 ‘피해자와 연인관계였다’는 가해자 A의 터무니없는 진술에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후 고등군사법원의 부당한 무죄 선고를 규탄하는 공동대책위원회와 시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져 왔습니다.
2022년 3월 31일, 드디어 대법원 선고가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지 무려 3년 4개월이 지난 후였죠. 오전 10시 10분, 공동대책위원회와 시민들은 먼저 시작되는 가해자 B에 대한 선고를 숨죽여 기다렸습니다.
“사건 OOO, 김OO, 원심을 파기한다.”
원심을 파기한다는 것은 고등군사법원의 무죄 판결이 잘못되었으니 다시 판단하라는 결정입니다. 방청하던 공동대책위원회와 시민들은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하나의 선고가 남았기 때문에 완전히 기뻐할 수는 없었습니다. 11시 15분, 가해자 A에 대한 선고가 시작되었습니다.
“사건 OOO, 박OO, 검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순간 저는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상고를 기각한다는 것은 고등군사법원의 무죄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검사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가해자A는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이 파기환송이 되었기 때문에 나머지 사건도 당연히 파기환송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습니다. 1시간의 기쁨이 어이없음과 분노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두 사건은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 A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함장 가해자 B에게 보고한 후, 다시 한번 성폭력 피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피해자가 동일인으로 연관되어 있는 두 사건에서, 다른 재판부가 각기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요? 3년 4개월을 기다려왔으나 대법원이 응답한 것은 반쪽짜리 판결이었습니다.
낮 12시,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대법원 후문 앞에서 시대를 역행한 대법원의 판결을 강력히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유호정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의 진행으로 박인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가 대리인 입장을 첫 번째로 발언했습니다. 박인숙 변호사는 판결 요지를 설명하며 두 연관된 사건이 재판부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반된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최희봉 젊은여군포럼 공동대표가 이번 선고에 대해 강력한 규탄발언을 하였습니다. 바로 작년만 해도 군대 내 성폭력이 크게 공론화되었는데 이번 판결이 피해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군의 ‘정의구현 시스템’을 무너뜨린 판결이라고 규탄하였습니다.
세 번째로는 도지현 한국여성의전화가 피해자의 글을 대독했습니다. 피해자는 3년을 넘게 기다렸으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낸 대법원을 규탄하며 후배들이 더 이상 본인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발언을 마무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지윤 녹색당 대외협력국장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했습니다.
기자회견의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자회견 온라인 중계 시청하기 >> https://www.youtube.com/watch?v=EAR92qNFm5g
비록 반쪽짜리 판결이 나왔지만 피해자와 공동대책위원회는 계속 싸워나갈 것입니다. 가해자 B의 유죄 확정을 위해 대응할 것이며 해군이 두 가해자에게 징계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피해자가 안전하게 군 생활과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앞으로도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유랑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상담소는 지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기]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 -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 (0) | 2022.04.29 |
---|---|
[후기] 4/22 활동가역량강화 교육 <스토킹의 이해와 스토킹처벌법> (0) | 2022.04.29 |
[후기]성폭력사건, 대법원에서 흘러간 시간은 피해자에게도 흐른다<“성폭력사건 장기계류는 인권침해다. 멈춰진 대법원 시계, 인권위가 돌려라!”> (0) | 2022.03.25 |
[후기]차별을 끊고 평등을 잇는 2022인 릴레이 단식행동 평등한끼 <평등 없는 국회에 한 끼 대신 한 마디!> (1) | 2022.03.18 |
[후기]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기자회견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은 두려워하라. 여성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차별과 배제의 대선에 부쳐> (0) | 2022.03.18 |